최고의 딴짓은 길을 잃는 것이 아닐까요?
이번 반디앤루니스 서평단 펜벗에게 주어진 테마서평 주제는 '딴짓'이었다. 이 주제를 받으니 생각이 많아졌다. 무슨 일을 하든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있어야 한다는 신념이 지배적인 이 사회에서 할 일은 안 하고 ‘딴짓’을 한다는 건 도통 이해받지 못한다. 물론 창의성을 불러일으키고 혁신을 앞당긴다는 이야기도 하지만 이 역시 생산성을 염두에 둔 생각이니 결국 ‘돈이든 뭐든 아무 것도 얻지 않겠다’고 작정한 딴짓이 가장 윗길이긴 하겠다.(딴짓의 순위를 매기는 일도 별 의미는 없겠지만)
모두들 돈만큼이나 시간과 집중력을 아껴 쓰는 사회. 독서 역시 그래서 선택해놓고 보면 늘 같은 양상이 되어 버리곤 한다. 내가 좋아하고 재미있어서 빨리 읽을 수 있는 취향저격 장르 VS 일이나 공부로 필요해서 필요해서 읽어야 하는 실용 장르. 이 양대 구도에서 늘 뒤로 밀리는 것은 즉각적인 재미도 없는데 만만치 않아서 시간을 들여 읽어보면서 여운을 되새겨야 하는 책들이다. 인문학을 비롯해 사회과학, 역사, 예술, 과학 분야, 때로는 소설이나 에세이도 그렇다.
가끔 이 뻔한 패턴에 지쳤을 때, 그래서 독서의 딴짓을 하고 싶을 때 즐겨 찾는 작가가 리베카 솔닛이다. 작가이자 역사가이면서 환경, 반핵, 인권 이슈에 적극적인 활동가인 솔닛은 2013년 전미비평가협회상 최종후보에 오른 <멀고도 가까운>을 비롯해 <걷기의 인문학> <어둠 속의 희망> <이 폐허를 응시하라>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이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등 거의 모든 작품이 국내 출간되었을 만큼 팬 층이 두텁고 인지도도 높지만 사실 읽기 쉽지는 않다.
철학, 인류학, 문학부터 영화, 대중음악에 이르기까지 깊은 식견을 짐작케 하는 방대한 인용에 감탄하다가 시를 연상시킬 만큼 유려하게 흘러가는 미문을 따라가다 보면 갑자기 부조리한 현실을 비판하는 날카로움에 움찔하게 된다. 그렇게 변화무쌍한 흐름에 몸을 맡기다 보면 어느덧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하게 된다. 그렇게 다 읽고 나서는 다시 앞 페이지로 돌아가 마음에 들었던 구절들을 찾아 뒤적이곤 한다. 무슨 정보를 얻었나, 어떤 순서로 결론이 내려졌나 실질적으로 파악하는 건 솔닛의 책을 읽을 때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저 작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헤매면 된다. 그것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지혜로운 샤먼 같은 느낌의 작가가 쓴 책 중에서도 2005년작 <길잃기 안내서>는 그 중에서도 헤매기에는 최적이다. 작가는 “나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아는 세상 너머로는 영영 나가보지 않는다는 사실이 걱정스럽다.”면서 “사물을 잃는 것은 낯익은 것들이 차츰 사라지는 일이지만, 길을 잃는 것은 낯선 것들이 새로 나타나는 일이다.”라고 말한다.
이 책에서 본격적인 길잃기에 앞서 솔닛은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 메논의 질문을 제시한다. “우리가 그 속성을 전혀 모르는 무언가를 어떻게 발견할 수가 있단 말인가?” 작가는 이 질문이 삶의 기본적인 전술을 묻는 물음으로 느껴졌다고 한다.
“우리가 삶에서 원하는 것은 우리를 변화시키는 무언가다. 그런데 우리는 변화의 건너편에서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는지 모르거나, 모르는 데도 안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모든 종류의 예술가에게 확실한 사실은 그들이 그런 미지의 것을, 아직 도래하지 않은 발상이나 형상이나 이야기를 발견해야 한다는 점이며 문을 열어서 예언을, 미지를, 낯선 것을 초대하는 일이야말로 예술가가 할 일이라고 한다. 과학자도, 또 우리 모두 마찬가지이다.
작가에 따르면 어둠을 향해 문을 열고 여정을 시작할 때는 예견할 수 없는 것의 역할을 인정하는 기술, 불쑥불쑥 놀라움을 접하면서도 균형을 유지하는 기술, 우연과 협동하는 기술, 세상에는 본질적인 미스터리가 존재하기에 우리의 예상과 계획과 통제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임을 깨닫는 기술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길을 잃는 것, 그것은 관능적인 투항이고, 자신의 품에서 자신을 잃는 것이고, 세상사를 잊는 것이고, 지금 곁에 있는 것에만 완벽하게 몰입한 나머지 더 멀리 있는 것들은 희미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늘 스스로 “내 글은 걷지 않았던 곳으로 걸어가는 노력의 이야기, 가지 못한 길을 탐색하는 이야기다.”라며 말하며 방랑, 탐색, 모험 같은 주제를 평생 다뤄왔던 작가답게 자신만의 매혹적인 길잃기의 일부를 슬쩍 보여주기도 한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서부의 외딴 마을에서, 내가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도 아무도 없는 채 홀로 모텔에서 보내는 밤들, 괴상한 그림과 꽃무늬 이불과 케이블 텔레비전과 함께하기에 나 자신의 인생으로부터 잠시 벗어나는 시간이 되어주는 그 밤들, 베냐민의 말을 빌리자면 내가 스스로 어디 있는지 알기는 해도 사실 길을 잃은 것이나 다름없는 그 시간들.” 그리고 이어 말한다. “이어지는 글들은 내가 길 잃기에 사용하는 몇 점의 지도들이다.”
모두 여덟 장의 지도 아니 글 속에는 미지로 향한 문을 열고 길을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스페인의 정복자, 펑크록을 사랑했던 십대,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뉴욕에 내린 이민자, 원주민에게 납치된 백인 아이, 금을 찾아 떠났던 개척자들. 길 위에서 낯선 사람, 공동체, 문화, 사건 등을 만나 스스로 새로운 존재가 되거나 집으로 돌아갔거나 그 사이 어딘가에서 사라진 사람들. 이들의 이야기는 교외의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도시의 폐허에서 영화를 찍는 청년기를 지나 서부 사막을 여행하며 글을 쓰는 작가의 개인사와 어우러지면서 길을 잃는 것은 곧 나를 찾는 것임을 깨닫게 한다.
그렇다면 이제 책을 내려놓고 어떻게 스스로 길을 잃을 것인가. 작가는 마지막으로 힌트를 준다. “길을 전혀 잃지 않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니고, 길 잃는 방법을 모르는 것은 파국으로 이어지는 길이므로, 발견하는 삶은 둘 사이 미지의 땅 어딘가에 있다.” 손에 잡히는 것만 쫓느라 지쳐버렸다면 살면서 가끔은 길을 잃어볼 일이다. 무엇이 나올지, 누구를 만날지 몰라 두근거리는 영혼의 딴짓.
*이 리뷰는 반디앤루니스 서평단 '펜벗' 10기 활동을 위해 쓰여졌습니다. 다른 펜벗들의 리뷰도 읽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