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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림 Feb 28. 2020

낭만적 칩거생활

생강을 깎으며

서림의 취향상점 다섯번 째

#5 생강을 깎으며



대학시절, '충장서림'이라는, 충장로의 대표적인 만남의 장소인 그 서점을 돌아보다 <여자는 생각이 전부다>라는 제목의 책을 발견했습니다.


'음,  여자는 생각을 많이 한다는 뜻인가 ' 하며 집어드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여자는 생강이 전부다



???


그 책의 주제는 '생각'이 아니라 '생강'이었던 것입니다.




생강이 전부라고?


안에는 생강으로 몸이 기적적으로 좋아진 많은 사례들, 생강의 각종 효능들이 자세하게 적혀있었습니다.

'몸을 따뜻하게 하여 소화능력을 높이고, 면역력이 높아지며, 혈액순환이 좋아지고...'



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 책을 샀습니다. 내가 이런 분야의 책을 사는 건 처음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날부터 나의 생강사랑은 시작되었습니다.





그 책의 핵심 내용은 이것이었습니다.


'매울 정도로 진하게 끓일 것.'


'몸이 안좋을 때, 잠시 금식하면서,  설탕을 넣은 이 매운 생강차를 하루종일 마셔라!'


마트에 가서 생강을 사왔습니다. 그리고 타지 생활동안 감기 기운이 있는 날, 체력이 부족해서 왠지 아플 것 같은 날마다 나는 생강을 끓였다. 그것도 코와 귀에서 김이 나올 정도로 맵게!


플라시보 효과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렇게 매운 생강차를 끓여마시고 나면 감기 기운도 없어지고, 소화도 잘 되어서 몸이 한결 가벼워지곤 했습니다.


아마 타지에서 돌봐줄 엄마도 없이 아플 때 몹시도 서러웠던 기억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아프면 끝장이다,


그렇게 그렇게 스물세 살의 젊은 처자는 '생강'에 많은 것을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생강의 두번 째 효과


사실 생강의 '힐링'효과는 이것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생강에 묻은 흙을 씻어내고, 껍질을 깎아내고, 썰어서 끓이는 동안 왠지 마음이 푸근해지고, 복잡하던 생각도 정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깐생강이 아닌 흙생강을 사곤 합니다.


생강을 다듬을 때는 부엌의 바닥에 앉아서 하는 것이 좋습니다.


따뜻한 방바닥에 퍼질러 앉아, 생강을 깎고 있는 그 시간에는 내 모든 급한 일들이 멈춘 듯 합니다.  


"내 인생에서 급하게 할 것은 하나도 없다."


마음이 바빠지고 조급해질 때마다 생강을 깎으며 나는 줄곧 이렇게 다짐합니다. 그럼 마음이 조금 즐거워지고, 전체를 보지말고 딱 한 발짝만 더 가보자, 이런 야무진 생각도 듭니다. 하얗게 깎아놓은 생강처럼 말입니다.





칩거생활


온국민이 칩거생활에 들어갔습니다.

바이러스가 알 수 없이 세상을 요란하게 하는 것은 달갑지 않지만,

사실 나는 칩거생활을 좋아합니다.

당분간은 아무도 만나지 않고, 시끄러운 뉴스도 낮에는 잠시 꺼놓고.

노트북 앞에 앉아 이 생강차만 가까이 하며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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