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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조 Jun 16. 2022

너는 없고 규동만 남았네

그냥 그 자리에 두면 돼



   쓸데없는 기억력이 좋은 건지 나는 유난히 어떤 음식을 떠올리면 떠오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이 이야기를 쓰고 있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음식을 좋아하지만, 그중에서도 나의 최애 음식 중 하나는 바로 규동이다. 규동을 좋아하게 된 인생의 한 시기가 존재한다. 대학 졸업 후 한국에 와서 작은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혹독한 몇 개월간의 인턴생활을 마친 후 (시급이 4000원이 조금 넘던 야만의 시대였다) 규동과 오니기리(일본식 삼각김밥)를 파는 식당에서 알바를 했었다. 정확히 말하면 친구 어머니께서 하시는 가게였고, 취준생이었던 내 친구는 어머니를 도와드리러 종종 가게에 나갔고, 마침 인턴이 끝나자 일할 사람 구하는 게 너무 어렵다며 친구 어머니께서 나에게 알바를 제안하셨다. 이 친구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전학을 가서 처음 알게 된 친구이고 중학교 시절 내내 꽤 친하게 붙어 다녔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조금씩 멀어져서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어졌었는데, 졸업 후 동네에서 우연히 만나 오랜만에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다시 절친이 된 독특한 케이스였다. 어릴 때부터 추억도 있고, 얼마간의 공백기도 있었던 터라 친구와 함께 하는 알바는 할 말도 많고 꽤 즐거웠다. 가게가 넓지 않았기 때문에 둘이서 손님들을 응대하기에 충분했고, 주로 학원가의 배고픈 청소년들과 근처의 직장인들이 찾아왔다. 손님이 몰리는 밥시간을 제외하면 쉬는 시간도 있었고, 일도 김치 잘게 자르기, 단무지 자르기, 오니기리 만들기 등의 단순 업무가 꽤 재미있었고, 시간이 지나자 우동 삶는 법이나 규동 만드는 법도 배우게 되어 음식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는 즐거운 일터였다. 친구 어머니가 하시는 가게인 만큼 우리의 식사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는데, 그날 먹고 싶은 요리를 우리가 마음껏 만들어서 먹을 수 있었다. 수업을 마치거나 퇴근하고 가게로 찾아오는 친구들과 함께 셔터 내리고 재고로 우리만의 규동&오니기리 파티를 종종 열기도 하였다. 당시에 직장을 그만두기 전에도 종종 가게에 갔었는데, 일할 때 속이 자주 아프고 탈이 났던 나는 이상하게 규동을 먹으면 속이 괜찮았다. 어머니는 우리가 좋은 재료를 써서 그런 것 일 거라 하시며 늘 푸짐하게 챙겨주셨고, 그때부터 규동의 매력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그때 정말 많은 규동을 해치웠다. 친구 엄마가 아니라 다른 사장님 같으면 가만두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대학교 때 식당에서 알바를 해보기도 했지만, 직접 요리를 조금씩 할 수 있는 규동 집은 왠지 더 재미있었다. 규동 그릇에 정량의 밥을 담고 고기를 잔뜩 올리고 고기를 끓인 소스 국물을 자작하게 부운 뒤 계란 노른자만 분리해 가운데에 예쁘게 올리고 베니쇼가(적채 초생강)를 잔뜩 올려서 먹으면 달콤 짭짤한 맛이 한식의 불고기와는 다른 매력이 있는 최고의 한 끼가 된다. 규동과 오니기리를 워낙 열심히 팔고 먹어서였을까 알바를 마무리할 무렵 일본 도쿄로 여행을 가기로 마음먹었고, 친구 어머니는 여행경비로 쓰라며 용돈까지 챙겨주셨다. 일본 본토에서 먹는 규동은 역시나 기대했던 만큼 맛이 좋았다. 반찬이나 물도 추가 요금을 받아서 한국인 기준에는 조금 야박해 보이는 일본의 문화에서도 규동 위에 올려 먹는 초생강 베니쇼가는 내가 가본 규동 집마다 테이블에서 셀프로 덜어 먹을 수 있어서 넉넉하게 올려 규동을 마음껏 즐겼다. 우삼겹 부위를 쓰는 규동은 기름기가 많은 부위라 조금 느끼할 수 있지만 베니쇼가 덕분에 더욱 맛있게 즐길 수 있다. 일본 여행을 하며 무얼 먹어도 맛있는 음식에 입도 마음도 즐거웠고, 구슬을 쏙 눌러서 먹는 일본식 사이다 ‘라무네’는 탄산음료를 즐겨 먹지 않는 편인 대도 보는 맛 소리로 느끼는 맛이 재미있어서 보일 때마다 사 먹었다. 본토에서 먹는 맛이 어찌나 좋던지 그때 이후로 일본을 여행할 때마다 규동과 돈코츠 라멘은 꼭 챙겨 먹게 되었고, 지금도 규동을 너무나 좋아한다. 일본에 사는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 규동을 꼭 먹고 가야겠다고 했더니 규동 말고도 맛있는 음식이 많은데 왜 굳이 그걸 먹고 싶으냐고 내가 신기하다 했다. 규동은 주로 간편하지만 든든하게 먹는 아침식사라 규동 집에 가보면 양복 차림을 한 샐러리맨 아저씨들이 규동을 먹는 장면도 자주 볼 수 있었다. 일본 아저씨들의 밥 먹는 뒷모습을 보면 한국인의 국밥 같은 소울푸드가 아닐까도 생각이 들었다.  


  규동 전문점에서 일하면서 자영업자 사장님들의 고충을 새삼 느꼈다. 규동에는 원래 우삼겹 고기를 넣어 끓인 간장 베이스 국물을 작은 두 국자 정도 넣어 밥이 촉촉해지게 먹는데, 어떤 사람은 국물이 많아서 좋다, 어떤 사람은 국물이 적어서 좋다 하는 것이었다. 사람들 입맛에 따라 국물이 많은 것을 선호하기도 하고 반대이기도 한 것이다. 사람들 입맛을 맞추기도 어렵고 주문받을 때 미리 선택할 수 있은 사항이 아니어서 어떤 분께는 국물을 더 드리기도, 어떤 분께는 밥을 더 드리기도 했다. 점심 식사 이후 한가해지는 시간이 되면 친구와 나는 어떤 규동이 가장 맛있는 비율일까 머리를 맞대고 토론을 해보기도 했다. 입 아프게 토론해 보아도 내 입맛에 맞는 것이 제일 맛있는 비율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돈부리는 일본식 덮밥으로 규동, 카츠동, 오야꼬동, 부타동 등 다양한 종류의 돈부리가 있다. (*-돈이 ‘덮다’라는 뜻인데 한국에서는 발음 때문에 동으로 바뀐 듯하다) 돈부리는 한국식 비빔밥과는 다르게 섞어먹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튀기지 않아서 부담 없고 달짝지근하면서도 짭짤한 대표적 단 짠 음식인 규동은 내 입에 언제나 맛있고 든든한 음식이다. 맛있는 규동 집이 가까이에 있으면 참 좋을 텐데 대한민국 대표음식 불고기의 위력일까 규동을 전문적으로 하는 집은 생각보다 찾아보기가 힘들다. 간혹 규동 집을 찾아도 본격적인 규동 전문점이 아니고서 규동보다 불고기 덮밥에 가까운 맛을 내는 규동 집이 더 많아 알바의 추억을 떠올리며 집에서 규동을 만들어 보았다. 설레는 첫 시도부터 매우 성공적이었다. 가족들도 한식과 다른 맛을 좋아해 규동을 집에서 종종 해 먹기 시작했다. 규동은 가다랑어와 다시마로 육수를 내고, 간장, 설탕, 생강, 미림만 있으면 간단하게 해 먹을 수 있는 간편식이다. 일본식 맛간장 쯔유나 만능 간장이 있다면 요리는 훨씬 더 간단해진다. 일본에서는 우삼겹을 쓰지만, 쉽게 구할 수 있는 얇게 썰린 불고기 고기로도 충분하다. 나는 지금도 육수의 정확한 비율은 모르고 간을 직접 보면서 비율을 맞춰 맛을 낸다. 아르바이트할 때 먹던 그 맛이 나오기를 기대하며 아직도 매번 내 입에 맞는 비율을 찾아낸다. 규동을 만들어 먹을 때마다 어찌나 만족스러운지 영화 <심야 식당>이랑 <카모메 식당>을 꿈꾸며 조그만 규동 식당을 하나 차려보고 싶다는 행복한 상상을 해보곤 한다. 규동처럼 만드는 과정은 간단하지만 훌륭하게 한 끼를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따름이다. 


 나는 여전히 규동을 좋아해서 종종 만들어 먹기까지 하는데, 그때 알바를 함께 했던 그 친구와는 지금은 인생의 여정을 공유하지 않는다. 규동 집에서 아르바이트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와 그 친구 모두 원하던 곳에 취업에 성공을 했다. 나는 방송국에, 그 친구는 항공사에. 함께 취업을 간절히 바라던 동지여서 그런지 서로의 취업 성공 소식에 기뻐해 주었는데, 나는 몇 달 지나지 않아서 어렵게 들어간 직장을 내 발로 그만두고 나와 버렸다. 평양냉면 편에서도 나오지만 방송국에서 일하던 끝 무렵에는 위염이 너무 심하게 걸려서 출근하다가 지하철에서 거의 기절할 뻔했던 날이 있었다. 스트레스와 지칠 대로 지친 몸 상태 때문에 위염은 퇴사 후에도 낫지 않아 한 달 내내 하얀 죽만 먹어야 했고 살도 한 달 만에 5kg나 빠져 성인 이후 인생 최저 몸무게를 기록했었다. 괴로웠던 위염을 포함해 약 1573가지 정도의 이유로 그만둬야겠다고 결심을 했을 때 스튜어디스가 된 친구가 회사 근처로 와서 오랜만에 조우하게 되었다. 한창 예민하고 바빠졌던 시기라 그전부터도 미묘하게 서로에게 서운한 것이 조금은 쌓여있기도 했던 것 같은데, 몇 개월은 제대로 안부도 묻지도 못하고 바쁘게 지내고 있을 때였고, 각자의 인생에서 워낙 중요한 시기라 사소한 이야기는 과감히 건너뛰어야 했다. 친구를 만난 나는 1573가지의 이유를 일일이 말할 시간과 열정이 없어 심플하게 ‘나는 그만두기로 결정했고, 보람을 느낄 수 없는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나의 구구절절함을 꾹꾹 눌러 말했다. 친구니까 그렇게 말해도 이해해 줄 줄 알았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친구는 위염에 걸려 피골이 상접해 같이 식사도 못하고 물만 홀짝거리는 나에게 세상에 보람된 일이 어디 있냐며, 네가 철이 안 들어서 그런 것이라고 그 자리에서 정색을 하는 것이 아닌가. 지금 생각해도 그 순간은 나에게 상처가 되는 장면이다. 물론 이후에도 방송사이자 대기업을 스스로 그만둔 나에게 굴러온 호박을 발로 찼다느니, 네가 평생 원하던 꿈을 너무 쉽게 포기했다는 등 다양한 비난과 평가의 말들을 들어야 했지만, 그때 그 친구가 면전에서 했던 말이 유난히 더 상처가 되었다. 우리가 함께 해치운 규동 그릇만큼만 나를 생각해줘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에 위염으로 콕콕 쑤시는 위보다 가슴이 더 아팠다.  


  나를 잘 이해할 수 있는 친한 친구라고 믿어서였을까. 나중에 알았지만 항공사도 초반에 외국어 공부, 수영 등 엄청나게 힘든 시험들이 계속 있어서 중간에 그만두는 사람도 꽤 있다고 들었다. 그때는 당연히 그 사정들도 잘 몰랐고, 나는 고작 나 하나 챙기기에 피곤했다. 몇 년이 지나 더 어른이 되어 돌아보니 그 친구는 나와는 너무 다른 가정 상황에 있었다. 아마 첫 사회생활이 아무리 힘들어도 자신이 그만두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고 철없어 보일 수 있는 내 모습을 보니 화가 나서 그렇게 말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나이가 들수록 인간관계는 한번 균열이 생기면 다시 붙이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고, 서운함을 일일이 말하는 것도 복잡하고 귀찮은 일이 되어, 나는 그 친구와 그렇게 서서히 멀어져 갔다. 


  몇 년 후 그렇게 연락이 끊어진 지 오래된 최근에 또 우연히 그 친구를 만났다. 살면서 아는 사람들을 우연히 만나는 경우는 드물었는데, 사는 곳도 달라진 지금 이 친구랑은 두 번이나 우연히 마주친 것이 신기했다. 서로 연락하지 않고 지낸 공백만큼이나 어색하게 짧은 대화를 나누고 헤어졌다. 이번에는 신기한 우연이 다음의 인연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직감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20대의 어느 날처럼 그렇게 반갑지도 않았고, 또 연락하자고 마음에 없는 인사를 하는 이도 없었기 때문에. 몇 년 전까지는 멀어진 관계들 때문에 어찌나 속이 상하는지 깨진 관계가 나의 잘못인가 친구의 잘못인가 무엇이 문제인지 머리를 싸매고 힘든 밤을 여러 날 보내기도 했었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시간이 흘러 무뎌진 것일까, 사람들 관계에도 유효기간 같은 것이 있는 것일까, 서운함까지 추억이 된 것일까. 만남 이후에도 위염에 속이 쓰리던 그때가 생각나 며칠 동안이나 정리가 되지 않다가 문득 깨달았다. 그냥 그 자리에 두면 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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