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주차
0706 MON
아침에 wimmer 빵집에 들렸다. 바닐라 롤과 무화과 프렌치 파이. 바닐라 롤은 점원의 추천으로, 무화과 파이는 무화과가 아니라 베이컨인 줄 알고 샀는데 기대한 것보다 맛있었다. 옴뇸뇸. 사실 나는 빵순이이다.
내가 만든 라떼! 라떼는 말이야~ 커피도 집에서 내려 먹었다고~ 는 아니고 인스턴트 커피가루를 사용했다. 커피가루 2스푼에 뜨거운 물과 우유 부어서 카페라떼 만들기. 우유의 비중이 클수록 단연 맛도 부드럽고 고소해진다. 문득 알아차린 것인데 유럽은 우유, 버터가 정말로 맛있다. 독일에 와서야 내가 지금까지 마신 우유는 진짜가 아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니까.
점심은 이탈리아식 만두, 라비올리! 냉동 라비올리와 당근 위에 치즈 솔솔 올려서 구웠다. 팬은 왜 저렇게 더러워졌을까?
직접 만든 아보카도 완두콩 스프레드! 캔 완두콩을 어떻게 쓸까 고민하다가 아보카도가 눈에 띄어서 그린 스프레드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의외의 조합이긴 하지만, 주성분이 단백질이라서 그런지 둘 다 초록 계열의 음식이어서 그런지 맛있었다! 아보카도 하나와 완두콩 반 캔을 한 그릇에 넣고 으깬다. 소금 후추를 살짝 뿌리고 먹어보니 조금 심심한 맛이어서 꿀을 넣었다. 이제야 전체적으로 조화되는 맛! 올리브 치아바타에 발라서 건강하고 든든하게 먹었다.
0707 TUE
아침은 뮤즐리! 매 끼니 건강하게 먹다 보니 모든 음식이 생기 있어 보이고 감사하게 여겨진다. 나에게 에너지를 주는 것들.
동생이 꿈에 나온 날이다. 나를 안아주면서 12:12-21pm을 꼭 기억하라고 했었다. 이 시간에 나는 옆집 친구랑 옥상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옥상에서 받은 햇빛. 너무 따뜻하고 힐링받는 느낌이었다. 여유와 따뜻함을 느끼는 순간들이지만 동생과 가족이 아주 많이 보고 싶은가 보다.
제시카의 오붓한 비건 저녁식사에 초대되었다! 퀴노아, 렌틸콩과 적양파가 들어간 귀여운 애호박 찜, 병아리콩 껍질을 일일이 벗겨서 만든 견과류가 잔뜩 올라간 후무스, 그리고 가지볶음까지. 그의 정성에 감동했고 요리 솜씨에 감탄했다.
내가 후무스와 비건에 관심을 보인 이후부터 제시카는 international dinner에 항상 후무스를 만들어왔고, 언젠간 나에게 비건 식사에 초대하고 싶다고 얘기했었다. 비건이나 베지테리안도 얼마나 맛있고 다양하게 식사를 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다며. 의도한 건 아니지만 벌써 몇 달째 빨간 고기는 아예 생각도 나지 않았고 생선 종류도 거의 먹지 않아서 신기한 터였다.
레시피 공책을 들고 가서 제시카에게 물어본 후무스 만드는 법! Tahin 소스, 200g 병아리콩, 레몬, 물, 후추와 소금, 올리브유. 재료를 준비하고 믹서에 갈면 끝이다. 너무 간단하지만 건강하고 맛있는 요리를 할 수 있다. 점점 베지테리안 음식의 매력에 빠지고 있었다.
0708 WED
아침에 엄마로부터 따뜻한 카톡이 날아왔다. 멀리 있어서 그런지 사이가 애틋해진 동생과 나를 보며, '너희는 세상에서 가장 오랫동안 사랑하는 사이가 될 거야.'라고 하셨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아주 조금은 이해가 되는 날이었다.
점심에는 냉장고에 남은 재료들로 음식 해 먹기! 라비올리와 당근 위에 치즈 솔솔 뿌려서 바싹 굽고 완두콩을 올려서 뚜껑 덮고 5분. 라비올리를 안태우고 구우려면 의외로 올리브유가 많이 들어가서 내가 생각하는 만큼 건강한지는 모르겠지만 가끔은 이렇게도 먹어줘야지~라는 생각으로 그냥 먹는다.
저녁에는 첫 시험을 끝낸 홍콩 친구 세바스찬이 놀러 왔다. 이 친구는 먹을 거에 목숨 거는 스타일인데, 한식이라면 무슨 요리인지 묻지도 않고 좋아한다. 한식을 꿰뚫고 있는 친구. 인스타에서 곱창 사진이나 감자탕 사진을 보면 항상 나를 태그 한다. 그런 세바스찬을 위해 아껴둔 짜장면 만들어 먹기!
아무리 짜장면이라고 해도 인스턴트 누들인 데에다가 먹는 양이 많은 세바스찬이기 때문에 같이 장을 보러 갔다. 웬일인지 배가 많이 안고프다고 했다. 나에게 홍콩 스타일로 양상추 먹는 법을 알려주겠다며 산 양상추 한 통. 끓는 물에 양상추를 넣고 5-7분 익힌다. 아삭함과 부드러움 사이의 식감에 굴소스를 살살 뿌려서 먹었다. 별거 아닌데 식감과 굴소스와의 조합이 중독적이었다.
밤에 후무스를 만들어보려고 세바스찬과 장을 보면서 Tahin소스를 샀다. 내가 믹서가 없다는 걸 잊고 샀다. 그냥 빵에 발라먹게 생겼다.
0709 THU
옆집 친구 야닉한테 저녁해 준 날! 맨날 같이 요리하거나 야닉이 주도해서 요리했지 내가 초대한 적은 없었던 것 같아서 카레를 해줬다. 짧은 연애 끝에 이날부로 우리는 정말 친구가 되었다. 야닉도 갈팡질팡하는 나 때문에 힘들었을 텐데 착한 친구.
양파, 당근, 감자, 브로콜리, 큐브 카레로 간단하게 만들 수 있다. 재료를 많이 넣어서 익히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긴 했지만, 야닉도 나도 두 그릇씩 맛있게 배불리 먹었다.
0710 FRI
요거트 베이스에 바나나 하나, 오트밀 잔뜩, 치아씨드, 해바라기씨와 캐슈넛 살짝.
무슨 일인지 하루 종일 배도 안 고프고 몸만 찌뿌둥해서 오랜만에 운동을 나갔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빵을 사 왔지. 처지는 날에 빵과 따뜻한 라떼만큼 효과적인 특효약도 없는 것 같다.
0711 SAT
잠도 깰 겸 산책도 할 겸 눈 뜨자마자 사온 빵. 빵집에서 나오는 길에 한국인 언니를 만났다. "아침부터 빵을 사다 먹다니, 유럽에 완전히 적응했네?" 아침에 빵을 사 먹는다는 게 특히나 신선한 음식에 집착하는 일부 유럽 사람들의 특징을 말한 건가? 빵순이이자 탄수화물 중독의 호르몬이 내 발을 이끈 것뿐이지만, 아침에 사 먹는 빵과 유럽 적응의 관계를 찾지는 못했지만 적응한 건 맞는듯했다.
내가 복숭아 사 오는 법. 마치 소중한 것들을 입양해오는듯한 모습에 웃음이 났다. 내 소중한 납작 복숭아들.
이번 주 international dinner에는 요거트 케이크를 구워갔다. 아주 심플하고 베이직한 케이크! 계란이 두 알 들어가서 비건은 못 먹지만, 베지터리안도 먹을 수 있고 누구나 좋아할 만한 디저트라고 생각한다.
오른쪽 쿠키는 이탈리아 친구 마티나가 이탈리아에서 전통적으로 어떻게 아침을 먹는지 알려주고 싶다며 가져온 쿠키. 마티나가 이탈리아에서는 달달한 아침식사를 한다고 설명했다. 크루아상이나 쿠키와 함께 에스프레소를 마신다고! 이탈리아에 관한 얘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설레는 걸 보면 이탈리아가 나를 부르고 있는 게 분명하다!
0712 SUN
토요일 저녁마다 항상 과식을 한다. 하지만 친구들의 사랑을 먹고 자라는 기분이기에 나쁘지만은 않다. 그래서 일요일은 나름대로 가볍게 먹는데... 가볍게 달달한 크림 디저트로...
Rote Grütze는 독일과 스웨덴, 덴마크에서 많이 먹는 디저트라고 한다. 빨간 곡물이라는 뜻의 이름인데, 과일청이 곡물과 같은 모양이어서 그렇게 지었다고. 각종 베리류 청에 바닐라 소스를 얹어서 먹는데 상상하는 그 맛이다. 달달하고 맛있다.
그리고 오후에는 호수에 갔다. 혼자 즐기는 따뜻한 햇볕이 나를 아주 낭만적인 상태로 만들었다. 문득 나는 물 근처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에서 호수 근처에 살만한 데가 있을까? 제주도로 가야 하나?
애초에 나는 도시형 사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도시형 사람이 있을까? 사람이 모이고 돈이 모이니까 어쩌다 보니 다들 도시에 살게 된 게 아닐까? 물론 도시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니 사람들이 살기 편하게 발달해 온건 맞다. 하지만 여전히 도시와 인간의 행복은 쉽게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뮌헨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과 제일 좋아하는 사진. 그들만의 이야기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