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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전자 Aug 28. 2020

커피 한 잔에서 시작된 우정

14주차 요리

0622 MON

튜나 카나페. 카나페는 중학생 때 처음 들은 단어인 것 같은데 프랑스어여서 그런지 어감이 마음에 드는 단어였다. 물론 카나페 자체도 아주 좋아한다.


문득 튜나 카나페가 먹고 싶어서 만들어 보았다. 참치 캔 하나, 큰 양파 반 개, 마요네즈와 소금, 설탕. 내 입에 맞을 때까지 마요네즈 양과 소금의 양을 조절한다. 치아씨드 바게트 위에 올리면 완성. 버터나 크림치즈를 올리면 더 맛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마요네즈와 참치 캔의 오일만으로도 충분히 촉촉하다.


요리든 무엇이든 fancy와 too much 사이의 밸런스를 잘 맞춰야 하는 것 같다.


0623 TUE

사과 반 개, 바나나 반 개, 오트밀, 치아씨드, 아몬드, 캐슈넛, 해바라기씨를 넣고 두유를 붓는다. 과일은 많이 먹을수록 좋은 줄 알았는데 하루 섭취 권고량이 있다고 한다. 당분 섭취를 너무 많이 하면 안 좋다는 걸 보고 사과와 바나나를 반 개씩만 먹기로 했다.


0624 WED

어제와 같은 아침.

그제 먹었던 튜나 카나페를 만들었다. 이틀 전에 만든 튜나 토핑이 괜히 신선한 느낌이 사라진 것 같아서 크림치즈도 바르고 마지막에 후추도 솔솔. 플래시보 효과인지 크림치즈를 바르니 신선한 느낌이 들었다. 며칠 전 음식을 먹을 때 새로운 무언가와 함께 먹는 센스를 발휘하면 신선하게 먹을 수 있는 것 같다.

원래 참치 캔을 산 이유는 튜나 샐러드를 만들어 먹기 위해서였다. 샐러드에 넣으려고 로메인 상추 비슷한 걸 샀는데, 정말 모양만 비슷한 상추였다. 이 적상추는 혀에 닿자마자 너무 쓰고 셔서 몸서리 칠 정도였다. 도대체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인터넷에도 물어보고 엄마한테도 전화해서 물어봤지만 실패였다. 식초에 반나절 담가두기도 했고 적양파, 굴소스, 식초를 이용한 엄마의 비법 소스를 만들어 넣기도 했는데 재료 낭비였다. 어쨌든 이것저것 시도해보고 버리니 덜 마음이 아팠다. 결국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먹을 수 있는 재료인지는 아직까지 의문.

기숙사 안 마리엔 플라츠라는 공간으로 나오면 가끔 이렇게 멋진 노을이 펼쳐진다. 가만히 서서 이 멋진 노을을 감상하여 사진도 찍으니 지나가던 사람들도 한 번씩 고개를 들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서울에 돌아가서도 지친 일상 속에서 이런 모습을 특별한 순간으로 인식할 수 있는 여유를 챙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0625 THU

오늘도 과일과 견과류, 오트밀로 시작하는 아침.

계란국 같은 계란죽을 만들었다. 원래 계란국을 만들려다 옆집 친구가 밥이랑 같이 넣어서 끓이자는 바람에 계란죽도 아닌 무언가가 되어버렸다.


냄비에 물 세 컵을 넣고 끓이다 다시다를 작은 숟가락으로 1-2 스푼 넣는다. 중불에 밥을 넣고 되직해질 때까지 끓인다. 계란 두 개를 넣고 살짝 젓는다. 계란이 익으면, 파를 넣고 1분 정도 더 끓인다. 파는 많다 싶을 정도로 넣어야 달달하고 시원한 맛을 낼 수 있다. 소금과 간장을 넣어서 간을 하고 불을 끈다.


계란이 익는 게 생각보다 오래 걸리고 중간에 물도 추가하는 바람에, 밥도 넣어버리는 바람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 맛은 조금 심심하긴 했지만, 기본에 충실한 계란밥이었다. 참기름도 있었으면 고소함이 온몸에 퍼졌을 텐데. 후다닥 먹고 수업 듣기.

제시카를 만나러 시내로 나왔다. 지난번처럼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시고 길거리 거닐기. 처음에는 연결 고리가 전혀 없다고 생각한 우리가 시시한 얘기로 말문을 튼 후, 어쩌다 보니 연락을 하며 함께 커피를 마시는 사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제시카와 함께한 저녁. 커피를 마시고 길거리를 거닐면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저녁시간이 되어있었다. 걷다 보니 그가 가장 좋아한다는 체인점 레스토랑 'Hans im Glück'이 눈에 들어왔다. 베지테리안인 제시카도 햄버거를 먹을 수 있는 곳이었다. 메뉴가 굉장히 많아서 무엇을 먹어야 할지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나는 'Hans im Glück'를 선택했다. 가게 이름과 같은 메뉴라면 실패할 리가 없었다. 그리고 역시나 성공적인 초이스였다. 감자튀김도 겉바속촉의 진수였는데, 소스도 여러 가지여서 소스 맛보는 재미도 있었다.


락다운 이후 거의 처음으로 하는 외식이었다. 저녁 식사를 하며 제시카에게 남부 이탈리아에 대해 영업당하고 몇 년 내에 방문하기로 했다. 그도 남부는 가본 적이 없어서 함께 가면 재밌을 것 같다며!



0626 FRI

어제저녁을 그렇게 든든하게 먹었어도, 오랫동안 걸어서인지 쉴 새 없이 이야기해서인지, 아침이 되자 배가 리셋되었다. 든든하게 오트밀로 아침 챙기기.

계란국 같은 계란죽을 끓였다. 후추도 솔솔.

낮에 볕이 너무 좋은 날이었다. 오늘도 역시 제시카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 이따가 근처 호수에 갈 건데, 너도 갈래?', '그래! 할게 남기는 했지만, 날씨가 좋기도 하고 네가 간다면 가고 싶은걸?' 그렇게 우리는 갑작스러운 약속을 잡고 햇빛을 쬐러 갔다.

호수에서 수영도 하고 볕도 제대로 쬐고 돌아와서 만든 카프레제 샐러드. 버터와 프레첼 빵은 절대 빠질 수 없다. 내가 독일에 와서 탄수화물 중독이 된 건 버터랑 프레첼 책임이 크다.


저녁을 먹고 있는데, 한국인 언니가 놀러 와서 샐러드도 옆으로 치워두고 오랜만에 한국어로 수다를 떨었다. 한국인과 수다를 떠는 게 둘 다 오랜만이어서 어색한 어휘, 외국인과 쓸 법 한 손짓을 써가며 자정이 넘도록 이야기했다. 학생 신분으로 비교적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교환 생활도 힘들 때가 있는데, 해외 인턴십하며 모든 걸 해내는 언니가 대단해 보였다.


0627 SAT

아침은 오랜만에 뮤즐리가 아닌 다른 메뉴! 어제 옆으로 치워 둔 카프레제 샐러드와 빵. 한국에서는 빵에 크림치즈를 많이 발라 먹었는데 독일 버터가 맛있는 바람에 크림치즈는 전에 당근 케이크를 만들어 먹은 이후 거의 손도 대지 않았다.

점심은 마지막 계란죽과 깻잎. 한식도 간단하게 챙겨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가끔 놀랍기도 하다. 한식 요리는 내 눈에 언제나 복잡하고 어렵고 재료도 많이 필요한 분야였는데.

간식으로 올리브를 자주 챙겨 먹었다. 에데카 자체 상품 올리브를 추천하진 않는다. 고소함도 없고 신선함도 딱히 없는 듯하다.


Vietnamese dinner 사이에 낀 테오의 요리. 사진으로 보면 이게 무슨 요리일까 싶지만, 현장에서 봤을 때에는 엄청난 요리를 한 것만 같은 비주얼이었다. 우리가 정성껏 요리해줘서 고맙다고 하자 테오는 멋쩍어하면서 콩이랑 파프리카 등 빨리 써야 하는 재료를 다 넣고 만든 요리라고 맛있을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기대하며 한 입 먹은 순간 테오가 아주 솔직했구나 깨달은 음식.

그리고 이 날의 하이라이트, 베트남 음식! 몇 주 전부터 international dinner에 합류한 베트남계 독일인 친구가 만들어주었다. 마침 친구가 이사 가기 전에 함께하는 마지막 저녁 식사이기도 했다. 재료를 근처 절에 가서 구해왔다고 했는데 땀을 흘리며 음식 설명을 하는 친구의 정성에 감동이 몰려왔다. 음식도 지금까지 주최한 식사 중에서 최고였다. 두부는 얼마나 부드럽고 고소하게 잘 튀겼는지 돼지고기 요리는 또 얼마나 촉촉하고 부드럽고 감칠맛 나게 잘 만들었는지. Medicine 공부 접고 가게를 차려도 성공할 것 같았다.


0628 SUN

일요일에는 모든 상점이 문을 닫는데, 기숙사 내에 있는 베이커리 두 군데 중 한 군데는 문을 열었다. 아침에 포트에 물을 끓이고 베이커리에 가서 건포도 롤을 하나 샀다. 행복한 일요일 아침.


점심은 간단하게 당근, 올리브, 치즈, 버터와 빵을 먹었는데, 저녁에도 배가 고프지 않아 AYRAN을 꺼냈다. 아이란은 예전에 터키에서 끼니마다 먹은 음료인데, 요거트에 물과 소금을 넣은 것이다. 기억 상으로는 이렇게나 묽지 않아서 달달하게 꿀을 타서 먹으려고 했다가 농도를 확인하고 얌전하게 그대로 마셨다.

머릿속이 아주 복잡했던 이번 주도 이렇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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