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서평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슬빛 Jun 04. 2020

『희생양』_르네 지라르#1

르네 지라르의 『희생양』 읽기-박해의 상투적 전형/신화 분석

1. 박해의 상투적 전형     


 거의 모든 신화에는 ‘있음직함’과 ‘있음직하지 않음’이 뒤섞여 있음으로 많은 연구자들이 허구로 간주하여 왔으나 그 있음직하지 않음 때문에 있음직함까지 버리는 우를 범하여 왔다고 지라르는 비판한다. 지라르가 보기에 거의 모든 신화에는 집단적 폭력이 존재한다. 그것이 바로 르네 지라르가 말하는 희생양 제의이다. 이런 박해에는 상투성이 있으며, 마치 하나의 공식처럼 정식화할 수 있는 전형들이 존재한다. 그 전형들은 무엇일까? 첫째, 무차별화, 획일화를 촉발시키는 위기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둘째, 범죄가 발생한다. 이 범죄는 사회적 위기와는 아무 연관성이 없지만 희생양을 찾아야하는 박해자는 이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찾아낸다. 셋째, 범죄 용의자들은 희생물로 선택될만한 징후를 갖고 있다.      


 먼저 무차별화를 촉발시키는 위기는 무엇인가? 사회와 문화는 차이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유지된다. 예를 들면, 어떤 문화이든지간에 신분의 차이와 재산의 차이가 존재한다. 이것이 바로 위계질서라는 것이다. 위계질서를 갖추지 않은 문화는 없다. 심지어 원숭이에게도 위계질서가 존재한다. 그러나 위기는 이러한 위계질서를 가능하게 하는 차이를 없애버린다. 코로나는 신분이나 재산이 얼마이던 간에, 그 차이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을 위협하고 사회를 마비시킨다. 결국에 마비되는 건 이러한 신분상의 차이, 재산상의 차이일지도 모른다. 결국 차이가 없어지면서 사람들의 행동이 획일화되고 “같은 것”이 성행하게 된다. 결국 사람들을 규제하던 문화적인 것, 차이는 사라지고 사람들은 군중으로 변한다.      


 결국 이들은 자신들을 군중으로 만든 실제적인 원인이 뭘까 생각하기 보다는 다른 대상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려고 한다. 이 대상은 주로 절대 권력의 상징인 왕이나 아버지, 성서나 현대 사회에서의 무장하지 않은 약한 사람들, 특히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들이다. 아니면 강간, 근친상간, 수간 등과 같은 성적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다. 이들이 이런 범죄를 실제로 저지르지 않았더라도 비난의 과정에서 이들에게 이런 범죄를 뒤집어씌우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범죄들은 가족의 차별이나 위계질서와 같이 그것 없이는 사회질서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는 문화 질서의 근본을 위협하는 범죄들이다. 강간은 성관계가 허용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간의 차이를 없애고, 근친상간은 문화를 가능하게 하는 부모와 자식의 차이를 없애고, 수간은 동물과 인간의 차이를 없앤다. 이러한 차이들은 근본적으로 문화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범죄들이 개인의 영역에 미치는 결과는 페스트나 이와 유사한 재난들이 사회 전체에 미치는 결과와 일치한다. 즉, 이 범죄들은 사회적 연대를 파괴하는 범죄들이다.      

 이와 관련해서 희생양이 가진 징후(세 번째 전형)을 파악할 수 있다. 희생양은 주로 육체적 불구자나 이방인, 외국인들이다. 이들은 위에서 문화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으로서 꼽은 차이를 없애는 존재들이다. 종교, 민족, 국적의 소수파들이 비난받는 것은 결코 그들이 우리와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제대로 차이가 나지 않기에, 극단적인 경우는 전혀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문화의 사람들은 모두 자신들은 타인들과 <다르다>고 여기는 관념을 갖고 있고, 모든 문화도 자신을 타문화와 다를 뿐만 아니라 특이한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방인들은 이런 다르다는 관념을 없애버린다. 실제로는 체제 밖에 존재하는 이들이 우리와는 다르지 않다는 것을 사람들은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육체적 불구에 대해서도 똑같은 설명이 가능하다. 인간의 육체는 해부학적으로 볼 때 하나의 차이 체계이다. 간과 위의 기능은 다르며, 이러한 차이에 의해 몸이 제대로 기능한다. 그러나 불구에게 있어서 다리와 팔은 제대로 차이가 나지 않으며 팔이 다리의 기능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차이를 없애는 그들의 존재를 사람들은 두려워하고 박해의 대상으로 삼는다.       


오이디푸스 왕

2. 신화     


 오이디푸스 신화는 이러한 박해의 상투적인 전형들이 한 데 모아져 있는 텍스트이다. 오이디푸스 신화를 보자. 페스트가 테베를 뒤덮는다.(박해의 첫 번째 상투적 전형) 그러자 오이디푸스가 페스트의 용의자로 지목된다. 왜냐하면 그는 그의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했기 때문이다. (박해의 두 번째 상투적 전형). 이 돌림병을 종식시키기 위해서 그 극악한 죄인을 추방하라는 신탁이 내려온다. 박해의 궁극적인 목표는 분명하다. 친부살해와 근친상간은 문화의 근간이 되는 차이를 없앰으로서 사회 전체에 전염된다. 소포클레스의 이 텍스트는, 무차별화된다는 것은 바로 페스트에 감염되는 것과 같다는 것을 보여준다.      


 세 번째 상투적 전형, 즉 희생물의 징후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을까. 우선 불구가 있다. 오이디푸스는 절름발이이다. 또한 아무도 모르는 낯선 자로 테베에 나타난 이 주인공은 실질적인 이방인, 그렇지 않다면 적어도 법적으로는 분명 이방인이다. 결국 그는 왕의 아들이며 라이오스의 합법적 후계자로서의 왕 자신이다. 다른 신화적 인물들처럼 오이디푸스는 외부의 소외계층이자(이방인) 내부의 소외계층(왕)이기도 하다. 그는 실제로 아무에게도 페스트를 옮기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페스트로 인해 불안에 빠진 군중들로부터 실제로 신경질적인 의심을 사기에 충분한, 텍스트에 나와 있는 그 모든 희생물의 특징들 때문에 희생물로 선택된 것이다.     


르네 지라르는 오이디푸스 신화에서 이러한 박해의 상투적 전형들이 중첩해서 나타나기 때문에 박해가 실재했다고 말할 수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경험적으로 박해의 전형들이 두 개 이상 중첩해서 나타나면, 박해가 존재해왔었기 떄문이다.       


 오이디푸스 신화뿐만 아니라 모든 신화들에 이런 박해가 존재한다. 오이디푸스 신화는 박해를 나타내고 있는 대표적인 신화이지만 그렇지 않은 신화들을 살펴보자. 그런 신화들은 박해의 텍스트와 닮은 점이 그렇게 뚜렷이 드러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우리가 살펴보았던 네 개의 상투적 전형들을 찾아보면 수많은 신화에서 비록 변형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 전형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신화 도입부를 하나의 특징으로 요약할 수 있다. 신화 도입부에서는 흔히, 밤과 낮이 섞여 있고 하늘과 땅이 서로 통하고 있고, 신들이 사람들 사이를 돌고 사람들도 신들 사이를 나다니고 있다. 신과 인간, 짐승들 사이에도 명확한 구분이 없다. 구별할 수 없을 정도의 쌍둥이 형제인 태양과 달은 영원히 싸우고 있다. 땅에 너무 가까이 접근한 태양은 가뭄과 혹서를 일으켜 모두 견디기 힘든 지경이다.      


 물론 여기에서 실제적인 것은 없다. 하지만, 신화에서 드러나는 상황은 문화를 가능하게 하는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무차별화의 위기를 겪고 있다는 것이다. 위기가 하나의 상징처럼 제시되고 있는 것이 신화의 특징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신화에서 박해의 첫 번째 상투적 전형을, 그러나 극단적으로 변형되고 양식화되어 아주 간단한 표현으로 축소된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원초적인> 무차별화, <원래의> 카오스는 종종 심한 갈등의 성격을 갖고 있다. 불분명한 것들은 서로 구별되기 위해서 끊임없이 싸운다. 서로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아주 닮은 신과 악마의 싸움에서 항상 모든 것이 시작된다. 신과 악마가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은 선과 악이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이고, 가장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행동들이 획일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곧 집단적 박해를 유발한다. 쌍둥이의 존재도 무차별화의 테마를 담고 있는 요소이다. 전 세계의 많은 신화에서 쌍둥이의 테마가 등장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로마의 건국신화이다. 흔히 로물루스가 도시를 세웠고, 거기서부터 ‘로마’라는 이름이 기원했다고 서술한다. 그러나 진실은 그 반대이다. 로물루스가 로마를 만든 것이 아니라 로마가 로물루스를 만들었다. 즉, 로물루스는 로마에서 나온 상상적 구성물이다. 


“로마인들은 그들 자신이 상정하는 것처럼, 그 건국자가 우선시 했던 것들과 그의 관심사들을 그저 계승하지만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수 세기에 걸쳐 그 이야기를 거듭 들려주고 다시 쓰면서 그들 스스로 로물루스라는 건국의 인물을 그들 자신의 기호, 논쟁, 이데올로기, 불안의 강력한 상징으로 구성하고 재구성해냈다.”     

리비우스에 따르면,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알바 롱가에서 레아 실비아라는 여사제에게서 태어났다. 아버지로는 군신 마르스가 지목된다. 실비아의 숙부 아물리우스는 아이들을 티베르 강에 던져버리게 했다. 늑대가 아이들을 구해 키웠고, 무사히 자란 쌍둥이는 언덕에 근거지를 세운다. 쌍둥이 사이에 분쟁이 생겨 로물루스가 동생을 살해했고 로마의 유일한 통치자가 되었다는 것이 로마 건국 신화의 주요내용이다. 주된 분쟁의 원인은 로물루스와 레무스가 영역을 구분하기 위해 세운 울타리를 레무스가 마구 넘나들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두 쌍둥이가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 두 쌍둥이의 영역조차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 권력과 문화를 가능하게 하는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무차별화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로마는 레무스를 희생양으로 삼아야 했다는 것을 이 신화에서 읽어낼 수 있다. 레무스는 아마도 이방인 민족 집단일 수도 있다. 초기 로마가 세워질 때 주된 두 개의 집단이 있었다. 하나의 집단은 이방인 집단이었는데, 이들의 수는 점점 더 많아지기 시작하여 누가 이방인에 속하고 누가 초기 정착자에 속하는지 구분이 안될 지경에 이르렀다. 심지어 이들은 초기 정착자들과 똑같은 권력을 요구했다. 결국 둘 사이에 내분이 벌어졌고, 이 내분에서 초기 정착자들이 승리했다. 승리한 집단은 이방인 집단에게 박해를 가했고 ‘레무스’라고 상정된 이방인 집단의 지도자를 처형했고 희생양으로 삼아 내분을 종식시켰다.  이러한 신화가 알려주는 것은 로마가 앞으로도 계속될 내분을 해결하기 위해 그때마다 희생양을 필요로 했다는 것이다. 로마인들은 이러한 희생양 박해를 자신들의 신화 속에 투영시킨 것이다.


박해자들은 실제로 존재하였던 폭력에 상상을 덧붙여서 신화로 만든다. 하지만 그러한 ‘상상력’을 동원하는 과정에서 박해라는 실제 사실은 체계적으로 왜곡된다. 왜곡의 초점이 되는 것은 희생물인데, 이 과정에서 희생물은 ‘괴물’로 표현된다. 신화 속에 등장하는 괴물은 열에 의해 변하거나 동물로 변할 수도 있다. 그들은 때로 자웅동체이거나 성이 변하거나 여자가 되기도 한다. 게다가 그들은 특히 절름발이, 애꾸눈, 혹은 맹인이다. 이는 인간과 동물의 차이, 남성과 여성의 차이 등을 위협하는 희생물의 징후이다. 이들은 광기의 희생물로 전락하기도 하는데, 아들을 살해하기도 하고 과다한 성욕을 갖고 있다. 근친상간을 범하기도 하고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 혹은 친척들을 살해하기도 한다. 육체적 기괴함이 정신적인 기괴함과 중첩되어 나타나는 것은 박해자의 ‘상상력’이 발휘되어 대상을 ‘왜곡’시켰다는 단서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희생물의 징후만을 이렇게 한데로 모아놓을 수 있는가?     


이렇게 희생물에 박해를 가하고, 이를 신화로 만드는 데에는 어떠한 믿음이 존재한다. 페스트나 정체불명의 장애물과 같은 두려운 재앙과 싸우던 사회의 다수 계층들은 박해의 메커니즘을 통해서 그 집단의 욕구 불만과 불안을 희생물에게 쏟음으로써 대리 만족을 하게 된다. 이때 이 희생물들은 집단 전체와 잘 통합되지 않는 소수파이기 때문에 집단은 이들을 박해하는 데 더 쉽게 단결될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희생물이 전체적인 불행의 책임자라고 믿는다. 그런데 문제는, 이 희생물을 희생시킴으로서 질서가 다시 재건될 것이라고 믿고 있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신화에서는 이 희생물이 질서를 상징하기도 하고 질서를 구현하기도 한다. 이 희생양은 모든 것에 대해 절대적인 책임이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에, 또한 질병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다. 그래서 그는 그 질병의 치유책도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믿음이 어떤 문턱을 넘어서면 희생양 효과는 박해자와 희생양의 관계를 역전시킨다. 바로 이 역전 현상이 성스러움이나 건국 선조와 신성을 만들어낸다.      


어떤 인간 집단이 외적 원인이나 내부의 요인 때문에 집단적인 질병에 빠져들게 됨으로써 악화되었던 집단 내의 관계가 만약 그들 모두가 증오하는 희생물 덕택에 다시 재건된다면, 그들의 쾌유를 도와준 그 희생양이 전능하다는 믿음에 따라 그 집단은 그 사건을 기념하려 하고,

이것이 바로 ‘신화’가 된다. 이러한 과정에 따라 희생된 대상은 불멸의 존재가 된다. 이것이 신화가 만들어지는 메커니즘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