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엄마일기_2
난임휴가 쓰려면 경영지원팀이랑 팀 내에 '난임휴가'사유기재해서 공지로 올리래
난임치료를 시작한 지 일주일 만에 두 번의 진료와 난임시술 날짜가 정해졌다.
진료 보러 갔을 때 '인공수정 하실 거예요?'라고 묻는 의사의 질문에 처음에는 바로 답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명 굴욕의자에 반쯤 누워서 다리 벌리고 있는데 내 가랑이사이를 들여다보며 장사꾼처럼 말하는 의사에게 뭐라고 답해야 하는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내가 원하면 할 수 있는 건지.
시험관이 아닌 인공수정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내 몸상태가 어떤지.
사전 설명 없이 생리 끝났으니 인공수정할 거냐는 그 무미건조한 말과 진료방법에 친절함은 없다고 생각했다.
일 년에 12번 있는 기회를 그냥 흘려보낼 수 없기에 이번기회에 인공수정을 하고 다음에 바로 시험관을 하기로 의사를 전달했다.
상세한 상담과 어떤 게 더 나은지 내 몸상태가 어떤지는 역시나 중요하지 않은 듯했다.
그런들 어떠하랴 급한 건 나고 할 일은 해야지.
남편은 규모가 있는 중소기업에 일하고 있다.
여름휴가는 7월 말 8월 초 대기업이 쉴 때 맞춰서 쉬어야 하고 고객사에서 시찰이라도 나오는 날이면 모든 직원이 긴장을 타는 갑과 을의 차이를 명확히 배울 수 있는 중소기업이다.
그래도 내가 다녔던 최악의 중소기업 같은 구조는 아니라서 그나마 버티며 다니고 있는 듯한다.
우리 부부는 둘 다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어서 연차를 쓰고 병원을 가야 했다.
직장인에게 연차란 연말에 현금과 맞바꿀 수 있는 소중한 자원이며 한 번쯤 쉴 수 있게 해 주는 면제권 같은 개념이라 되도록 아껴두는 편이라 이번에 자주 자리를 비우게 돼도 어느 정도 상쇄가 돼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올해가 절반정도 남은 시점에 여러 가지 이벤트로 이미 반절이상 연차를 써버린 남편에게는 한 손으로 꼽을 정도의 휴가만 남아있었고 치료가 길어질 경우 휴가 자체가 어려울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어떻게 해야 고민하던 때 난임시술지원 시 휴가지원도 있는지 알아보게 되었고 '난임휴가' 제도가 있으니 어차피 쓸 거 이번기회에 1회 사용해 보자고 이야기를 전했다.
중소기업에서는 휴가가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고 남편과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도 다르지 않았다.
우리는 거절당할 것에 대비해서 관련법령을 찾아들고 경영팀에 문의했고 남편은 사유를 명확히 명시하고 추후 관련 자료를 제출하는 것으로 난임휴가를 사용할 수 있었다.
나의 난임을 팀원들에게 알리지 말라
회사에서 개인휴가를 사용할 때 보통 사유에는 '개인사정'이라고 적거나 사유를 적지 않고 제출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번 난임휴가 사용을 위해서는 팀원과 경영지원팀에서 해당사유를 명확히 기재해서 공유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난임이 누군가의 잘못이거나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그걸 굳이 이렇게 알려야 하나 싶었다.
또한 난임은 부부의 문제인데 나의 동의 없이 남편회사에 우리 부부가 난임을 겪고 있다는 걸 알려야 한다는 것이 너무 속상했다. 보통 환자의 병명을 굳이 알리지 않듯이 난임휴가가 축하할 일도 아닌데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휴가가 얼마 없는 우리는 난임휴가를 신청했고 이번 1번은 유급으로 쉴 수 있게 되었다.(24년 6월 18 일 기준 난임휴가 3번 중 1번은 유급, 2번은 무급)
2024년 하반기에는 유급휴가도 2일로 늘어나고 총 난임휴가 일수도 6일로 확대될 예정이니 혹시 하반기에 휴가가 필요하게 되면 한번 더 유급으로 이용할 수 있을 듯하다.
정말 미래엄마가 되는 길은 하나하나 쉬운 게 없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