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자 시선으로 판단하다.
여자가 소리를 지르고 있다.
아이는 발악을 하면서 울며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던지는 중이다. 그것만으로는 분이 풀리지 않는지 온몸을 띄웠다 바닥으로 내리찍었다. 바닥은 북의 얇은 가죽이 파동 치듯 진동하고 날카로운 유리조각 같은 소리 파편들이 촘촘하게 공간을 매운다. 여자와 아이의 실랑이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왜 이러고 있는 것인지도 잊은 모양이다.
인터폰이 울린다. 여자가 고함친다. 아이는 멈추지 않는다. 속절없이 울리는 인터폰은 울음을 멈춘다. 시간이 지나자 상황은 멈춰있는 듯 잠잠해졌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아이는 웃으며 장난감을 집었다. 여자도 자신의 일을 한다. 신난 아이는 분풀이로 내리찍던 바닥을 즐거움으로 찍어댔다. 불쾌한 소음들은 유쾌한(?) 소음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인터폰이 또 울린다. 여자는 귀찮은 듯 인터폰 소리를 줄여버린다.
여자와 아이는 진동과 파동 만들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그 집에 머무는 모든 순간과 공간을 그것들로 채워놓았다. 타인의 간섭 따위는 허락하지 않았다. 현관 벨소리도 무시하면 그만이다. 여자는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자기 집에서 하는 행동에 대해 왜 남이 간섭하는지. 어디서나 아이는 자라고 있고, 그로 인한 소란들은 이해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아이니까. 행동에 악의가 없으니까.
“조용히 살고 싶으면 주택으로 이사를 가야지!”
여자가 화가 나서 큰 소리로 말한다. 문밖 아래층 여자는 들리지 않는지 다시 벨을 누른다. 여자는 무시한다. 세 번의 벨이 연이어 울리고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빼꼼히 문을 연다.
“누구세요!!”
“아랫집인데요. 지금 12시가 넘었는데 너무 시끄러워서요.”
“우린 안 뛰었어요!”
“......”
여자는 미간에 잔뜩 주름을 지었다. 집에서 즐겁던 아이가 여자에게 묻는다.
“누구야?”
“조용히 해!”
성난 여자는 쏘아붙인다. 아이는 얼굴 가득 물음표로 채운다. 여자는 유난 떠는 아랫집 여자도 자신의 아이도 모두 성가시다. 여자는 생각한다. 자신에게 이런 불쾌한 경험을 하게 한 아랫집 여자가 너무 예의 없고 괘씸하고 생각한다.
여자의 지난 시간을 훑어보았다. 여자는 늘 같은 패턴이다. 자신만의 상식 기준과 정상성을 잣대로 문제의 원인들은 타인에게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올바름의 척도는 여자였고, 여자에게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야 말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었다. 굳이 먼 지난 시간까지 훑어보지 않아도 여자가 어떤 사람인지 판가름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판단은 끝났다.
어스름귀의 준비도 끝났다.
운전을 하는 여자 뒤에 아이가 칭얼걸거 린다.
“놀이터 갈래!! 놀이터 갔다가 집에 가자니까!!”
“오늘은 바빠서 안된다니까! 저녁해 야해! “
짜증 섞인 목소리가 찌푸린 미간을 뚫고 나왔다. 운전석으로 내리쬐는 햇살이 너무 뜨거워 에어컨도 무용지물이다. 뒤에서 시원하게 앉아 칭얼거리는 아이가 짜증스럽다.
“놀이터 가서 놀고 저녁 먹으면 되잖아! 놀이터 갈 거야!! 갈 거야!!”
아이는 마무가 네로 소리 지르고 발버둥 친다. 여자가 아무 말이 없자 발길질은 운전석을 향한다. 이래도 가지 않을 거냐는 듯. 짜증이 끝까지 밀려온 여자는 뒷자리 아이를 바라보며 소리를 지른다.
“안 간다고 했잖아!!!”
.
.
.
.
‘지금이군.’
아이에게 살기 어린 눈빛을 쏘고 앞으로 보는 순간 갑자기 오토바이 한 대가 눈앞에 나타났다. 놀란 여자가 핸들을 꺾었다.
“끼!!!!!!!!... 익!”
옆 차선으로 급히 차선을 바꾸려는데...
“빠!!!!!!!!... 아아아 아아아앙!!!!”
폐기물을 가득 채운 덤프트럭이 경적을 울렸다.
시간이 멈춘 듯 느리게 흘렀다. 충격과 공포에 질린 아이의 울음소리와 덤프트럭의 우레와 같은 경적소리가 뒤섞여 뇌를 파고든다. 거대한 바퀴가 육중한 무게로 승용차 위로 올라탄다. 종이처럼 얇아진 차에서, 붉디붉은 것이 흐른다.
작은 조각으로 흩어진 유리 너머 얼어붙은 듯 멈춘 여자의 두 눈이 추첨 없이 허공을 향하고 있다. 고개를 떨군 아이의 마지막은 표정조차 알 수 없다. 모든 것이 멈췄다.
어스름귀만이 멈춘 시공간 안에서 자유로웠다.
감정 없는 눈길이 멈춘 곳은, 원망과 저주가 엉겨 붙어 흘러나오는, 소리 없는 여자의 입이었다.
'다 저 오토바이 때문이야...
내가 아니라 그놈이 죽었어야지!! 왜 나야..!
죽어버려!! 죽더라도 저주할 거야.....!'
역시 어스름귀는 자신의 판단에 한치의 틀림이 없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다시 흐른다.
놀라 소리 지르고 웅성거리는 사람들 사이로 구급차와 경찰차, 그리고 랙카차가 달려왔다. 경찰이 주변 사람들을 물리고 구급대원들은 구조할 사람이 없다는 현실에 찹찹한 마음으로 사고차량에 다가선다. 그리고 그들과는 다른 관점으로 사고 현장을 바라보는 한 남자.
"차 빼서 가기 쉽지 않겠네"
멀리서 형체를 알 수 없게 된 사고차량을 보며 툴툴거리던 남자는 다음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그대로 무너졌다.
"...... 어.... 저... 차.... 안돼!!!! 아.... 아아아악!!!!"
사고차량을 견인하러 왔던 그 남자는....
여자의 남편이었다. 남자의 마음은, 살아 있는 채로 지옥에 내던져졌다. 그동안 별 감흥 없이 봐오던 사고현장이 누군가에게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산지옥이라는 것을 이제 알아버리고 말았다.
어차피 들을 수 없는 남자에게 어스름귀가 속삭였다.
"방관자"
어스름귀는 사건현장을 등지고 걸었다.
제 할 일을 끝냈다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