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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윤 Feb 15. 2022

회복기의 노래

희박하고 연약하지만, 분명히 나아갑니다.

보컬 수업이 끝나면 대개 밤 9시에서 10시 사이에 집으로 돌아온다. 퇴근 후 바로 홍대로 가서 노래를 부른다. 아무리 일이 지치고 힘들어도 빠진 적이 없다. 노래 부르기는 글쓰기 다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일이다. 잘 부르건 못 부르건 상관없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에 노래를 부른다.


처음에는 반 장난같이 시작했다. 비트 메이커 친구가 처음으로 소박하게 만든 비트 위에 내 멜로디를 얹은 게 시작이었다. 내 목소리가 몇 번의 믹싱을 거치고 나니 그럴듯한 노래가 되었다. 본격적으로 보컬 수업과 믹싱을 배워보라는 친구의 권유에, 아는 분의 소개를 받아 홍대에서 보컬 수업을 들은 지 한 달째다. 보컬 수업은 7시다. 6시에 충무로에서 퇴근하고 종종걸음으로 홍대에 간다. 간단하게 요기를 한 뒤 수업을 듣는다. 배에 힘을 주고, 노래에 호흡을 얹고, 때로는 노래 속에 호흡을 집어넣고, 노래는 숨과 소리의 놀이다.


아주 오래전에 사람이 노래가 되는 소설을 쓴 적이 있다. 마치 꿈결처럼, 아. 하는 사이에 노래가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안타깝게도 잊힌 가수의 아주 잊힌 앨범의 마지막 트랙이 되어, 아무에게도 불리지 않는다. 노래의 속성이란 여러 사람의 입과 입을 거침으로써 크게 불리고 멀리 퍼져서 살아나는 것이라, 그 노래는 자신이 죽은 줄로만 알고 늘 외로이 산다. 지금껏 수없이 불렸고 불리는 히트곡들을 부러워하며. 그러다 언젠가 시위 현장에서 노래-자신을 부르면서 연대하는 이들을 발견하고, 노래는 그들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 살아나서 다시금 울려 퍼진다는 내용의 소설을 쓴 적이 있다.


노래가 살아있는 생명이라면 가사는 뼈고 멜로디는 살일 거라고, 그렇게 상상하며 소설을 썼다. 흙으로 사람을 빚듯 가사라는 뼈대 위에 멜로디라는 살을 붙여 노래를 부른다. 호흡은 노래가 움직이는 길이다. 호흡 위에 노래를 실어 저 멀리 보낸다. 한번 불린 노래는 희박해질지언정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언젠가 다시 불릴 거라는 의지만으로도 노래는 사라지지 않는다.


요새 내 삶은 일과 책, 글과 노래로 충만하다. 예전에는 늘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는 삶을 살았다. 연인들과 헤어지고 나서 거대한 버팀목이 꺾인 듯 바람 한 자락 먼지 한 톨에도 휘청거렸다. 그러나 요새는 큰 버팀목들이 아닌 작은 버팀목들에 기대어 살아간다. 이 작은 버팀목들이 흔들리면 다시 저 작은 버팀목에 기대고, 저 작은 버팀목들이 휘청이면 다시 이 작은 버팀목들에 기댄다.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이, 너무 큰 버팀목 말고 작은 버팀목들을 많이 만들어 놓으라고 했다. 사람은 너무 큰 것이 아닌 자잘한 것들에 기대어 사는 거라고. 간절했던 삶이 간결해졌다. 일과 책, 글과 노래, 가끔 좋은 사람들. 바람 한 자락 먼지 한 톨에도 휘청거리는 마음이라면 햇빛 한 줄기에도 따뜻해질 수 있겠지.


일과 책, 글과 노래, 가끔 좋은 사람들. 내 삶을 이루는 것들은 단순해졌다. 나는 나아가고 있다. 병이 나아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 나아갑니다. 호흡에 노래를 실어 연약한 노래가 퍼지듯이. 작지만 누군가에게는 들리게, 분명히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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