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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진초이 Apr 16. 2023

일과 커리어의 분리

우리가 회사를 다니며 얻을 수 있는 건 페이체크만이 아니다.

나와 회사는 스킬과 돈을 교환하는 관계라는 것이 수년간 줄곧 내가 가지고 있던 커리어에 대한 관점이었다. 회사에서 맡은 영역에 대해 오너쉽을 가지고 충성하는 마음으로 근면성실한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 곧 최상의 금전적 보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 따라서 해를 거듭할수록 무거워지는 나의 페이체크는 나의 발전의 증거가 된다는 것.


이런 생각으로 일에 임했으니 회사 입장에서 나는 줄곧 칭찬해 줄 만한 디자이너였다. 하지만 이렇게 제한적이고 수동적인 관점으로 너무 오랜 시간을 일해온 끝에 느끼는 건 내가 스스로의 진정한 성장을 돌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다. 그리고 “지금 아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하는 회한 끝에는 새로운 각오가 섰다. 회사의 주인인 듯, 하지만 당장 떠날 듯 일하기.


내가 회사의 주인인 듯 열정을 가지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사람을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것은 회사에서의 인정과 승진과 연봉상승 등의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의 어린 나는 이걸 몰랐다. 회사일이 나의 커리어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 이는 얼마 전 지인에게 들은 조언과도 일맥상통한다. 일과 커리어를 분리하라. 여기서 일이란 회사에서 나에게 주어진 일을 뜻하고 커리어란 나의 스킬과 내공을 쌓아가는 개인적인 여정을 뜻한다.


사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내가 개인적으로 성장하고 싶은 부분과 회사가 요구하는 스킬이 정확히 중첩되는 교집합을 만들 때다. 나를 하루도 지치지 않게 하고, 늘 배움이 넘치며, 게다가 금전적 보상까지 받을 수 있다면! 하지만 이런 꿈의 직장을 다닐지언정 나는 당장 떠날 듯 일하라고 지금의 나에게 권한다. 내 커리어에 대한 주인 의식을 가지고 개인의 발전에 충실한 것이 회사의 충직한 직원이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의 커리어를 돌보는 일은 나 아닌 그 누구도 해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결심이 선 나는 내가 원하는 스킬과 내공이 도대체 무엇인지, 그걸 이 회사에서 일하며 얻어낼 수 있는 것인지 치열하게 고민하는 중이다. 둘 다 가볍지 않은 질문이다.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 풀어나가야 할 질문이다. 나 자신에 대해 깊게 들여다보지 않으면 결코 답을 찾기 힘들 질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 나에게는 일과 커리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린 두 아이의 엄마로, 주부로 살아가는 삶도 있다. 그래서 워킹맘의 넋두리를 늘어놓으며 나 자신에게 이렇게 또 권한다. 커리어와 삶을 분리하라. 


그리고 또 아이러니한 반전(?)이 있다. 일과 커리어와 삶의 분리를 논했지만 결국 그 모든 게 나라는 것. 그 모든 게 내 인생에 담겨있는 퍼즐 조각들이라는 것이다.

 


사실 네 번째 문단까지는 일적으로 야심 찼던 몇 달 전 써놓은 글이다. 하지만 아이의 학교 문제로 다시금 엄마로서 내 할 일이 각인되는 순간, 정신을 좀 차려야겠다 싶었다. 이 시점의 나의 인생에서 커리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제목을 보고 유용하고 인사이트 넘치는 내용을 기대했다면 이렇게 치달은 결말에 기운이 빠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의 커리어의 "여정"은 계속될 것이고 조금 더 단단한 생각의 가닥이 잡히면 그때 다시 펜을 들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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