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은 의연하다. 내가 방 안에서 목을 맸을 때도 동생은 울지 않았다. 다만 이를 악물고 스타킹이나 노끈, 밧줄의 매듭을 풀어냈을 뿐이다. 가족들이 잠들었을 때 그 짓을 했기 때문에, 이제 동생은 내가 잠들기 전에는 잠들지 못한다. 얼마 전 동생과 함께 병원에 갔다. 의사 선생님께 진료를 받는데 동생이 핸드폰 메모장을 켰다. 거기엔 한 달간의 내 상태와 약 부작용 등이 빼곡히 기록되어 있었다. 나는 동생에게 10만 원이 넘는 원목 오거나이저를 선물했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는 한참 부족하다는 것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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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직속 사수 K팀장은 내가 거의 한 달 넘게 업무 공백을 빚었음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소윤의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며 나를 독려한다. 덕분에 그는 업무 과부하에 걸렸다. 그는 오늘도 야근을 한다. 11월에 나왔어야 할 내 책이 내년 1월에 나온다. 모든 것이 엉망이 되었다고 느낄 때마다 팀장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문제 없다고, 아무 문제 없게 내가 만들 거라고, 소윤은 잘 하고 있고 하던 대로 하면 된다고, 그리고 언제든 힘들면 쉬고 돌아오라고 말한다. 돌아오라고, 돌아오면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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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P와는 영화 <듄>을 보러 가자고 약속했었다. P는 드니 빌뇌브 감독의 팬이다. 영화를 보러 가기로 한 날, 나는 일어나지 못했다. 나는 P와의 약속을 자주 어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P는 내게 약속하고, 또 약속한다. 곱창을 먹으러 가요. 충무로의 예쁜 카페에 가요. 내가 지키지 못할 약속일지언정 P는 끊임없이 내게 약속해준다. <듄>이 영화관에서 내려가기 전에 나는 P와 <듄>을 꼭 보고싶다. <듄> 말고 앞으로 개봉할 영화도 계속 계속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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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편집자이자 내 입사 동기인 J는 내 병의 사려 깊은 이해자다. 그는 얼마 전 저명한 작가와 여성 우울증에 관한 책을 함께 만들었다. 나는 J가 그 책을 만듦으로써 나를 좀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J는 그 책을 만들기 전부터 내가 신뢰할 수 있는 이해자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 책을 한 장 한 장, 아주 귀하게 아껴 읽었다. 나는 회사에 자주 결근한다. 때로는 한 달 가까이 병가를 쓸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J는 점심시간마다 나와 커피를 마신다. J는 종종 내게 병에 대한 새로운 인사이트를 주는 좋은 글들을 공유해준다. J는 언젠가 소윤의 가장 큰 재능은 ‘사랑’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한동안 그 말이 나를 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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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후배인 L과는 사실 데면데면한 사이다. 단 둘이 밥도 먹어본 적 없다. L은 언젠가 내게 글을 한 편 써달라고 부탁했고, 그 글의 참고자료가 될 만한 책을 내게 빌려주었다. 역시, 나는 그 글을 써내지 못했다. 아주 오랫동안 그 책을 품고 있었으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L은 책을 돌려받으면서 내게 고양이 피규어와 작은 카드를 주고 갔다. ‘조금 이르지만, 크리스마스 선물이예요.’ 카드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앞으로도 언니 글을 계속 읽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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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은 나를 용서해주었다.
그는 나를 괴물이 되지 않게 했다.
그것으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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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전에, ‘돌봄’이란 한 사람이 한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받는 것, 그럼으로써 누군가를 필연적으로 착취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여러 이들에게 돌봄을 조금씩 나누어 받고 있고 그것은 더 큰 돌봄이 되어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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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목을 매도,
회사에 가지 못해도,
책을 만들지 못해도,
약속을 어겨도,
글을 쓰지 못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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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돌아오는 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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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아갈 수 있기를, 병이 나아가고 그로 인해 내가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기를. 언젠가는 일 얘기를 다시 쓰고 싶다. 내가 너무도 사랑해 마지않는 책 만드는 일에 관하여, 누군가의 생각을 감각으로, 하나의 물성으로 내놓는 일에 관하여. 그때까지 이들이, 돌아오는 봄까지 내 여정과 함께 해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후에는 나도 누군가를 돌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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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에 비치는 한 줄기 해 그림자에게 세상 전부를 다 주어도 아깝지 않았다는 마야코프스키의 시를 좋아한다. 그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봄을 나눠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