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시도와 성공이 불러오는 도미노효과
다시 시작하는 용기는 이전의 시도에서 맛보는 성공에서 시작된다. 이전의 시도가 어렵다면 다시 시작하는 용기도 쉽게 오지 않겠지. 그러니 이전의 시도를 최대한 작게, '뭐 이 정도만 해도 되겠어?' 싶은 것으로 성취감을 쌓고 계속 피드백을 해보는 것이 좋다. 두려움에 미뤄왔던 모든 일을 이제는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을 얻게 되니까. '저것도 해봤으니 이것도 한번 해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정말 정말 가볍게 시작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이렇게 시작하는 용기가 없는 나 같은 사람도, 두려움에 피하기만 했던 나도 시작하게 만드니까.
바로 어제 오랜 공백기를 끝내고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하루의 시작 전에 글을 쓰기로 다짐했으나, 오늘은 벌써 정오다. 그래도 오전에 글쓰기를 시작했으니 절반의 성공이다. 계획을 수정해야겠다. 정오 전에 글을 쓰기로. 하지만 대부분은 하루의 시작 전에, 아이들이 일어나기 전에, 아직 많은 사람들이 꿈나라에 있을 때, 새벽의 달콤함을 혼자서 맛보며, 밖에서 들려오는 새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나의 무의식이 아직 잠들기 전에 글을 쓰겠다고 다짐해 본다.
그동안 매번 잘하겠다고 초반에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뛰어가다가 넘어지고 쓰러져 제자리에 머무르는 시간이 너무나도 길다. 그래도 언제나 내가 원하면 시작하고 걷고 그리고 또 뛸 수 있다는 건 참으로 축복이다. 게다가 짧은 시간이라도 앞으로 나아갔으니 멈춰있는 것보다는 백번 낫다. 하지만 생각만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나에게 가장 부족한 능력이 있다면 그건 바로 시작하는 용기다. 용기. 뭐든 해보려고 도전하는 용기. 이게 부족하다. 아마 내 성장과정 탓이었겠지. 잘못함으로 생긴 벌이 너무 컸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잘못하지도 않았다.
그냥 나는 덤벙거리는 성격이다. 물건을 잘 잃어버렸다. 가장 많이 잃어버린 건 집 현관 열쇠. 아니다 그렇게 많이 잃어버리지도 않았겠다. 한 세네 번? 엄마는 내가 자꾸 열쇠를 잃어버린다며 운동화 끈에 열쇠를 묶었다. 하얀색 납작하고 못생긴 끈에.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어렸을 때도 패션에 민감했나 보다. 때가 타서 더 이상 하안색이 아닌 운동화 끈을 매번 목에 두르고 다니고 싶지 않았다. 옷태가 안 살았다. 그래서 손에 들고 다니다가 결국 마지막 열쇠를 잃어버리고야 말았다. 그래서 아파트 입주할 때 줬던 모든 열쇠 꾸러미가 있던 커다란 열쇠고리를 들고나갔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집 근처에 있는 논두렁에서 잃어버렸다. 그게 정말로 우리 집 나의 마지막 열쇠였다. 아마 초등학교 3학년? 4학년? 아무튼 그즈음이었다. 4살 차이 나는 여동생이 유치원을 다닐 때니까 4학년이겠다.
열쇠를 잃어버려 엄마한테 엄청나게 혼이 났다. 맞기도 했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내가 기억나는 건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을 때 엄마의 악다구니를 들어가며 바닥이 보이지 않는 논을 발을 걷어붙이고 들어가서 손을 쑤욱 집어넣으며 열쇠를 찾던 우리 가족들의 모습이다. 그리고 결국 찾지 못했다. 그에 대한 벌로 나는 그 이후 열쇠가 없었다. 유치원을 다니던 여동생도 있는 열쇠가 초등학생인 나는 없었다. 대부분 유치원을 다니는 동생이 일찍 집에 들어오니 평소에 학교 마치고 돌아오면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가끔, 정말 가끔, 아니야 가끔이 아니라 자주 있었던 일인 것 같아. 자주 동생이 없으면 나는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하염없이 밖을 헤매고 돌아다녔다. 놀이터 그네에 앉아있기도 하고 근처 공사장을 뛰어다니기도 하고 그냥 정처 없이 집 주변을 걷기도 했다. 집이 있지만 들어가지 못하는 심정을 나처럼 처절하게 느낀 사람은 없을 거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열쇠는 없었고, 집에 사람이 없는 경우가 많아 그 기간이 정말 기니까.
단 한순간의 실수. 아니 여러 번 실수 하긴 했지. 열쇠를 여러 번 잃어버렸으니까. 그럼 여러 번의 실수로 나는 몇 십 년간을 열쇠 없이 지냈다. 그러니 내가 완벽주의가 안 생기려야 안 생길 수 없지. 실수가 평생 고통으로 이어지게 되었으니까. 실수하면 안 되니까 시도조차 안 하고 살았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신조마저 생겨 버렸으니까. 그렇게 어른이 되고 엄마가 되었다. 그냥 성인이 되었을 때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엄마가 되니, 아이는 나처럼 자라지 않았으면 했다. 마음껏 시도하고 실패도하고 그리고 그중에서 이따금씩 성공도 하고. 하지만 나처럼 자라지 않게 하겠다는 부정적인 감정으로 키우고 싶지 않았다. 그래 내가 변해서 나처럼 나를 보며, 나를 롤모델로 삼아 자라기를 바랐다. 그렇게 다짐하고 처음으로 목표를 세우고 이것저것을 시작했다. 그리고 멈췄다가 다시 시작했다가 그리고 또 멈췄다가 또다시 시작하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최근 큰 슬럼프 및 번아웃이 와버려 또 놓아버리고 말았다.
2023년 10월 28일 긴 멈춤 끝에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이 용기가 생긴 건 아마도, 작은 시작과 그 시작으로 인한 작은 성공을 맛보았기 때문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어제 글쓰기를 시작하기 2주일 전쯤 새로운 시작을 했다. 그건 첫 번째로 쓰다 안 쓰다를 반복하며 5년간 써왔던 스케줄러 or 다이어리인 3P바인더를 같이 쓰는 메이트를 만들었고, 두 번째는 매일 썼는지 확인하는 인증을 시작한 것이다. 다음날을 계획하고 오늘 하루를 피드백해야 하는 걸 알지만 귀찮아서, 시간이 없어서, 하루 안 한다고 큰일이 나지 않으니 계속 안 하고 있었다. 하지만 강제적인 인증을 시작하니 없는 시간이 나더라. 자기 전에 내 하루를 반성하고 지속을 2주 정도하고 나니, 그동안 벼르고 있던 글쓰기도 시작하면 되겠다는 용기가 났다. 별거 아닌 작은 성공을 2주간 겪은 결과다.
3P바인더를 같이 쓰는 시작은 그전에 가진 독서 모임에서 시작되었다. 독서모임원과 함께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를 읽고 영어 공부를 시작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의 저자인 김민식 PD는 <영어회화 100일의 기적>을 통해 일상 회화를 외우는 것이 좋다고 했지만, 2019년 혼자서 <영어회화 100일의 기적>을 외워본 결과 이건 왕초보에 적합하지 않다고 의견을 냈다. 대안으로 열심히 혼자 공부하고 영어 실력도 일취월장하게 해 준 <일빵빵 입에 달고 사는 기초영어> 책을 통해 매일 영어공부를 하자고 했다. 내 의견이 받아들여져 매일 독서모임원과 함께 <일빵빵 입에 달고 사는 기초영어>로 공부를 하고 인증을 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 작은 성취와 성공이 다른 시도와 또 그로 인한 성공으로 이어졌고 결국 글을 다시 쓰게 만드는 용기까지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앞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다. 너무 달려서 중간에 에너지가 빠지지 않도록 적당히 쉬엄쉬엄 걸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