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 커피 향기 가득한 쉼터를 찾아서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G1 첼바 내추럴
깨똑~ 무심히 툭 날아온 문자.
1. 마스크 쓰지 않아도 됨.
2. 일본 외국인 관광객 입국 재개함.
3. 대중교통이나 식사 장소에서 대화 시간 줄이기.
4. 체온 측정, 손 소독 같은 개인 수칙 잘 지키면 됨.
5. 우리, 카페 투어나 갈까?
6. 일정표는 알아서 짜!
7. 출발일 여행 비용 고려치 않음.
헐~!! 어쩌라고? 마음의 소리는 다르다. 앗싸! 바라던 바를 실행할 시간에 닿았다는 기분이다. 약간 고민하는 모드로 전환하고 배낭을 흘겨본다. 어디로 가야 하나... 카페 투어를 가자는데 마다할 리 없다. 카페 하면 도쿄, 도쿄 하면 카페라 우기는 일 인으로 빠르게 머리를 굴린다. 더운 여름이지만 마음에 온기를 채워 넣는 커피를 좋아하는 이들과 배낭을 들고 나선다면 더위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지 싶다. 단체 여행은 돈 문제부터 시작해서 서툰 일본어까지 생각할 게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지금은 고민해서 안 된다. 당장 승낙하고 이제부터 고민하면 된다. 함께 더 많은 이야기를 만들고 재미있게 지낼 것만 생각하면 될 것이다. 어느새 입꼬리가 광대뼈를 향해 올라간다.
그녀들을 떠올리면 쪼글쪼글 주눅 든 마음마저 다림질이 된다. 멋진 만남이 기다려진다. 간섭하지 않으면서 관심을 가져주는 그녀들, 소중한 친구다. 실용적인 여행 계획표를 만들어야겠다. 그녀들이 바라는 장소나 꼭 먹어야 할 음식은 미리 챙겨야겠다는 생각만 하자. 귀를 기울이고 성심을 다해 듣고 정작 방문지는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정해버려야겠다. 막상 혼자이고 싶어 여행을 계획하다가도 결국 같이 가게 되는 그녀들. 이상한 관계처럼 보이지만 사람을 좋아하고 배려를 잘하는 태도 때문에 같이 있어도 혼자 있는 듯한 자연스러움이 있다. 점점 수다의 즐거움보다 커피 맛을 알게 되어 함께 카페 투어 하고 싶다는 그 마음을 진하게 느껴야겠다. 그녀들의 행복한 표정 만들기에 적극 동참해야겠다.
오늘의 커피는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G1 첼바 내추럴. 즉석 로스팅한 신선한 원두를 수동 그라인더에 도르륵 도르륵 갈아 천천히 내리면 부드럽고 달콤한 커피가 된다. 따뜻한 솜사탕 같은 달달함이 좋다. 초여름 싱그러운 기운이 한껏 풍기는 산딸기 향은 일품이다. 달지 않은 케익과 먹으면 더 맛있다. 가볍지 않으며 진하지 않은 쓴맛은 덤이다. 심박동이 빨라지며 얼굴에 홍조가 보이는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차분한 사람도 말이 빨라지며 흥분할 수 있는 증상도 동반된다. 나는 이런 현상을 커피의 좋은 점이라 우기는 편이다.
오늘의 커피는 유명 관광지가 아닌 깨끗하고 예쁜 골목골목들을 걸으며 마시기 좋은 커피다. 느긋하게 분위기를 즐기며 마시자. 좋아하는 사람과 커피 향기에 취해 아등바등 삶의 치열함은 잠시 내려놓을 수 있을 것이다. 그녀들에게 후미진 곳에서 만나는 낯설지만 정겹고 포근한 카페를 발견한 기쁨을 누리게 해 줘야겠다. 편안하고 사치스러운 상반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골목 끝에서 능킁능큼 퍼지는 커피 향기를 맡으며 잠깐 쉴 수 있을 것이다. 떠나고 싶어 발바닥이 간질간질 거린다면 그럼 이제 뜨겁고 부드러운 향기에 풍덩 빠져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