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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훈 Feb 21. 2024

성격은 안 바뀐다


이렇게 오래 살았으면서도 성격은 참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물론 바뀌었다고 착각도 했었는데 결론적으로 어린 시절의 많은 습성이 그대로 살아 있다. 이런 습성은 상대에게 분위기를 압도당하거나 자신의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을 때 더 심해지는 것 같다. 어린 시절부터 숙기가 없고 말도 잘하지 못하는 스타일이어서 아마 대학 졸업할 때까지 누구 앞에서 말하는 것을 굉장히 어려워했다.

버스터미널에서 버스표 구매하는 것조차 제대로 말하지 못했는데 아마 고등학교 때까지도 그랬던 것 같다.


말에 조리가 없다고 해야 하나 말이 급하고 전달하려고 하는 메시지 선명하지가 않았다. 생략이 많다 보니 의도하지 않게 단문형의 말이 많고 어떤 상황의 전개와 결론에 도달하는 것들이 분명하지 않다. 생략이 많으면 이야기에 실감이 없고 재미가 상당히 덜 한 편이다. 긴 이야기 중 상대에게 필요하다 싶은 게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하다 보니 생겼다고 볼 수 있는데 이야기를 한 호흡에 하려는 습성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최근에도 그다지 말 주변은 나아지지 않아 상대의 이야기에 맞장구를 쳐 주거나 아니면 공통적인 사건을 공유하는 이들과 의견을 나눌 적에만 자리를 함께 하는 편이다. 이도 아마 자리가 길어지면 피곤함에 지쳐 견뎌 내지 못하지만 말이다.



초등학교 입학 전 외가에서 있었던 일이다. 중학교에 다니는 외종 사촌형이 마당에 자전거를 뒤집어 놓고 수리 중이다. 그러다 자전거 부속 하나가 사라졌나 보다. 외할머니까지 나서서 없어진 부속이 내 탓이라 하고, 찾아내라 한듯한데 그 당시 정말 억울해 혼자서라도 집에 돌아가려고 외가를 멀리멀리 떠나온 기억이 있다. 결국엔 다시 외가에 돌아갔지만 말이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운동장에서 축구를 많이 했는데 특출 난 공차기 기술이 없었으므로 포지션이 대부분 골키퍼 자리였다. 그러다 골이라도 먹게 되고 친구들의 잔소리가 있으면 우습게도 곧바로 때려치웠었다.

한 번은 큰 조부님 장례식 있었던 중학교 때였다. 많은 친척들이 문상을 드린 나에게 아는 척을 하지 않아 문상만 드리고 곧바로 집에 온 적도 있다.



용케 지금까지 살아낸 것이 대단하다. 자존감을 높이려면 스스로를 긍정하고  칭찬을 하라고 하는데 그 점에 있어서는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겠다.

90년대 초 노동조합의 조합 간부를 하면서 제일 어려웠던 것이 조합원들 앞에서 구호를 외치고 상황을 설명하는 것들이었다. 아마 그런 일이 많았더라면 아마 조합을 일찍 탈퇴했을 수도 있었는데 탈퇴도 아마 자존감이 낮아 쉽게 결정하지 못했을 듯하다. 그래서 조합활동 중 그나마 대자보를 쓰거나 하는 일 아니면 노보에 글을 게재하는 것에 비중을 두기도 했다.



남에게 부탁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고 일의 과정이 공정하지 않으면 답답함이 치민다. 결과가 좋으냐 나쁘냐 보다 과정에 더 충실히 하는 편이라고 생각되지만 이 과정 또한 빠르게 진행되지 않으면 역시 답답해한다.



무엇을 할 때도 일단 진행하면 멈추는 것을 창피하게 생각한다. 시간 전에 약속장소에 가야 하고,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생기기거나 들러리라 여기면 자리를 벗어나 버린다. 남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고 생각해도 마찬가지이다. 숙의하고 설득하고 자리를 개선시키려 하기보다는 피하고 외면하는 것이 우선하는 것 같다.


물론 잘 모르는 자리는 끝까지 지키는 편인데 나를 잘 알고 있다고 하는 이들이 감정을 상하게 할 때는 그 자리를 벗어나는 일을 선택한다.  힘든 일 피곤 한 일은 외면해 딸에게 지적을 받기도 했다.


남들은 긍정적인 마인드로 살아라, 부정적인 생각이나 말을 하지 말아라, 웃어라 등 다양한 조언을 하지만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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