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 마음을 다해 만나는 사람, 친구
페루 과야밤바 워시드
다친 기억도 없는데 갑자기 목이 돌아가지 않는다. 담이 왔다. 노안을 핑계 대며 책을 멀리하지만 영상 시청시간은 늘었다. 하나만 신중히 고르면 다음 볼거리는 비슷한 분류로 자동 재생되니 고민할 것이 없다. 식탁이든 소파든 편한 자리에 앉아 간혹 웃기도 하며 머리를 비운다. 시간은 냉정하게 사라지고 자책만 쌓인다. 며칠 계속했더니 목이 뻣뻣하고 두통이 동반된다. 저절로 사라질 것이라 여겼는데 더 심해진다. 가까운 정형외과 선생님의 진단은 근막통증증후군이다. 근육주사와 물리치료를 받았다. 일자목 증상도 있으니 조심하라고 한다. 이 병은 치료보다 예방이 중요하고 잘못된 생활 습관과 바르지 않은 자세에서 발생하니 일상에서 제대로 된 습관을 실천해야 한다고 하신다. 뻣뻣한 목이 낫기는 할까 걱정이다.
오늘의 커피는 페루 과야밤바 워시드. 남위 12도, 서경 77도의 덜 알려진 나라의 원두지만 최근 가장 핫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가성비 측면에서 부각되고 있다. 봉지를 열면 훅~ 오렌지의 달달한 향이 밀려온다. 고노 드립용으로 분쇄하면 캐러멜 향이 난다. 20g 원두를 92°C 온수로 280ml 추출하면 밀크 초콜릿 바닐라 시트러스 맛이 난다. 좋은 밸러스와 단맛이 매일 아침 따뜻하게 마시기 좋은 커피로 꼽을 수 있다. 지치지도 않고 떠들고 웃고 먹는 재밌고 유쾌한 친구들과 마시기 좋다. 가볍고 신선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뛰어난 관찰력 없고, 향에 대한 저장된 정보도 없고, 과거에 마셨던 커피에 대한 기억은 가물가물하고. 통찰이 어우러진 필력은 더더욱 없으나 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그 붉은 열매가 자란 땅과 바람과 하늘과 햇빛을 느끼고 즐기는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싱글 오리진으로 내려서 마시는 것은 자연 그 자체를 즐기는 맛있는 일이라고 하자.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속삭 옆자리 친구와 속삭이며 마시자. 이 나이에 아무 스펙도 없는 나한테 화가 난다고 말하면 친구들은 그냥 지금 그대로 살라고 한다. 지금이라도 뭐라도 하고 뭔가가 돼야 한다고 말하면 들은 척도 안 한다. 이 나이에도 불투명한 미래는 불안하다고 말하면 더 나쁠 일이 뭐가 있겠냐 한다. 역시 삶을 제대로 통과한 중년의 혜안이다. 그녀들과 부드럽고 고소한 커피를 마시며 마음을 놓는다. 걱정은 산 사람의 마음을 태우는 일, 그 일은 그만해도 좋다는 친구들이 있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