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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슬빛 Jun 16. 2020

젊음이란 무엇인가

마루야마 겐지의 <나는 길들지 않는다>를 읽고

 당신의 젊음을 말살한 그 최초의 적은 무엇이었을까. 이 책의 첫 문장이다. 이 책은 마치 도끼가 차가운 얼음장을 내리찍듯이 내 뇌리에 박힌다. 일찍이 카프카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 되는 거야.” 사실 그런 책이 아니라면 큰 의미가 없다. 안 그래도 살기 바쁜데, 어떠한 감응도 주지 못하는 책을 읽어서 무엇 한다는 말인가. 이 책은 작가 나름의 독설로 우리의 정신에 어떠한 감응을 준다. 우리는 왜 젊음을 잃었는가, 왜 자립하지 못하는가. 왜 불만족을 느끼면서도 그것을 개선하지 못한 채 흐리멍덩한 눈을 뜨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가. 왜 인생의 주체가 될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는가.     


 진정한 젊음은 스스로의 자립에서 나온다. 스스로 자립할 수 있고 그 어느 것에도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인간에게는 그 특유의 활력이 있다. 그러한 활력과 정신을 갖추지 못하면, 아무리 어릴지라도 노인네와 다를 바 없다. 반대로, 그러한 활력과 정신만 있다면 몸은 늙었어도 젊음의 정신을 잃지 않는다.     


 “자립한 젊음의 척도는 자신에 대한 의존도라고 바꿔 말할 수 있다. 야생동물은 본의 아니기는 하나, 부모에게서 떨어져 나오는 순간 여지없이 자립해야 한다. 타자에게 의지하지 않는 결연한 삶이 아니면 생명이 그토록 빛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을 마음껏 사는 기술이란 다른 것에 있지 않다. 자립한 삶이 아니면, 그것은 허튼 삶이며 죽은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는 잿빛 인생이 되고 만다.”     


 우리의 젊음의 최초의 적은 가정에 있다. 어머니는 자식에 대한 애정과 사랑이 너무나 지나쳐 그들을 과보호한다. 그 지나친 사랑이 자식이 스스로 자립할 힘을 기르는 것을 막아버린다. 자식들은 어느 순간부터 의존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항상 어머니가 자신을 품어주었듯이, 위기가 닥치면 누군가 나타나 자신을 도와줄 거라고 착각한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고 습관처럼 몸에 배어버린다. 그러니 세상에 나갈 때가 되어도 비장한 각오로 임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쉽게 포기해버리고는 집안으로 숨어버린다. 왜냐하면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고 만만한 곳이 아니라는 것은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인간세계도 야생동물의 세계와 하등 다를 바가 없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직을 못하고 간신히 구한 일자리에서도 언제 해고의 바람이 불지 몰라 두려움에 떤다. 연금과 퇴직금은 물론, 정부의 약속 따위는 도무지 믿을 수 없다. 사회에는 여전히 온갖 속임수와 비리와 노골적인 이기주의가 난무하고 있다. 세상은 변함없이 타인의 불행을 요구하고, 타인의 불행을 통해서만 자신의 행복을 느끼는 형국이다.”      


강력한 의지로 빛을 발하는 삶이 아니면 사실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 첫 단계는 우선 자신이 의존하고 있는 것을 하나씩 끊어내어야 한다. 물론 그 첫 번째는 가정이다. 저자는 이렇게 권한다. 학교를 졸업하면 나가서 일을 해라. 이상적인 일자리를 찾지 못했다고 집 안에서 뒹굴면 안 된다. 네가 살 곳도 찾아라. 너만의 둥지를 찾도록 해라. 학비는 웬만해서는 스스로 번다.      


 우선 그렇게 했다면, 그 다음은 육체적이고 생리적인 의존과 맞붙어 싸우는 것이다. 우선 담배를 끊고 적정한 체형을 유지해라. 확실하게 눈에 보이기 때문에 성공했을 때의 성취감이 한결 크고, 그것이 자신감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자신감은 체험의 축적으로만 얻을 수 있다. 체험에서 비롯된 자신감은 흔들림이 없고, 그 때문에 당신의 삶을 크게 좌우하고 또 당신에게 자립한 젊음을 주입하는 강력한 활성제가 될 것이다.     


 저자가 비만에 대해 언급한 부분도 흥미롭다.


“체형은 그 사람의 성격과 삶의 방식을 여실히 말해준다. 식욕을 이기지 못해 투실투실 살이 찐 자는 의지가 강해보이지 않고 사실도 그렇다. 자기 관리도 못하는 자가 지구력과 인내력과 신뢰성과 결단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도무지 생각되지 않는다.”    


 직장인으로 사는 것은 노예로 사는 것이다. 진정한 자립의 기쁨은 자영업을 하는 것에서 나온다. 그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누군가의 고용인으로서 자신의 삶을 다른 이에게 위탁하지 않는다. 직장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목을 남에게 내주는 것이다. 스스로 생계를 영위할 때 진정한 자유의 정신이 빛을 발하는 것이다. 물론 남들보다 경제적으로 좀 더 뒤쳐진다는 느낌을 받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러한 근소한 차이도 견디지 못한다면, 애초에 아무 것도 시작하지 않는 것이 낫다. 다소 미래가 불안정할 수 있다. 하지만 해고의 위험에 항상 시달리는 것 또한 불안정한 것은 마찬가지이며, 한 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불안정함 속에서 인간은 필사적인 각오로 모든 것에 임하게 된다. 그렇게 될 때 자신도 알지 못했던 능력이 발휘되고 진정한 젊음의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왜 카프카가 말한 도끼 같은 책인가. 나에게 큰 감응을 주었기 때문이다. 좋은 책의 기준은 질문을 던지게 만들고, 생각과 행동에 자극을 주며, 인생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 기준에 잘 부합하였기 때문에 이 책이 얼어붙은 얼음을 깨주는 도끼 같은 책이었다고 할 수 있다. 먼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고, 그 답을 인생의 자립에서 찾을 수 있게 만들었다. 또한 내게 자립을 위한 노력을 실천하게 함으로서 이 책을 읽고 인생이 조금이라도 바뀌었다고 말할 수 있다. 결국 이 책은 내가 책을 읽을 당시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할 수 있게 해주었고, 지금도 가장 많이 생각나는 책이다.     


 플라톤의 동굴 비유가 떠오른다. 동굴에 사는 속박된 사람들이 보고 있는 것은 '실체'의 '그림자'이지만, 그것을 실체라고 믿어 버리고 있다. 예전의 내가 동굴에 사는 속박된 사람들과 같았다. 부모가 자식을 지원해주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고, 그것을 사랑이라 여겼다. 실제로는 과보호에 불과한데 말이다. 세상을 만만하게 여겼고, 쉽게 살아가도 될 만한 곳으로 여겼다. 진정으로 의지하고 믿어야 할 것은 나였는데, 타인에게 의존하면서 살아왔다. 나는 우물 안 개구리이자 동굴 속에 사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책을 덮고 나니, 캄캄한 동굴을 나온 기분이다. 물론 살아온 관성이 있기에 사람이 쉽게 바뀌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지침이 되어준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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