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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한채 Sep 06. 2020

아버지, 이 또한 운명일까요?

아버지는 운명론자


「어젯밤 열한 시경 서울 경부고속도로에서 4중 추돌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사고를 당한 일가족 3명이 현장에서 사망하였습니다.」     


아버지께선 사고를 알리는 뉴스를 보다가 안타까운 마음이 드셨는지, 들고 있던 숟가락을 잠시 놓으며 말씀하셨다.      


-저들의 운명이 저기까지인가 보다.

-네?

-저기서 죽을 운명이었다고...


도로에 놓인 사고 차량의 문제점, 당시 기후 상황, 운전자들의 상태 등 사고의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결국 저들은 저기서 죽을 운명이었다고 한숨을 내쉬셨다. 그런 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아버지의 저 주름진 이마 속 당신의 삶 한 획 한 획이 다 운명이었을까. 궁금했다. 과연 자신의 삶도 운명이라 생각하실까. 오늘의 불합리함. 어제의 씁쓸함. 예기치 못한 행운 등 여러 상황과 감정들이 다 운명으로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일까.     




예전에 아버지께서 직원들과 다투신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었다. 시작부터 끝까지 본인의 억울함과 상황을 열심히 말씀하셨다.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계시던 어머니께선 아버지 편을 들어주셨다. 마땅히 그래야 하는 상황이었다.     


- 아버지, 그것도 다 운명 아닐까요?


소신 있게 발언을 한 아들을 잠시 바라보시더니 “허허” 헛웃음 치시며 이야기를 끝마치셨다.

본인이 원하는 대답이 나오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타인에게 하시던 말씀을 직접 들어보니 어이가 없어서 나온 웃음이셨을까. 잠시나마 생각에 잠기게 했던 사건이 있었다.     




- 우리 집에 온 게 운명이었나 보다. 


귀여운 우리 막둥이를 보고하시는 말씀이다. 2014년에 강아지 한 마리를 입양했는데 딸, 아들 보다 더 좋아하신다. 강아지의 애교와 부모님의 애교 둘 다 보게 되는 기이한 상황이 일어난다. 그렇게 애지중지하시는 아이들을 보며 이렇게 가족이 된 것은 운명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런 운명론자?!이신 우리 아버지가 최근 간경화가 악화되어 응급실에 가셨다. 두 달 전부터 복용하시던 약을 다 드셨는데, 귀찮아서 병원을 가지 않으셨다. 그러시면서 약주를 매일 꾸준히 드신 것이 간경화를 악화 되게 만들었다. 황달이 눈은 물론 온몸으로 퍼졌다. 그러면서 일은 계속하셨으니 몸이 버티지 못했다.     

병원 누워 계시며 치료받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이것이 아버지 운명일까. 생각해본다.


몇 십 년 가지고 계셨던 영양분 다 주셔서 허약한 모습이 되신 채 병원 밥을 드시는 아버지 모습을 보니 눈물이 글썽거린다. 다행히 황달은 금방 잡힐 예정이며, 간 수치는 점차 낮아질 거라는 의사의 말을 들었다. 간암이나 췌장암 등은 발견되지 않았다. 다행 중 다행이다. 앞으로 술은 사약과 다름없다. 담배는 쉬이 못 끊으시겠지만 술은 절대 안 된다고 말씀드렸다.  

   

만약 이것이 아버지의 운명이라면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된다. 아니다.

아버지를 가장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 운명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평생 약을 달고 사셔야겠지만 한 번 맞서보자고 다짐해본다.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 이번엔 아니고 싶다. 운명은 개척하는 것이라는 걸 보여드리고 싶다.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시기를 기대합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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