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홍어를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는지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아마도 90년대 초반부터였지 싶다. 용산국제시장이나 대방동 해군회관 4거리 인근에 허름한 형색의 홍어집들이 조그마한 간판하나를 달고 영업을 하는 집들이 몇몇 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홍어를 단지에서 꺼내와 썰어주었던 기억이 있다. 부천 인근으로 이사를 와서는 역곡역 주변에 홍어집이 있어 맛을 본 경험이 있다.
불과 한 두해 전까지만 해도 삭힌 홍어를 즐겨 왔었는데, 주변에 홍어를 즐기는 사람들이 대부분 떠나보내고 보니 한동안 잊고 지내왔고, 발걸음을 그쪽으로 옮기기도 쉽지 않다.
삭힌 홍어는 풍부한 아미아산 성분으로 특유의 맛과 향을 뽐내는데, 화장실 느낌의 향으로 호불호가 크게 엇갈리기도 한다. 건강을 생각하고 먹는 것은 아니지만 삭힌 홍어에는 오메가 3 지방산과 타우린 그리고 단백질을 함유하고 있어 감기예방과 위염예방에 좋다고 한다.
홍어는 겨울에서 이른 봄까지가 산란기이기 때문에 3월 정도까지가 제철이다. 내가 근무하던 용산역 주변에는 국제빌딩 입구로부터 1백 미터 길이의 시장이 있는데 시장 주변에는 옛날식 소꼬리 찜이나 도가니 수육 등을 만들어 파는 집과 더불어 간혹 홍어라는 간판만 붙여 놓은 작은 마한 주택을 개조한 식당들이 많았다. 특히 용산역 앞에 있던 역전식당은 바싹 불고기 메뉴로 꽤나 유명했었다. 석쇠에 구워 납작한 놋그릇에 내어오던 바싹 불고기는 육우 등심과 치맛살 등을 사용했기에 값도 그리 비싸지 않아 가끔 점심용으로 이용한 기억이 있다.
홍어도 특이한 맛과 폭넓은 마니아 층으로 인해 민간에 전하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 가장 근자에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정치인이 흑산도에 가서 국산으로 추천받은 홍어를 정말 맛있게 드시고 나서 홍어 삭힌 맛이 얼마나 좋았던지 홍어 가게 주인에게 청와대에 선물하겠다며 홍어를 포장해 달라 했는데 선물할 곳이 청와대임을 안 주인이 깜짝 놀라 실은 가짜 홍어였었노라고 고백했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홍어의 메카인 흑산도에서도 국산 홍어는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다.
홍어는 큰 몸과 생식기 탓으로 많은 스토리를 만들어낸 물고기다. 그중에 만만한 게 홍어좆이다.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암컷이 수컷보다 맛이 있는 관계로 수컷 홍어를 잡게 되면 뱃사람들이 꼬리 양쪽에 있는 그것을 떼어 버렸다는 데서 나왔다는 이야기가 있고, 술안주로도 그것이 넉넉하여 떼어내도 표도 잘 나지 않는 그것을 술꾼들이 공짜 안주로 먹었다는데서 나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지금이야 법률로 국산과 수입산을 명기해야 해서 그런 일은 줄었지만 어쨌든 국산과 수입산 홍어의 가격 차이는 10배가 넘는다.
서울 대방동지역에 한동안 삶을 의탁했을 시절에는 주로 해군본부 사거리에서 대방동성요셉성당으로 올라가는 초입에 간판도 없이 주택 한 곳을 식당으로 개조하여 사용하던 홍어집이 있었다. 회사가 가산디지털 단지로 이사를 했을 시기에는 광명 시장 내에서 간간히 막걸리나 소주에 한 점 걸치곤 했던 짱구식당이 있다. 예전 돌아가신 장인어른이 가끔 놀러 오시면 광명시장 내에 있는 이 짱구식당에서 홍어애탕을 몇 인분 사가지고 와 집에서 대접해 드리기도 했던 기억도 있다.
홍어와의 인연은 한 참 후 사는 곳을 구로 항동으로 옮기고 나서도 부천 역곡역 앞의 홈플러스 건너편 어죽집으로 이어졌다. 어죽집은 주인이 직접 만들어 상에 내어 놓았다. 특히 여 사장님이 직접 항아리에 볏짚을 넣고 손수 발효 시킨 것을 내어 놓는데 가끔 서비스로 주시는 말랑말랑하게 삭힌 홍어코 맛이 일품이다.
더 최근은 부천 괴안동 사거리 지나 괴안동 행정복지센터 건너에 있는 홍어삼합집인 듯싶다. 그래도 이렇게 손에 꼽아보니 꽤 많은 홍어집이 나의 음식역사와 함께 한다.
홍어탕을 먹을 때에는 호흡의 타이밍이 참 중요하다. 입안 가득 홍어애탕 국물을 딱 떠 넣을 때 일단 호흡을 멈춰야 한다. 호흡을 하게 되면 메케한 홍어향이 폐를 찌르며 사래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먹어 본 분들은 아시지만 홍어애탕을 먹고 사래가 들었을 때의 그 난감함과 고통스러움은 이루 형용할 수가 없다. 그러면서도 묘하게 다시 찾을 수밖에 없는 맛이 삭힌 홍어에게는 있다. 아마도 발효 음식의 특성 때문일 것으로 추측된다.
많은 홍어 애호가들은 막걸리와 홍어삼합을 함께 먹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나의 경우에는 막걸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소주와 함께 먹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회사가 있는 가산디지털단지와 연결되어 있는 우림라이온스밸리 A동 굴국밥집에도 홍어삼합 메뉴가 있긴 하나 물가가 많이 올라서인지 가격이 제법 나가는 바람에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직장인들이 맘 놓고 먹기에는 양이 많이 부족하다.
과거문헌을 보면 "회로 먹거나 국을 끓이거나 포로 만들어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전라도 나주 가까운 고을에 사는 사람들은 썩힌 홍어를 즐겨 먹는데 지방에 따라 기호가 다르다"는 기록이 정약전의 「자산어보」에 기록되어 있다. 또 동물과 같이 교미를 해서 알을 낳는 물고기이기 때문에 몸집의 특성상 교미를 위하여 날개에 나 있는 가시 등으로 암수가 몸을 고정하는데 교미를 하고 있는 와중에 암수가 함께 낚시 줄에 걸리는 경우도 있어 옛날 사람들은 음란함의 상징으로 기록했다.
「본초강목」에는 '태양어(邰陽魚)'라 하고, 모양이 연잎을 닮았다 하여 '하어(荷魚)'라고도 기록하고 있다.
홍어삼합을 먹은 후 홍어앳국을 찾는 사람도 많은데 내가 그런 쪽에 속한다. 뼈가 연해 이른 봄철에 보리 싹과 함께 홍어 내장을 넣어 끓이면 코끝을 톡 쏘는 맛과 시원한 국물 맛이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