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막내가 알고 보니 연애를 했더란다
"나 5월에 조금 이상했던 거 못 느꼈어?"
느닷없이 동생이 던진 말에 나는 밥 먹던 숟가락을 내려놓고 그의 이야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아니? 못 느꼈는데? 왜?"
"나 사실 6월에 남자 친구 있었다?"
생각해보니 동생이 지난해 어딘가 모르게 방 안에서 분주했던 기억이 났다. 학원에서 밤늦게 돌아오자마자 방에서 오래도록 통화를 하는 모습이라던지, 갑자기 옷을 엄청 사던 시절이 있었다던지. 그 당시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동생의 행동이 다 이유가 있었다니. 내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2002년생이 연애라니?
사실 그의 말을 듣고는 고등학생이 무슨 연애냐, 공부에 집중해야지 뭐하는 짓이냐, 연애하다 대학 못 가고 싶냐, 연애는 대학 가서 할 수 있다,, 등의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지만 이내 밥을 삼키며 나의 본심을 목 아래로 내려보냈다. 끝내 나는 어떻게 만나게 된 거냐는 질문을 던지며 나름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 쳤다.
"아, 근데 지금은 안 사귀어. 한 달 만나고 헤어졌어."
지금은 사귀고 있지 않다는 동생의 말에 내심 안도하며 별 다른 질문은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경진이도 이 사실을 알게 되었고, 엄마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으로 너네는 어떻게 만나고 연애하냐며 시시콜콜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어이없게도 2002년생이 연애하는 방법, 그 매뉴얼을 익힐 수 있었다.
여고에 다니는 동생의 말에 의하면 그들에게는 하나의 '전통'이 존재한다고 한다. 나름 대학생들이 하는 소개팅과 비슷한 개념인데, 여고에 다니는 학생들과 남고에 다니는 학생들이 대면식을 통해 만난다고 한다. 단, 대학생이 술집에서 소개팅을 한다면 이들은 꼭 치킨집에서 대면식을 진행한다. 대면식이 활발할 시기는 바로 5월. 그 이유는 중간고사 직후이기도 하고 한창 동아리 홍보 행사를 하는 시기라 그렇다고 한다. 학교가 끝날 시간 4-5시쯤 여고 근처 치킨집에는 학생들로 가득 찬다. 한 줄에 남학생, 한 줄에 여학생이 앉아있다면 백 프로 대면식이니 대학생들은 자리를 피해 줬으면 한다는 동생의 말을 듣고 정말 다른 세상이구나 싶었다. 치킨집 사장님도 대면식의 존재를 아신다며.. 어찌 보면 고등학교 주변 상권 사장님들이 가장 트렌디하신 분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떻게 '전'남자 친구랑 연락하기 시작했냐고 물어본 경진이. 엄마의 질문에 나는 당연하다는 듯 "번호 땄겠지 뭐"라고 대답했지만, 02년생은 달랐다. 그들이 선택한 연락의 매개체는 바로 페이스북 메신저였던 것.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번호를 물어봤던 90년대생 세대와는 달리, 흔히 Z세대로 불리는 00년대 친구들은 번호를 물어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번호를 물어보고 저장하는 행위가 부담스럽다나. 그래서 그들은 번호 저장 없이 연락할 수 있는 페이스북 메신저를 애용한다고 한다. 마음에 드는 사람을 페이스북에서 검색하고 해당 계정으로 메시지를 보내는 방식인데, 번호를 누가 먼저 물어보는지 은근한 신경전이 있었던 우리보다 현명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밤 10시, 학생들을 픽업하러 온 부모님의 차량이 한쪽에 몰려 경찰이 순찰을 다닐 만큼 대치동의 학원가는 고등학생들로 북적북적하다. 그도 그럴 것이 정말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학교의 학생들이 학원을 다니러 오기 때문인데, 그만큼 그 누구보다 매일 만날 수 있는 기회의 장이기도 하다. 동생 또한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대치동 학원가로 등교를 하는 수준이다. 그의 '전'남자 친구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그렇게 02년생들은 공부와 연애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을 수도 있는 기회가 남들보다 더 주어진 세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의 일치로 같은 학원 같은 반에 배정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는 동생의 말에 공부에 그렇게 신경을 쓰지라고 한 마디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이야기를 듣던 경진이는 "어쩐지 한동안 데리러 오지 말라고 하더라"라는 말과 함께 동생의 감쪽같은 거짓말에 속았다는 사실을 믿지 못했다.
90년대생이 온다라는 책이 있다. 어쩌면 이제 00년대생이 몰려 올 그 날을 대비하며 준비하고 있어야 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