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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rce Sep 27. 2022

하고 싶은 일을 시작했어요

13년차 대기업 때려치고 번역가가 되었습니다

13년 남짓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번역 일을 해보고자 했을 때는 이런 작은(작은 거 맞나…?) 소망도 한 몫 거들기는 했다. 기분 좋게 일어나 아침을 시작한다. 좋아하는 원두 가게에서 사 온 커피콩을 아주 천천히 갈아 커피를 내린다(내 출근 시각을 노려보는 사람이 없으니까!). 일을 시작하기 전, 아침 공기를 마시며 동네 공원을 산책한다. 그래, 요가도 해야지. 어떤 날은 기분 내키는 대로 카페로 가서 책을 먼저 실컷 읽다가 일을 시작해야지. 결국 책이 좋아서 번역 일을 하고 싶었던 거니까. 이런 다소 순진하고 마냥 설레는 마음이 없었다고는 하지 못하겠다. 현대인의 꿈이 아니던가. 창작자의 삶(번역을 창작이라고 쳐준다면), 진정한 디지털 유목민...!


폭력적으로 하루를 열어젖히는 알람 소리, 강남역으로 가는 2호선 지하철 출근길(만인에 대한 만인의 분노가 이런 게 아닐까)만 벗어나도 한결 나을 것 같았다. 이미 사람들로 꽉 찬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는 순간, 누군가가 뛰어와 잡으려고 할 때 그 좁은 공간에 순식간에 차오른 증오심이란. 한 동료는 ‘닫힘’ 버튼을 꾹 누르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참는다고 했다. 그중엔 간혹 안 참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도 간혹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이건 나나 이 사람들 잘못이 아니야, 단 몇 분의 여유도 없게 만드는 사회 탓이야, 라고. 대단한 무슨 주의자 같은 건 아니었다. 어쨌든 계속 이런 생각을 하며 사는 게 맞는 건지 스스로 자꾸 묻게 되었고 이런 방식으로 사는 건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인의 삶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내게 안 맞았다는 뜻이다(사실 직장을 다닐 동안에도 특별히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아닌가...). 누구나 잘 알고 있듯, 직장인의 삶은 꽤 안락하다.


여유로운 아침, 커피 운운하는 내 장밋빛 상상은 프리랜서 번역가로 일을 시작하자마자 단번에 깨졌다. 초조했다. 여유로 따지자면 직장인일 때 훨씬 평안했던 것 같다. 번역은 이제 막 시작한 참이니 비교하긴 이르니까 10년 후에 다시 따져보겠다. 처음부터 출판 번역을 하고 싶어 번역 일을 시작한 거라 출판사들에 이력서를 돌렸지만 일을 주는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이제 와 출판 업계의 사정을 얼마간은 알고 나니 당연한 일이었다. 수만 권이 넘을 외서 중 한 권의 책을 선정하고 판권을 사고 번역을 맡기고 마케팅을 해야 하는 출판사의 입장을 고려하면 생판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몇 달의 기한을 주고 선뜻 번역을 맡긴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번역을 먼저 시작한 사람들은 기획서를 쓰라고들 조언해주었다. 내가 쓴 기획서가 출판사 마음에 들게 되면 번역을 맡을 확률이 높으니까. 아마존에서 책을 골라보려고 하다가 내 책장 앞으로 가 외국 여행 중 사 모은 책들을 살폈다. 그러다 영국의 작은 독립서점 겸 출판사에서 온라인으로 주문해 받은 소설을 집어 들었다. 여기저기서 검색해 모은 정보들로 첫 기획서를 만들었고 누구나 기획서를 쓰면서 느낄 만한 감정을 나도 느꼈다. 이 글을 보면 다들 웃겠지만 그 당시엔 여러 군데에서 관심을 보이면 어떡하나 잠시 걱정하기까지 했다. 번역자들이 모인 온라인상 카페에는 나와 비슷한 걱정을 하던 사람들이 올린 게시글이 이미 있었고 많은 사람이 그런 일은 거의 없을 거라는 애정 담긴 조언을 해주었지만, 왜 나는 다를 거라고 생각했던 건지.... 이건 아마 안 될 거야, 하면서 기획서를 쓰는 사람은 없을 테다. 책이 좋다고 생각하니까 굳이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기획서를 쓰는 거니까. 쓸 땐 분명, 이 책 왜 아직 번역 안 됐지? 하는 마음이었는데 스무 군데 정도의 출판사에 기획서를 보냈으나 아무런 회신을 받지 못하자, 그리고 외서 리뷰들을 꽤 하고 보니 출판사에서 관심을 보일만 한 책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이제는 든다. 그 책은 1950년대에 쓰인 고전에 가까운 느낌의 소설이었고 영미권에서는 인기가 있었으나 그 인기는 고전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있는, 그러니까 거의 없다고 봐야 하는 한 줌의 인기였기 때문에 선택받을 가능성이 굉장히 희박한 책이지 않았을까. 그래도 평소 좋아하는 한 출판사에서 작가와 책에 대한 흥미를 보이며 정중한 회신을 보내주어(물론 거절의 메일이었지만) 그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두 번째 기획서를 쓰고 있지만 자신이 없다. 평생 독자로서만 책을 읽을 때는 책을 고르는 게 무척 쉬웠고 주변 친구나 지인들이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성향 따라 그들이 좋아할 만한 책을 고르는 데 언제나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거의 항상 만족했다. 그래서 착각했던 것 같다. 이미 시중에 나온 책들은 눈 밝은 편집자들과 출판사들이 고르고 고른 책이었다는 이 당연한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지금은 많은 외서를 검토하다 보니 자기계발서나 경제경영서의 비중도 꽤 높고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책이 많다는 걸 깨닫고 있다. 나는 인문서도 좋아하지만 주로 문학을 읽고 즐겼는데 이제는 일 덕분에 거의 모든 분야의 책을 읽고 있다. 소설, 역사, 정치, 환경, 심리, 의학, 자기계발, 경제, 경영 정말 다양하다. 


이제 출판 번역에 막 발을 들인 사람(얼마 전 첫 번역서를 맡았다!)으로서 외서 검토 일을 많이 하고 있다. 내가 검토한 책 중 하나가 제발 번역으로 이어지길 바라면서 말이다. 그 확률이 희박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 일이 가능해지려면, 검토한 도서가 편집자의 눈에 들고, 그 출판사에서 판권을 사기로 결정하고, 또 다른 출판사와의 판권 경쟁에서 이기고, 출판사에서 경력이 거의 없는 내게 번역을 맡기기로 결정해야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그래도 이 방법밖에 없는 것 같다. 출판사에서 단번에 혹할 만한 기획서를 써내든가 계속 외서들을 검토하며 그중 한 권을 맡길 바라든가. 소설이나 에세이 같은 문학 번역을 하고 싶은데 그건 훨씬 더 어려운 일 같다. 이력서를 돌렸을 때 한 출판사에서 따뜻한 조언이 담긴 회신을 받았다. 문학 번역은 제2의 작가와도 같은 실력이 요구되니 이 점을 잘 고려해서 일하기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맞는 말이다. 번역을 공부할수록, 번역 일을 할수록 매 순간 느낀다. 아마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느낄 것이다. 경영서를 번역하고 있는 지금도 아주 자주 벽에 부딪히고 쓸 말을 고르지 못한다. 문학은 더 그럴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이제 막 시작하는 초짜라 그런 것도 있을 테고, 번역이 원래 그런 것도 있을 테다. 무척 좋아하는 김선형 번역가(《가재가 노래하는 곳》, 《시녀 이야기》 번역)는 번역이란 영매의 일과 비슷한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번역을 ‘서 있는 시간과 공간과 경험의 한계 속에서 내가 마주치는 의미를 최선을 다해 언어의 경계를 넘어 옮기는 작업’이라고 했다. 실제로 번역 일을 하면서, 한 문장을 읽고 옮겨 쓰고, 다음 문장을 읽고 옮겨 쓰고, 또다시 첫 문단의 문장으로 돌아가 이 문맥이 맞나 살피고, 이 과정을 끝도 없이 반복하면서 김선형 번역가의 말을 떠올린다. 특히 소설을 검토할 때는 나도 모르게 더욱 몰입한다. 검토하고 있는 책이 너무 좋을 때는 일을 하는 내내 들뜬 마음을 달래야 한다. 이제 검토 일을 하고 첫 번역서를 맡은 주제에 너무 혼자 진지하고 과몰입한 게 아닌가 싶지만, 과몰입이 특기다. 그리고 원래 회사에서도 신입사원들이 제일 비장하지 않은가.


번역 일을 해보겠어, 마음먹었을 때만 해도 자신만만했다. 이렇게 쓰다 보니 어쩜 그렇게 뻔한지. 책을 좋아하고, 영어도 곧 잘하고, 호기심이 많고, 엉덩이가 무거운 사람들이 번역에 제격이라고? 그게 바로 나야, 생각했다. 지금은... 영어도 모르겠고, 한글도 모르겠고, 책은 더 모르겠고. 모르는 단어는 하나도 없고 의미를 모르지도 않는데 글을 옮기는 일이 너무 어렵다. 막혔던 곳에서 좋은 문장이 떠오른 것 같아 얼른 타이핑하고 있으면 동시에 이 단어가 이렇게 쓰는 게 맞던가, 생각이 치고 들어온다. 그 순간, 떠올랐던 좋은 문장은 사라지고 온데간데없다. 이렇게 하다 보면 눈 깜짝할 사이에 서너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고 머리가 아프고 허리가 아프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 재밌다. 특히 소설을 검토할 때는 행복감마저 든다. 마음은 이미 거의 작가다.... 이 소설 번역을 내가 맡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한다. 그런 일이 내게 일어날까? 이제는 어리지도 않은 나이에 일에서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게 행운이란 걸 안다. 얼마 전에 어떤 번역가가 문학 번역을 하고 싶다고, 아무도 시켜주지 않으니 내가 직접 쓰는 게 빠르겠다고 푸념하듯 쓴 글을 보았다. 난 소설을 쓸 능력도 없는데. 


아, 그래서 프리랜서 생활을 시작한 지 반년이 지난 지금, 처음 내가 썼던 것처럼 바라는 아침을 살고 있냐고 묻는다면... 정반대다. 밤늦게까지 일을 하고 아침에 비몽사몽 일어나 커피는커녕 아이 유치원 갈 시간에 맞춰 우당탕 아침을 먹이고 옷을 입히고 차를 태워 등원시킨다. 그러고 나면 그나마 한숨 돌리는데 그래도 산책이나 요가를 할 만한 마음의 여유 따위 없다. 원두를 갈면서 오늘 일할 분량을 생각하고 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똥을 치우며 다시 시간을 확인한다. 책상에 앉아야 하는데. 심지어 인생에서 이렇게 책과 오래 떨어져 산 적은 처음이다. 온종일 책을 검토하고 글을 옮기니 책과 딱 붙어있는 것처럼 보이긴 하겠지만 좋아하는 책을 읽을 시간이, 일을 시작하고 서너 개월 동안엔 없었다.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얼마 전엔 주말에 일하던 중, 같이 사는 사람이 공원에 조깅하러 나가자고 했고, 난 책 읽을 시간도 없는데 운동할 시간이 있겠느냐고 화를 버럭 내버렸다. 같이 사는 사람은 지금 보고 있는 건 책이 아니냐고 물었다. 난 책을 번역하고 있었으니까 답하자면 책은 맞다. 그렇다, 나는 잠잘 때를 빼곤 늘 책을 보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책은 일이었고 휴식으로서의 독서가 아니었다. 다들 무슨 말인지 알 거다. 책 읽을 시간에 번역한 글을 한 번이라도 더 읽고 수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또, 번역할 동안엔 책을 더 많이 읽어서 어휘와 문장력을 늘리고 싶었고, 휴식 시간에 책을 읽고 있으면 번역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지금도 그렇다. 아마도 이 일을 하는 한, 평생 그럴 것 같다. 그런데 몇 개월간, 밤낮, 주말 없이 일하다 보니 계속 일하려면 이렇게 지속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 내가 책을 재미와 안식처로 삼았던 그 시간은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요가와 산책을 할 만한 여유까진 챙기지 못했지만 책 읽는 시간은 꼭 가지려고 노력 중이다. 프리랜서 초보라 좌충우돌하고 있다. 멀지 않은 미래에 “나 소설 번역해요! 이제 요가도 하고요!”라고 말할 수 있는 날도 오길 바라본다.


*지금은 네 권째 책을 번역하고 있어요. (책 번역 의뢰 환영합니다.)

**매거진 번역하다에 기고한 글을 옮겼습니다. 

(혹시 문제가 된다면 삭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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