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타스정 Apr 07. 2024

0. 스타트업은 이상과 현실 사이의 어디쯤.

당신이 꿈꿔왔던 스타트업은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진짜 맞을까요?

"갑자기 스타트업을?", "넌 잘할 수 있을거야. 주도적이잖아."


대기업과 중견기업을 두루 거쳐 직장생활 6년 차에 스타트업으로 이직하겠다고 결정했을 때, 주변 사람들에게 들었던 반응이었습니다. 20년 코로나 사태 이후, 스타트업들의 급진적 성장과 함께 대기업·중견기업에서 커리어를 쌓던 개발자, 디자이너, 기획자 등에게 스타트업으로의 이직은 거대한 성장을 위한 매력적인 도전이기도 했습니다. HR 분야도 그랬습니다. 이미 구축된 시스템, 딱딱하고 수직적인 거버넌스, 말 뿐인 조직문화를 지닌 20년 이상의 기업에서 근무하던 사람들에게 스타트업이 갖고 있는 "책임과 자율, 열정과 창의적 사고, 젊고 수평적인 거버넌스, 흥미와 재미의 조직문화"는 이상(理想)과도 같은 직장이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쟁쟁한 기업에서의 제안을 물리치고, 23년 6월. 성장하고 있는 스타트업의 1인 HR로의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스타트업의 장단점 : 이상과 현실 사이의 어디 쯤


스타트업의 가장 큰 메리트를 꼽는다면, 당연히 1명이 10인분을 해야하기 때문에 주도적 결정과 책임, 실행이 온전히 내 몫이라는 것입니다. 좋은 말로 하면 내 욕심만큼 실행할 수 있고, 성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 만큼 성취감도 크겠죠. 누군가의 방해(혹은 회사의 프로세스로부터의 방해)가 없이 내가 계획한대로 프로젝트들이 실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업무를 효율적으로 하는 것은 전무하고 여유 인력이 없어 1명이 열정을 다해 그 자리를 메꿔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정말 사소한 일(영수증 증빙, 은행 업무, 전표처리 등)부터 책임이 막중한 일까지 모든 것을 짊어지게 됩니다. 그 책임과 무게는 이루 말할 수 없겠죠. 또한 이 과정에서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효율적 프로세스 안에서 움직였던 자신의 부족함, 나와 함께 일을 나눠 업무의 완성도를 높여갔던 동료의 부재를 강하게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는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오릅니다.


"아... 내가 생각보다 주도적이지 않고, 많이 부족한 사람이구나."


이상과 현실의 경계를 지날 때즈음에 드는 이런 생각은 대기업, 중견기업을 거쳐온 직장인들에게 다시금 체계적인 조직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강하게 가져옵니다. 그리고는 스타트업에서 약 6개월의 시간을 거쳐 다시금 돌아가려고 하죠. 소위 스타트업에 대한 이상을 갖고 도전했다가 실패하는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실제 저도 이러한 것들을 눈으로 봐왔고, 경험했습니다. 제가 처음 스타트업으로 이직했을 때, 제 동료들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 회사가 HR의 무덤이라는데... 타스(제 영어이름)는 좀 오래 했으면 좋겠어요."


기존에 있던 HR 담당자들이 6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대다수가 퇴사했기 때문이죠. (물론 왜 그런 것인지에 대해서는 같은 HR담당자로서 짐작이 갑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처음 왔을 때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과 패기는 어디가고, 어느 덧 매번 실수하는 자신을 보면서. 그리고 생각보다 업무 범위가 넓고, 얕게 빨리 해내야하는 일들이 많기 때문에. 그리고 기존의 대기업/중견기업에서 진행했던 화려하고 멋진 인사기획(성과평가, 보상, 직무등급제 등)은 온데간데 없이 실무적인 인사운영에만 집중하게 되면서 커리어 성장에 대해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상을 쫓아 왔는데 스타트업은 이상(理想)적인 모습이 아닐까?"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원인은 '나'에게 있습니다. 스타트업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환경, 그리고 기업의 성장곡선을 간과하고 것입니다. 무슨 이야기일까요?


기업의 성장과정을 사람의 성장과정으로 비유하자면, 대기업과 중견기업은 20살 혹은 3040대의 성숙한 성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윗 세대들이 학습한 지식, 다양한 경험을 통해 해당 기업만의 노하우를 쌓고 기업의 업종, 특징에 맞게 규범과 질서(=조직문화)가 구축되어 있습니다. 효율적으로 일을 하기 위해 숱한 노력 끝에 본인들 만의 프로세스를 만들고 실행에 옮깁니다. 그 다음은 무엇일까요? 사람과 똑같이 지금 이 상황에서 그럼 더 나은 선택은 무엇인지 고민하고, 또 다음 도전(=사업의 확장 등)으로 이어나가게 됩니다. 즉, 스타트업에 도전하는 대기업/중견기업의 경력직들은 이미 20대, 30대의 성장기 혹은 성숙기에 익숙한 사람이기에 유년기 혹은 청년기 시절로 돌아가야하는 스타트업의 현실에 익숙해지기 쉽지 않습니다.


특히, 이미 고도화된 경제성장의 환경에서 취업을 해온 젊은 세대들은 (소기업, 스타트업, 중소기업으로 경력을 시작하지 않는 이상) 기업의 유년기, 청년기 시절을 경험해본 적이 없습니다. 이미 선배들이 구축해온 업무 프로세스, 전결라인, 회의 및 업무문화를 경험해보기만 했지, 직접 본인들이 고민하고 그것을 설득하면서 만들어온 과정은 부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들고, 사람들을 설득하고, 작은 일도 꼼꼼하게 챙겨야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일례로 이미 큰 기업이 구축해온 다양한 서비스(ERP, 인사평가, 조직문화, 복리후생 등)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스타트업에 와서 해당 내용을 도입하려고 하면, 사람들은 묻습니다. "왜요?", "꼭 필요할까요?", "지금 우리에게 이게 맞나요?" 평소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것들이 스타트업의 경영진 및 구성원들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 있습니다. 마치 아이에게 "잠자기 전에 양치를 꼭해야 돼"라고 말했을 때, "왜요?"라고 묻는 것과 같습니다. 이 과정에서 꽤나 많은 리소스(시간, 설득, 감정 등)가 투여되고 때론 답답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스타트업의 환경에 대해 불평불만을 토로하기도 합니다. 그리곤 좌절하고 떠나버리는 것을 선택합니다. 이게 과연 올바른 것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원인은 '나'에게 있습니다. 스타트업의 환경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Zero to One" 입니다. 어린아이가 밥을 먹을 때는 숟가락을, 반찬을 먹을 때는 젓가락을. 식사 후 양치를 해야하는 일 등에 대해 규범과 질서,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가장 중요하면서도 기초적인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미 다 커버린 대기업/중견기업의 잣대에서 변화를 시도하려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어린아이가 지금 배워야할 기초들은 skip 한 채, 어른스럽게 행동해야한다고 강요하는 것과 같습니다. 근태, 업무환경, 업무 프로세스, 경영진의 의사결정과정, 회의방식 등 스타트업은 이제 막 모든 것들이 하나하나 시작하는 단계입니다. 어떻게 하면 더 좋을지, 어떻게 하면 개선될 수 있을지를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고쳐나가는 단계죠. 그러나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대체 왜이렇게 비효율적인거야?" 라고 이야기하게 된다면, 조직 내 구성원들의 불만이 쌓이고 본인이 처음와서 주도적으로 기여하고자했던 조직의 변화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가지게 만듭니다. 자연스럽게 '나'는 해당 조직에서 도태되고, 스타트업에 안 맞는 인재라고 판단하여 다시 대기업과 중견기업에 돌아가기를 희망하지만 그것 조차 쉽지 않게 됩니다.


약 1년 간의 스타트업 HR 담당자로 경험하면서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단언컨데, 지난 5년의 직장생활 경험보다 더욱 치열하게 고민하고 생각하며 때론 Depress 되고, 때론 스스로 성찰하는 과정을 거치기도 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조금씩 스스로를 다듬어가고 있다고도 생각하는데요. 생각정리와 함께 스타트업에서 경험했던 것들, 그리고 앞으로 경험하고 있는 하나하나를 써내려가고자 합니다.


스타트업을 고민하시는. 스타트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