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동안 안 썼더니 브런치에게 쪽지받아서 쓰는 글
책을 낼 능력도, 생각도 없는 이에게 브런치는 무엇인가
이번 기회(?)에 브런치의 새로운 알고리즘을 알게 되었다. 게시물을 안 올린지 210일, 그러니까 7개월이 지난 시점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쪽지가 날라온다는 사실. 멘트가 자못 애절하다. "작가님 글을 못 본 지 무려.. 300일이 지났어요 ㅠ_ㅠ 작가님 글이 그립네요.. 오랜만에 작가님의 시선이 담긴 글을 보여주시겠어요? ꈍᴗꈍ" 처음 볼 때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으면서 '아, 그래, 정말 그렇게 오래 되었구나. 써야지" 싶었는데 같은 멘트가 날짜만 바꿔서 30일 주기로 날라오니 어느새 무감각해진다. 그렇게 240일, 270일 기념(?) 쪽지까지 받다가 300일을 거쳐 330일 쪽지까지 도착하니 아, 이러지 말고 하나는 올려야겠다 싶었다. 네, 브런치 운영진 여러분, 성공하신 겁니다!
사실, 고민 중이었다. 이 어설프게 지어놓은 집을 어째야 하나. 텍스트만 모아서 저장한 뒤, 한 방에 홀랑 날리고 계정까지 폭파시킬까 생각도 해봤지만 그것도 귀찮고, 무엇보다 작지만 소중한 '133'분의 구독자와 연결을 끊기는 싫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니 마음까지 무거워져서 가기 싫은 동네, 하기 싫은 숙제 보듯 저멀리 제쳐두고 빙빙 돌고만 있었다. 알고는 있었다. 올해가 지나기 전에 브런치와 어떻게든 한번은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 그래서 330일 만에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언제였을까? 내가 브런치, 나아가 내가 쓰는 글의 가능성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 것은? 전체 글의 업로드 시점과 빈도를 보면 처음 발을 디딘 2019년 하반기에 제일 신이 나서 썼던 것 같고, 2020년 중반까지도 그럭저럭 선전했다. 중반 지나서는 띄엄띄엄 마지못해 쓰다가 2021년에는 완전 침묵. 일반화할 수는 없으나 브런치에 나 같은 분들이 또 많이 계시리라 본다. 처음 작가 승인을 받았을 때 마냥 신나서 이것 저것 올리는 것이 1단계. 운 좋게(아마도 운영진의 전략적인 우쭈쭈로) 브런치 및 다음 포털 메인에 올라가 조회수가 떡상하면서 발이 땅에 안 닿아 있던 시절이 2단계. 그러나 이후 이것 저것 써봐도 메인 등재의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아 그제서야 정신 차리고 브런치 전반을 둘러본 결과 자기성찰을 뼈때리게 하는 3단계에 접어들면 어느덧 업로드는 띄엄띄엄 굼떠지는 것이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곰곰히 생각한 결과 도달한 지지부진의 가장 크고 기본적인 원인은 내가 '책을 낼 능력이 없고' 심지어 '책을 낼 생각도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브런치에 뭘 해야 할 이유의 반 이상이 사라진다.
일단 능력면에서의 현타. 전문적인 것은 나보다 더 가방끈 길고 잘 나가는 분들이 쓰고 있고, 몽글몽글 감성 돋는 글은 나보다 최소 20년은 젊은 분들이 더 나을 것이다. 일하는 내용을 쓰자니 그닥 전문적이지도 않거니와 나눠줄 시간에 나 혼자 '비결'로 간직하고 조금씩 꺼내쓰는게 낫다. 정보 공유도 여유있는 사람이나 할 수 있는 노블리스 오블리제인가 싶다.
그나마 가능한 게 지금 이 브런치에 쓰고 있는 일상 기반의 '에세이 비슷한' 글인데 이걸 어떻게든 모아 출판한다? 생각만 해도 뒷통수가 뻐근하고 이마에 땀방울이 솟는다. 한 사람, 두 사람, 독자들이 읽어주는 건 좋지만 그 이상 본격적인 행보는 좀 곤란하다.(사실 여기 주섬주섬 글을 올리고 있는 것도 내겐 좀 이례적인 일이다). 실명이 아닌데다 클릭 한번이면 삭제되는 온라인 플랫폼에 올리는 건 괜찮다 치지만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가 애꿎은 나무를 베어 종이를 사용하고, ISBN까지 부여받아 전국의 총판 및 서점, 도서관에서 바코드 리더기 한 번으로 삑 읽히는 그 무언가를 만든다는 건 심하게 곤란한 일이다. 심지어 내가 뭘 생각하고 어떻게 사는 지도 몰랐던 주변인들에게 "나, 책냈어"라고 말하며 원치도 않는 책을 내미는 건 아주 곤란한 일이다.
내가 생각하는 브런치는 책 출간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에게 최적화된 플랫폼이다. 전문 직업인으로서 겪는 에피소드, 인생의 위기를 극복해내고 있는 과정, 불안해서 아름다운 찰나의 젊음... 각자 갖고 있는 그 무엇인가를 언젠가 책이라는 응집된 결과물로 만들어내기 위해 한 매거진 당 최소 15개의 꼭지를 채워가며 달려가는 중거리 달리기 또는 마라톤인 것이다. 그 사이에서 무엇 하나 흥미로운 구석이 없는 사람이 스스로도 확신이 없는 상태로 심드렁한 일상 이야기를 끼적거리고 있는 게 무슨 소용인가.
소용, 영양가, 메리트, 전망... 이런 말로 신성한 글쓰기를 저울질하는 것 자체가 일단 싹수가 노랗다, 라고 여기까지 읽으신 브런치 인들은 생각하실 듯. 그렇다. 어느 순간 난 브런치에 들이는 '인풋' 대비 '아웃풋'에 회의를 느끼게 되었다. 정보성 글이든 리뷰든 에세이를 빙자한 넋두리든 브런치에 올리는 글은 품이 든다.(이 글조차 이미 두 시간 넘게 붙들고 있다!) 그래도 글 좀 쓴다는 사람들이 모여있는데 아무렇게나 올릴 수는 없으니 말은 되게 써야 한다. 맞춤법 검사기도 돌려야 한다.
그러니 브런치에 계속 머무는 것은 시간과 에너지 낭비다. 좋아하는 글을 쓰기 위해서라면 밤잠도 쪼개야 마땅하지만 슬프게도 난 하루 잠을 설치면 일주일을 골골하는 오십이다. 하루 24시간 중 그나마 정신차리고 일할 수 있는 8시간 남짓 노동 시간 안에서 효과를 보려면 먼 훗날 언젠가 소액이라도 벌리는 플랫폼에 정보성 콘텐츠를 쌓아야 마땅하다. 이런 저런 제안들을 내놓고 있긴 하지만 애석하게도 브런치는 내가 자는 동안에 돈을 벌어주는 '파이프라인' 플랫폼은 아니다.
그나마 브런치가 아직 내게 유효한 것은 긴 글 콘텐츠가 돋보이는 형식으로 편집된다는 것, 무엇보다 그림보다 글이 많은 콘텐츠를 읽는 사람들이 주류라 아주 가끔 내 비루한 글까지 찾아 읽어준다는 점이다. 브런치는 '아직도 책을 읽는' 사람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희귀한 아지트다.
내 주변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책을 찾아 읽거나 글을 쓰는 사람이 없다. 나름 문과 인간들이 진을 친 직업군인데도 그렇다. 다들 대형서점에 즐비하게 깔려있는 단행본은 하나같이 뒤떨어진 정보라고 한다. <오징어게임>과 <지옥>에 사회 비판과 실존적 질문이 다 담겨 있는데 굳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냐고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무려 1년이나 침묵하고 있는 내 브런치에 띄엄띄엄 구독자가 늘어나는 걸 보면 경이롭다. 수익 창출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쁘고 흐뭇하다. 슬몃 아쉬운 마음에 내뱉은 혼잣말을 누군가 흘려듣지 않고 다음에 아는 척 해준 것 같은 기분이다.
2년 전 나에겐 글쓰기가 절실했던 것 같다. 사람들에게 쉬지 않고 말을 쏟아내고,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고, 밤을 새워 드라마를 봐도 채워지지 않는 뭔가가 있었다. 그냥, 하고 싶은 말들이 자연스럽게 입에 맴돌고, 딱딱하게 뭉쳐서 가슴이 답답해졌다. 어느 순간 그걸 꺼내서 누군지 얼굴도 모르는 이를 상상하며 한 자 한 자 채워 들을 만한 말로 만들었다. 질은 차치하고 양조차 단행본이 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12꼭지짜리 브런치 북이라도 쓰는 순간 즐거웠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지난 1년, 나만의 글 대신 한글과 엑셀, PPT 파일을 만들면서 지낼 수 있었던 것도 브런치 글쓰기의 힘이었다. 내가 '작가'가 아니면서도 형형한 결기에 빛나는 작가들 틈바구니 한 켠 누추한 아지트를 차마 폭파하지 못하는 것도 그때의 기억과 경험 때문인 것 같다. 에라, 조금만 더 고민해보자. 330일도 지났으니 다시 360일까지, 그리고 다시 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