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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한채 Sep 30. 2020

<Ep1> 우연히 찾아온 기회

대학생 10명 중 7명은 자기가 선택한 전공에 대한 후회를 한다.

어렸을 때 나는 게임을 많이 좋아했다. 특히 RPG 게임을 좋아했다. 캐릭터 하나하나 외형을 가꾸고, 내가 하고 싶은 직업을 골라 성장하며 스탯을 분배하는 시스템을 좋아했다.      


스탯을 분배할 때마다 항상 고민을 했다. 이 직업은 힘을 올려야 좋을지, 민첩을 올려야 좋을지 그 포인트 한 개 한 개에 신경을 많이 썼다. 그에 따른 내 캐릭터의 성장이 얼마나 다른 캐릭터와 차별되게 다를지 인터넷을 찾아보며 고민한다. 이처럼 가상현실인 게임에서 신중한 “나”인데 어찌 나의 인생의 변곡점과 같은 대학교 학과 선택을 신중하게 하지 못했을까.. 지금 30대가 넘어서야 그때를 회상해 본다.     


19살의 나는 하고 싶은 게 없었다. 딱히 학과에 대한 흥미와 관심이 없었다. 남들은 어떤 과를 선택할지 고민하는 시기에 나는 곧 20살, 성인이 된다는 생각에 이유 없는 기쁨만 가득 찼었다. 그때 친한 형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1년 선배인 그는 건축과에 들어가서 설계를 배우는데 그 작업이 너무 재밌다고 했다. 친한 형의 그 한마디에 나는 내 전공을 너무 쉽게 선택했다.     


건축은 내게 큰 목표를 주지 못했다. 학과 생활 동안 나는 책임감 하나로 학교생활을 했다. 건축을 배워서 나중에 어떤 미래를 그릴지 고민하지 않았다. 그저 하루하루 배우는 수업에서 최선을 다하기만 했다. 그 와중에 내가 자신 있고 흥미를 느끼는 과목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절대 사회에 나가서 하지는 않을 것이란 다짐을 한 분야도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다. 이 시기에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     


그렇게 나는 학년과 나이만 먹어가고 있었다. 졸업 후에 무엇을 할지 고민을 막 시작할 때쯤 대기업에서 취업설명회를 학교 내에서 개최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가 공부하던 “건축”이란 분야도 신입사원으로 뽑는다고 하니, 큰 기회가 될 것 같았다. 한번 설명이라도 들어보자는 마음으로 자리에 착석했다. 인사과에서 나온 직원으로 보이는 분이 회사의 비전에 대한 설명, 인재상을 브리핑했지만 사실 잘 들리지 않았다. 내 관심은 연봉과 실제 취업자의 생생한 후기였다. 그러니 그들의 브리핑은 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회사 소개가 끝날 때쯤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이 학교에서 접수된 입사지원서는 무조건 서류 전형은 통과하겠다는 소식이었다. 서류 전형이란 게 있는 줄도 몰랐던 당시에는 그저 “통과”라는 말이 긍정적으로 들렸기에 내심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나는 “붙으면 좋고 안되면 그만이니까 지원은 한번 해보자”라는 다짐을 했다.    

 

전형은 다음과 같았다. 1차 서류전형, 2차 인적성 시험, 3차 실무 면접, 4차 인성 면접으로 이뤄졌다. 우리 학교 학생들은 서류전형이 무조건 통과였기에 바로 인적성 시험을 쳤다. 난생처음 보는 문제를 주어진 시간 안에 풀어야 했다. 상식, 언어, 추리 문제 등 분야는 다양했다. 정확하게 푸는 것도 중요했지만 속도도 빨라야 했다. 처음엔 벙찌면서 많은 문제를 놓쳤다. 자격증 시험처럼 시간이 남으면 앞으로 가서 다시 보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잘못된 생각이었다. 도저히 시간이 나질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다가 남은 문제도 못 풀 것 같아서 과감하게 어려운 문제는 버렸다. 그래서 제 시간안에 하나의 분야를 끝마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치열했던 나자신?!에 대한 능력 시험이 끝나고, 두 번째 시험이 다가왔다.


시험지는 롤링페이퍼 같은 긴 시험지였다. 그 안에는 숫자들이 빼곡하게 적혀있는데 자릿수는 한 자릿수였다. 곧이어 진행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연속되는 두 개의 수를 더해서 일의 자리수만 가운데에 적으시면 됩니다. 종이 울리면 그다음 줄로 넘어가셔야 해요. 만약 안 넘어가고 계속할 경우 불이익이 있습니다.”     


쉬워 보였다. 단순히 계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평소 산수에 자신이 있었기에 쉬운 껌 씹기라 생각했다. 자신감 넘친 볼펜은 종이와의 각도가 수직에 가까울 만큼 꼿꼿이 서있었다.      


땡     


시작종이 울리기가 무섭게 암산을 해갔다. 15의 일의 자리수 5, 17의 일의 자리수 7, 3+2는 5, 등 무섭게 적어갔다.      


땡     


두 번째 종이 울렸다. 다음 줄로 넘어갔다. 이대로면 한 줄씩 다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한참 풀고 있는 중에 갑자기 몽롱함이 찾아왔다. 마치 최면에 걸린 듯 숫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로 겹쳐 보이기도 하고 단순한 계산인 7+3=10에서 일의 자리는 0인 것을 알고 있는데 쉽게 적지를 못했다. 이게 왜 쉽게 안될까? 하는 순간 세 번째 종이 울렸다.     


땡     


이제 눈이 침침해졌다. 검은건 숫자요 하얀건 종이인데 숫자가 눈에 안 들어왔다. 내 뇌는 단순 작업에 대한 불평불만을 손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꼿꼿이 서있던 볼펜의 각도는 점점 내려와 45도를 향하고 있었다. 내 머릿속은 암산에 대한 배움이 초등학교 이전으로 돌아간 듯 굼떴다.     


땡     


네 번째 타종이 울렸다. 이제는 모르겠다. 쥐어짰다. 흥미 없는 과목이라도 최선을 다했던 나 아닌가!?! 억지로 계산했다. 틀려도 모르겠다. 일단 적자. 꾸역 꾸역 적어나갔다.     


...

.....

......     

땡땡땡     


시험이 끝나는 타종이 울리고 나서야 내 뇌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제야 그 주변 사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가 적은 답을 보니 파도처럼 왔다 갔다 했다. 첫 번째 줄부터 답안 길이가 점차 줄어들었다. 그러다 중간에 정신 차리자는 기합을 넣었던 시기로 보이는 답안이 있었다. 점차 줄어든 답안이 갑자기 양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옥 맛?! 같았던 2차 시험이 끝났다. 결과는 일주일 안에 발표되었다. 당구장에서 같이 지원했던 형들과 한참 놀고 있던 중 한 사람씩 탈락 문자를 받게 되었다. 당연히 나도 탈락일 것이란 생각에, 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잉-     


축하합니다. 2차 시험에 합격하셨습니다. 3차 실무 면접 일시는 xx월 xx일......

     

2차 시험 합격 문자를 보고 그 자리에서 얼었다. 탈락한 형들 앞에서 마냥 기뻐할 수 없었기에 어떤 표현을 해야 할지 막막했기 때문이다. 나지막이 형들에겐 합격했다는 말만 남기고 당구장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집으로 돌아가면서 3차 면접에 대한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 고민의 결과로..    

 

나는 인생에서 다시는 하지 못할, 해보라고 해도 하지 않을, 그런 면접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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