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블루를 생각하며 읽은 다섯 권의 책
아직도 꺼리는 분위기이긴 하지만 허물없이 친한 사이에서 ‘우울하다’고 말하면 입을 모아 ‘정신과 한번 가봐’라고 말해주는 시대는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모두 넘어야 하는 허들이 너무 높다. 요새 코로나-19 대처 때문에 욕을 먹고 있긴 하지만 딱히 대체재가 없는 유엔의 세계보건기구(WHO) 헌장에 의하면, 건강은 단지 질병에 걸리거나 허약하지 않은 상태만이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그리고 사회적으로 양호한 상태이고, 따라서 정신건강은 일상생활에서 언제나 독립적 자주적으로 처리해 나갈 수 있고 질병에 대해 저항력이 있으며 원만한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상태이자 정신적 성숙상태를 말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정신건강 [mental health, 精神健康] (상담학 사전, 2016. 01. 15., 김춘경, 이수연, 이윤주, 정종진, 최웅용)
요즘 세상에 이 정도로 살 수 있다면 평균이 아니라 탁월한 수준 아닐까. 우선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양호한’ 상태는 무엇인지, 또 ‘원만한’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은 무엇인지부터 애매하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숨이 턱에 차서 같이 허들을 넘다 쓰러진 이들이 뒤늦게 털어놓는 후일담을 공감과 두려움이 엇갈리는 심정으로 듣는다. 우울증, 강박증, 공황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성격장애⋯ 어느덧 유명 연예인 이름만큼이나 익숙해진 병명들.
5년 주기로 실시되는 보건복지부의 ‘정신질환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6년 기준으로 주요 17개 정신질환에 대해 조사된 정신질환 평생유병률(평생 동안 한 번 이상 정신질환에 이환된 적이 있는 사람의 비율)은 25.4%(男 28.8%, 女 21.9%)로 성인 4명 중 1명이 평생 한 번 이상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1년 동안의 이환율을 뜻하는 일년유병율만 봐도 11.9%(男 12.2%, 女 11.5%)로서 무려 470만 명이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한 것으로 추산되었다. 이 결과가 3년 전 수치이며 또 의료기관에 내원해 공식 집계된 것만이니 실제로는 그 이상일 것이다.
이렇듯 대중화(?)되다 보니 ‘마음의 감기니까 병원에 가면 낫는다’는 식의 표현이 흔하게 쓰이고 있지만 당사자 입장으로는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다. 8년간의 우울증 투병 경험을 담은 에세이 <정신과는 후기를 남기지 않는다>에서 저자는 ‘마음의 감기’라는 표현을 볼 때마다 굵고 시뻘건 펜으로 벅벅 긁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고 말한다. 수술 후 정기적으로 추적검사를 해야 하는 암이나 평생 약을 먹으며 관리해야 하는 심장병처럼 정신질환 역시 일상을 무너뜨리는 고통을 견디며 치료해야 하는 병 중 하나일 뿐이다. ‘마음의 감기’라는 말 역시 어쩌면 ‘네가 마음먹기 나름’이라며 곧 나아야 한다며 당사자에게 원치 않는 부담을 주고 있는 건 아닐까.
불룩 나온 아랫배가 고지혈증이나 고혈압, 당뇨 등 대사성 질환을 예고하는 대표적인 신호이듯 정신질환 역시 잘 알려진 전조들이 있다.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가슴이 뛴다,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고 매사 의욕이 없다, 기분의 기복이 심하고 분노를 참을 수 없다, 밖에 나가면 긴장이 되고 화장실에 자주 간다, 극장같이 어둡고 밀폐된 공간에 들어가기가 무섭다 등등.
혹시 아주 가끔이라도 이런 일을 겪거나 빈도가 잦아지고 있다면, 또 증상은 없지만 어느덧 주위 사람들의 상황이 내 일처럼 느껴진다면 이미 세상에 많이 나와 있는 관련 책들 중 몇 권 정도 읽어보는 것도 괜찮은 첫걸음이다. 이런 책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지금 이 책을 읽고 있는 당신은 행운이다.”라고. 조금 일찍 자신의 변화를 눈치챘다는 점에서, 또는 주위 사람들의 아픔을 공감하는 노력을 시작했다는 점에서.
코로나 블루를 생각하며 읽은 다섯 권의 책
코로나 블루를 생각하며 읽은 다섯 권의 책 코로나 블루를 생각하며 읽은 다섯 권의 책
코로나 블루를 생각하며 읽은 다섯 권의 책
<어느 날 갑자기 공황이 찾아왔다>
처음 증상을 접하게 되었을 때 입문서로 좋다. 다만 저자는 신경정신과 전문의면서도 전통적인 대면치료나 호흡법, 심리분석 등은 물론 항우울제, 진정제 같은 약품 사용도 부정적인 입장이다. 그는 공황은 아픈 게 아니라 우리 몸에 설계된 위기 대처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하면서 최신 뇌과학에 기반한 새로운 치료법을 제안한다. 10개의 문장으로 심리훈련을 하는 것과 공포의 패턴을 차단하는 기술 등이 대표적. 무엇보다 일상에서 쉽게 할 수 있어서 마음을 다스릴 필요성을 느끼는 이들이라면 시도해 볼 만 하다.
<정신과는 후기를 남기지 않는다>
독립출판으로 나왔을 때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던 에세이. 마음의 병에 대해서 사전 지식이 전혀 없던 평범한 사람이 정신과 문턱을 넘게 되면서 겪는 일들이 깊은 공감을 자아낸다. 특히 8년간 7명의 정신과 의사를 만나 본 경험을 담고 있어 다른 과보다 의사와의 호흡이 매우 중요한 건강의학과 진료를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 아내로, 엄마로, 딸로 씩씩하게 일상을 보내면서 현재진행형 치료를 이어가고 있는 모습이 진솔하다.
<불안에 대하여>
대학 2학년 때 처음 발병하여 직업을 갖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지금까지 수십년 간 불안장애와 함께하고 있는 이의 기록. 저자인 앤드리아 피터슨은 <월스트리트 저널> 저널리스트이자 논픽션 작가답게 평생 불안을 안고 사는 자신의 모습을 치밀하게 묘사한다. 영화를 보다가, 산에 오르다가, 거리를 걷다가 예고도 없이 들이닥치는 불안의 무게는 읽는 사람에게까지 생생하게 느껴진다. 저자 개인의 치료 여정을 기반으로 불안장애의 정의부터 변천을 거듭해온 치료법들의 역사, 향정신성 약물과 비약물 치료법의 비교, 유전적 영향과의 관계 등 다양한 연구 성과 및 정보들을 녹여내 현황을 파악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기분이 없는 기분>
기분이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기분. ‘기분이 없는 기분’은 과연 뭘까. 어쩐지 알 것 같다는 이들은 주인공에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남편과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삼십대 중반의 직장인 혜진은 어느 날 오래 연락을 끊고 살았던 아버지의 고독사 소식을 접한다. 이미 예전에 정을 뗐으니 괜찮을 줄 알았는데 장례를 치른 후 혜진은 일상을 계속할 수 없게 된다. ‘딱히 나쁜 건 없지만 왠지?’ 어느덧 우울이 만성이 되어버렸다면, 아니 내가 지금 어떤 기분인지 생각해 본 지도 오래되었다면 혜진의 발걸음을 따라가 보자. 담담한 흑백톤이 매력적인 만화로 보는 재미도 있다.
<우울할 때는 뇌과학>
각종 정신질환을 설명하려면 뇌를 비롯한 신체의 기전을 최소한으로라도 설명할 수 밖에 없는데 바로 이 부분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계속 읽는 것을 단념한다. 그간 전두엽, 후두엽, 전전두피질, 변연계 등 헷갈리는 용어들 사이에서 번번이 길을 잃었다면 마지막으로 이 책에 도전해 볼 것. 이 책은 철저히 뇌과학과 신경과학에 기반해 소용돌이처럼 우리를 휩쓸어 늪의 바닥까지 끌어내리는 ‘우울의 하강나선’이 작동하는 모습을 쉽게 설명한다. 또한 뇌회로의 활동을 변화시켜 우울증의 진행방향을 뒤집는 운동, 의사결정, 잠, 습관, 바이오피드백, 감사, 사회적 지원, 전문적 도움 등도 소개하고 있다. 최근 워크북도 출간되었다.
*이 콘텐츠는 반디앤루니스 서평단 '펜벗' 10기 활동을 위해 쓰여졌습니다. 다른 펜벗들의 콘텐츠도 둘러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