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지 않기로 한 건 내 글이 누군가에게 가시가 되었다는 말을 듣고 서다. 자판 두드리기를 그만둔 지 일 년이 지났다. 여름으로부터 다시 여름으로 왔다. 잎이 돋고 꽃이 피고 폭우가 쏟아지고 간혹 눈이 내렸던 계절도 지나 다시 휘몰아치는 열대야 속을 걷는 날이 되었다. 정말 시간은 참 빠르다. 빠르다, 그 단어 말고 생각나는 것이 없는 것이 좀 서운하다.
간혹 서랍 속에 저장된 글을 볼 때마다 지워야 하나 이어야 하나 하는 고민을 고민하지 않은지도 오래다. 계절이 흐르는 동안 생각만 하다 시간을 보냈다. 요즘 왜 네 글이 없느냐는 관심 어린 질문도 많았다. 누군가는 내 글이 그립다고 했고 다른 이는 읽기가 불편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 지루함 속에서 글을 다시 잘 써보리라 다짐하기도 했다. 하지만 필력이 부족하여 이런저런 이유를 열거하며 그만뒀다. 노안을 핑계로 읽기를 멀리하니 소재가 없다. 보고 들은 이야기를 각색할 재주는 더더욱 부족하다. 부족한 능력을 감추기 위해 글쓰기를 그만둔 것이다. 그사이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됐다. 끈기 없고 오래 하는 일에 재주가 없음을 거듭 확인했다.
최근에는 점점 주위에 뒤처지는 기분으로 초조해져 버렸다. 나이를 먹으면 세상 물정을 알고 인생을 헤매지 않으며 살게 되는 줄 알았다. 약간은 그렇기도 하지만 아닌 것 같다. 나는 초조해하기만 할 뿐 달리 방법을 물색하지도 않고 눈에 띄게 노력하여 달라지지도 않는다. 주변에 불평만 하거나 그저 어쩔 수 없다 여기며 지낼 뿐이다.
오늘의 커피는 설탕과 프림이 한데 어우러졌다. 어지간히 지친 날 마시자. 에너지바가 따로 없다. 흔하디 흔한 커피다. 그럼에도 향이 좋다. 정다운 맛, 안정이 되는 맛이다. 지금의 내가 원하는 확실한 맛이다. 은은하게 달콤하고 새콤한 그런 맛은 아니지만 딱 좋다. 달짝하고 따끈하게 몸에 스며든다. 피곤할 때 끌리는 단맛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이 들어버린 나를 깨우는 맛이라 하자.
미덥지 못한 내 인생. 내세울 것도 남길 수 있는 것도 없다. 무언가를 계속한다 해도 우스울 정도로 아무것도 없지 않을까 싶다. 늘 뭔가 약간 손해 보고 있는 기분에 떨떠름한 느낌만 든다. 왠지 또 진 기분이다. 상을 받거나 칭찬 받는 기분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내 시간 같은 건 전혀 없던 때가 지나니 하고 싶은 것도 같이 할 사람도 없는 시간에 닿은 것 같다. 좋아하는 걸 하라는 말을 많이 듣는데 정작 좋아하는 것이 뭔지 모르겠다. 여러 다른 것이 섞여 최상의 맛을 내는 커피믹스와 달리 내 인생은 같은 곳을 빙빙 도는 맛이다.
지금은 그냥 가장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자전거 타고 달려야겠다. 햇볕에 그을리더라도 땀을 뻘뻘 흘리며 달리고 싶다.
다시 여름, 글을 시작하는 알림이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