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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이 되어서야 알게 된 것들

오래 산 줄 알았는데 아직도 많이 남았네?


"아빠, 생신 축하해요!"


평소 같았으면 회사를 갔어야 하는 날이었지만 이번 내 생일에는 여행이 계획되어 있어서 집에서 가족들과 오손도손 생일을 맞이 했다. 보통 한국에서는 1월 1일부터 나이 한 살 더 먹었다고 표현을 하니까 마흔이 된 지는 꽤 오래 지났지만 못내 아니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가 오늘이 되어서야 케이크에 촛불이 기다란 것 4개가 딱 있는 것을 보면서 현실을 직감했다. 이제는 진짜 어딜 나가도 '아저씨'라고 표현될 만한 나이. 그게 바로 나인가?


"작년보다 케이크의 초 불기가 너무 쉽구나, 쉬운데 왠지 씁쓸하네?"

"그래도 초가 더 많은 거보다는 낫지 않나? 99살 돼서 하면 얼마나 슬플 거야?"




99살? 아직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하지만 어릴 적 생각을 해 보면 20살이 굉장히 나이 많아 보였고 30살은 보이지도 않았으며 40살이 되면 무슨 재미로 인생을 살까 싶었다. 그런데 막상 40살이 되어보니 아직도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고 해야 할 것도 너무 많으며 생각보다 그렇게 많은 시간이 흘러간 것은 아니지 않나 싶기도 하다. 세상에 빌 게이츠나 이재용과 나와 공통적인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시간' 일 텐데 왜 이렇게 1년이 지날 때마다 흘러가는 시간의 속도가 다른 것일까? 우스갯소리로 시간은 가면 갈수록 제곱의 속도로 흘러간다는 사실이 마음에 와닿았다.



"아들, 생일 축하한다."

"(대충 고맙다는 이모티콘)"


부모님에게도 축하 문자가 왔다. 부모님한테도 답장을 보낼 때 이모티콘으로 퉁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이럴 때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하게 된다. 사실 고맙다고 뭐라도 쓰고 싶기도 하지만 길게 쓸 말도 없고 글자보다 그림이 딱 눈에 보기 좋지 않은가?(물론 나 혼자만의 생각일 수도 있다) 물론 나의 부모님도 내가 뭔가 질문을 하거나 답변을 할 때 이렇게 이모티콘만 덩그러니 보낼 때가 꽤 있다. 뭐 어떤가? 의미만 전달되면 됐지. 지금의 1020 세대들도 그렇게 하지 않을까? 혼자 보내면서 '나도 그들과 같은 생각이야'라고 혼자 생각해 본다.




"오랜만에 기차를 타서 너무 설레어요."

"기차를 안 타본지 얼마나 됐지?"

"한 3년 만에 타 보는 거 같아요."

"그렇게 오래됐었나?"

"아빠 나이에 비하면 얼마 안 되네!"


큭, 아빠 나이는 왜 또 들먹여!

3/40이면 10%는 안되지만 그래도 높은 비율인데 말이지. 그나저나 꽤 오랜만에 경주에 가 본다. 과거 중고등학교 때 매 번 수학여행지가 경주여서 '나중에 크면 절대 경주에는 놀러 오지 말아야지'라는 말을 많이 하곤 했었는데 크고 나니 자녀 사회 공부시킨다는 핑계를 가지고 내려가고 있다. 마음속 한편으로는 그때의 기억이 다시 날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기차에 올랐고 설레는 마음에 잠을 이루지 못할 줄 알았지만 기차 출발한 지 3분 만에 잠이 들었다. 나이는 못 속이는 건가?


"여기가 이렇게 이뻤나?"

"낮에만 돌아다녀봐서 모르는 거 아닐까? 밤엔 와 본 적이 없을꺼자나."

"그러게, 진짜 그럴 수도 있겠다."

"아, 나 저 위에 올라가 본 적 있다! 어릴 적에."

"지금 올라가면 벌금 2천만 원 이라는데?"

"지금은 올라가래도 안 간다. 저 위에 뭐 아무것도 없는데."


이 정도 나이대의 사람들은 아마 이런 추억들이 있었을 것이다. 주변에 무덤(릉)이 넘쳐나니 심심하기도 하고 젊은 혈기를 이기지 못해서 신나게 무덤 위로 뛰어다녔던 모습을. 사실 막상 올라가면 뭐 아무것도 없지만 내려올 때 누워서도 내려와 보고, 뭔가 가지고 올라가서 내려오기도 하고 막 뛰어내려오기도 했다. 다다다다 뛰어가는 마리오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아, 점프는 못했다) 지금은 못한다고 하니까 그냥 상상만 해 본다. 다음날 투어에 가서 들었던 내용인데 얼마 전에도 작년에도 꼭 술 먹고 올라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저기서 티샷을 하는 할아버지도 있었다고 하니 뭐 말 다했지...


"자꾸 옛날이야기하면서 추억 곱씹으면 늙어간다는 건데"

"그래도 그때 생각하면 재미있지 않아?"

"사실 재미있으니까 하는 말이야. 늙어가는 거 같아서."


뼈 아프다. 뭐, 그래도 옛 추억을 곱씹는 것은 이미 20대 군대 졸업하고도 정말 많이 했는데 뭐. 




밤이 늦어지고 술도 한 잔 거나하게 걸치고 눈을 감기 위해 이불을 펴는 그때, 아내가 질문을 했다.


"40이 되어서 이렇게 경주를 와 보니까 어때?"

"음, 옛날 기억이 나면서도 사실 바뀐 게 너무 많아서 좀 어색하다."

"우리가 여길 학창 시절에 왔었으니 벌써 30년 가까이 된 것인데 진짜 오래됐지?"

"그러게 진짜 오래됐다."

"근데 재미있는 거 하나 가르쳐 줄까?"

"뭔데?"

"사실 지금까지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야 할 날이 더 많다? 40살 되면 앞으로 죽을 날만 기다릴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네?"

"아직 해야 할 것도 많고 살 날도 많네, 40 그냥 숫자만 많아 보이는 거네!"


술 취해서 그런가, 뭔 헛소리 같은 이야기를 한다. 어릴 적 바라봤던 40은 정말 세상 힘들고 온갖 고뇌를 가지고 있던 그리고 항상 늦게 퇴근하던 아버지의 모습을 기억했는데 실제로는 아닌 것 같다. 50이 되면 좀 다를까? 사실 그때가 되더라도 이렇게 글을 쓰고 있고 (잘리지 않았다면) 일을 하고 있겠지? 오래 산 줄 알았는데 의외로 철부지 같고 앞으로 살 날이 창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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