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도
1960년 경기도 연평에서 태어나 시집 발간을 앞둔 1989년 만 29세의 젊은 나이로 갑작스럽게 사망한 시인 기형도. 그의 시는 사회비판적이면서도 심미적인 감각을 모두 갖추고 있다. 특히나 도시적인 삶의 섬세하면서도 우울한, 다소 허무주의를 내포하고 있는 시 세계로 인해 아이러니하게도 생전 책 한 권 엮어내지 못한 것과는 다르게 과연 한국 문학의 신화로써 자리매김 한 지 오래다.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는 그런 그의 30주기 추모 기념으로 유고 시집 <입 속의 검은 잎>(1989)은 물론 추모 문집과 미발표 시 97편까지 모두 모아둔 시전집이다.
그의 시를 읽으며 어둡고 무력한 시대현실에 공감할 수 있었다.
어둠 속에서 중얼거린다
나를 찾지 말라…… 무책임한 탄식들이여
길 위에서 일생을 그르치고 있는 희망이여
p.14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기형도 시는 전반적으로 절망과 불운, 그리고 죽음의 분위기가 흐른다. 문학평론가 김현은 '그의 시는 현실적인 것을 변형시키고 초월시키는 아름다움, 추함과 대립되는 의미의 아름다움을 목표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존재의 모습에 대한 앎으로서의 아름다움을 목표한다'라며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또한, 역시 문학평론가 류신은 '거창하게 시인 기형도의 존재론을 거론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그를 '검은 존재론의 화신'으로 부르고 싶다. 왜냐하면 그의 시 세계에는 세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서부터 돌출된 고통과 파괴의 흉터들이 즐비하고 젊어서 세상을 등진 불우한 운명이 자아내는 죽음과 쇠락의 이미지들이 들끓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시 속에 온전히 보여지는 현실비판적 의식은, 시인의 가난했던 유년 시절과 청년기 정치적 격동 속 상실 체험 등이 반영되어 근본적으로 기형도 그 자체의 내면 세계가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기형도 시인에 대한 평가는 그의 사후에 더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혜성처럼 나타난 천재적인 청년 시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오히려 독특한 반향을 일으켰다. 그의 육체는 이제 이 시대에 존재하지 않으나, 그의 시는 죽지 않고 영원히 살고 있다. 30년이라는 세월 동안 우리는 기형도의 거리에서 그의 시어의 비밀을 더 예민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p.24 <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의 시를 읽을 때 밀려오는 우울감과 허무함은 기저에 깔린 비관의식을 자극한다. 그러나 처절하기에 아름다운 그의 시로 오히려 힘을 얻을 수도 있었다.
영원한 청년 시인 기형도, 그의 삶의 자취는 어떤 이에게는 영감이 되고 울림을 준다. 미발표 시들도 빠짐없이 실려 있기에 기형도를 사랑하는 이들, 그리고 그를 읽고 싶은 이들에게 꼭 추천해 주고 싶은 기형도 시전집,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