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진이를 소개합니다
경진이를 소개합니다
딸만 셋인 우리 집에서는 서로를 언니 혹은 동생이라 부르지 않는다. 첫째인 그는 '미미', 둘째인 나는 '소아' 그리고 우리 집 비선 실세인 막내는 '체리'. 각자 그들만의 닉네임이 존재한다. 어쩌다가 이렇게 됐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서로를 이름도 아닌, 언니 동생도 아닌 애칭으로 부르면서 다섯 살, 일곱 살 차이가 나는 막내와 거의 친구가 되어버리고야 마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제는 누군가 '언니'라고 부르면 소스라치게 놀라며 제발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애원할 정도다. 이런 우리 집에서 실세인 엄마의 이름은 '경진이'. 우리 집에선 엄마를 경진이라 부른다.
"우리 집 사람들은 다 연령대가 비슷한 거 같아"
"원래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점잖은 척만 늘어갈 뿐이지 실제로 연령대는 다 비슷해. 우리도 아직 애야"
딸이 셋이라 이야기가 잘 통해 좋다는 경진이는 올해 만 오십이 되어간다. 백세 시대에 비하면 젊은 편에 속하지만 그렇다고 본인이 우리와 연령대가 비슷하다고 말할 정도의 순수함을 지닌 경진이는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다. 젊은 커플이 호텔 카운터에서 체크인을 하는 모습을 보고 문화 충격을 받을 만큼 보수적이지만 콘돔 토크에는 열과 성을 다하는 경진이. 밥을 먹을 때마다 비스페놀 A의 문제점과 초록 야채들의 효능을 알려주는 엄마는 그렇게 건강하게 점심을 먹고 저녁에는 운동하러 나간답시고 초코파이 한 박스를 품에 안고 돌아오곤 한다. 최근에는 유튜브는 정보의 바다라며 한참을 허우적대며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런 엄마의 모습이 웃긴 나는 경진이의 다양한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려 한다. 내년이면 우리 집 막내 고3의 입시가 끝남으로써 몇십 년간의 육아 생활이 끝나는 그는 제3의 인생을 꿈꾼다. 누군가의 엄마로서, 딸로서, 그리고 경진이로서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그저 어른인 척, 점잖은 척하고 있다는 엄마의 말을 듣고 괜히 마음 한편이 몽글몽글 해졌다. 더 많은 추억을 쌓을 수 있기를 바라며 <모두의 글에는 향기가 난다>의 '경진이'를 이어 더 많은 이야기를 기록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