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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ic May 25. 2019

소리내지 못한, 오롯이 간직한 울음

[가족이라는 굴레, 첫번째 기록]

어떤 장소는 그 이름만으로도 추연하고 상실의 기억으로 가득한 곳이 있다.

내가 태어난 곳, 십 년을 자란 곳, 내 부모가 생을 거둔 곳.


5남매의 장녀였던 그녀는 가난한 부모, 동생들을 보며 모든 것을 내주고 포기할 줄 아는 딸이었다.

그 선택은 낮에는 여공인, 밤에는 학생인, 신경숙 소설에서나 등장하던, 차편 조차도 없던 마산의 야간고등학교였다. 그곳에서 부산이 고향인 마산에 일자리를 찾아온 남자를 만났고, 스무 살 배가 불러왔다.

어미의 손에 붙들려 병원까지 들어간 그녀는 결국 배를 부여잡고 병원을 뛰쳐나왔다.


그리 스물한 살에 막 접어든 겨울, 딸을 낳았다.


그녀에게 묻고 싶은 것들이 있었다.


내 태몽은 뭐였어? 나 가졌을 때 뭐가 제일 먹고 싶었어?

근데,, 아빠 어디가 좋았어?"

사실 그가 그녀에게 빠진 이유는 딱히 상상하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을 일이었다. 마른 몸에 비교적 큰 키, 다소 서구적 외모를 가진 그녀는 누가 보아도 호감을 가질 만한 사랑에 빠질 만한 여자였다. 봉긋한 광대와 이마, 짙은 쌍꺼풀, 무엇보다 그녀는 고작 스무살이었다. 다만 이미 이십 대에 탈모의 틈이 보이던 그는 집안도 직업도 외모도 무엇 하나 볼 품 없는 평생을 허세로 일관한 남자였다.


허나, 그것들을 묻기에 당시의 딸은 너무나도 어렸고, 그런 질문을 할 수 있을 법한 나이가 되었을 때 그녀는 떠난 지 이미 너무 오래였다.


그리 스물한 살, 모두가 반대하던 딸을 낳고 이십 대에 이미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여자는 온몸 마디마디마다 병과 시름했다. 9살 딸을 앉혀둔 아침, 여자는 말했다.


엄마가 손이 아파서 오늘은 머리를 못 묶어줄 거 같아,,
오늘은 그냥 학교에 가자,, 괜찮지?

그 나이 즈음의 여자아이들은 높게 묶은 머리가 자랑이라도 되는 마냥 너나 할 것 없이 경쟁하듯 머리를 더더 높게 묶어댔다. 그런 와중에 제대로 채 묶지도 못 한 머리를 한 채 학교로 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선생님이 조용히 여자아이를 불렀다.


"집에 가봐야 할 것 같구나,,"


무슨 영문인지 모른 채 터벅터벅 간 다세대 주택의 마당에는 어른들이 가득했다. 그리고는 누군가 손을 잡고 갈 곳이 있다며 길을 이끌었다. 그곳에는 어릴 때 몇 번 보았던 것 같은 큰아빠라는 분이 있었고, 가만히 얼굴을 어루만지더니 매점으로 데려가 과자를 손에 쥐어주었다.


그곳은 병원이었다.
그리고 장례라는 것이 치러졌다.

며칠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집은 고요했고, 물건들은 어질러져있었고, 보험사에서나 나눠줄 법한 줄이 가득 그어진 노트에는 차마 그 의미와 감정을 읽어낼 수 없던 그녀 특유의 둥글둥글한 글씨들이 적혀있었다.

후에 지나고 보니 그것은 유서였다.


그때 그녀의 나이는 고작 29이었다.

그리고 29의 여자가 남긴 어린 딸은 어느덧 어미가 겪어내지 못한 삼십 대 중반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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