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은 사람도 살린다
[아래에서 설명하는 ‘이것’은 무엇일까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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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보면 규칙성이 없어 보이는 이 기사들은, 머릿속에 '이것'을 떠올린 채 검색한 결과입니다.
(2) 대부분 인간관계의 문제는 '이것'을 통해 해결할 수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 뿐 아니라 집단과 집단의 문제, 혹은 국가 간의 심각한 문제도 이것이 힘을 발휘한다면 마법처럼 해결점을 찾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3) '이것'의 중요성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대두되어 최근 더욱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30~40년 전에는 이것이 중요하다고 인식되지 않았을 겁니다. 이것이 점점 중요해지는 이유는 이제 예전처럼 ‘성장’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시대가 아니고, 그 동안 ‘정답’이라고 믿어 왔던 원칙들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4) '이것'을 잘할 수 있다면 그 어떤 능력보다도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이 시대가 진정 필요로 하는 역량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종류의 갈등 -이념 갈등·지역 갈등·세대 갈등·남녀 갈등- 을 풀어나갈 수 있는 열쇠입니다.
떠오르는 단어가 있으신가요?
짐작하셨겠지만 답은 소통입니다.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구구절절 서두가 길었습니다.
소통은 가깝게 보면 소중한 사람들과 행복하게 잘 지내기 위해서 꼭 필요하고, 나아가서는 직장생활과 사회생활을 할 때도 순탄하게 일이 잘 풀리게끔 해줍니다.
좋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요?
좋다 라는 단어는 너무 막연합니다.
그렇다면 ‘인간관계의 측면에서’ 볼 때 좋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요?
저는 좋은 사람은 ‘대화하기 즐거운 사람’ 이라 생각합니다.
대화하기 즐거운 사람이 되는 건 쉬운 게 아닙니다. 아무리 입담이 좋고 사람들을 재밌게 하는 재주가 있더라도 자기 얘기를 많이 한다면 상대방은 이내 지루해 할 것입니다. 반대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무조건 경청하고 수용하면 이 또한 일방적인 대화가 되어 균형이 맞지 않습니다.
대화에 참여하는 사람 모두가 즐거우려면 그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상대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은 우리 마음을 충만하게 하고, 그럴 때 대화가 즐겁습니다.
연결을 잘 하는 건 결국 소통을 얼마나 잘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소통을 잘할 수 있는 능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지만, 대부분 소통에 서툽니다.
이를 문화적 관점에서 살펴보겠습니다.
미국의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의사소통과 관련하여 고맥락/저맥락(high context/low context) 개념을 제시하였다. 저맥락 문화에서는 의사소통이 주로 표현된 내용(대화, 글)에 의해 이루어지고 표현 자체도 직설적인 반면, 고맥락 문화에서 의사소통은 표현된 내용으로부터 상대방의 진의를 유추하는 단계를 중요하게 여긴다.
저맥락 문화에서는 생각을 말로 그대로 표현하기 때문에 맥락 또는 상황이 덜 중요한 반면, 고맥락 문화에서는 말보다는 말을 하는 맥락 또는 상황을 중요하게 여겨 상대방의 뜻을 미루어 짐작해야 할 필요성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고맥락 문화권인 한국에서 의례적인 사양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간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상대방의 말이 어떻든간에 눈치로 맥락을 읽어 내고 그 사람의 뜻을 판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저맥락 의사소통은 개인주의 문화의 전형적인 의사소통 방법이다. 집합주의 문화에서 자명하다고 여겨지는 많은 것들을, 개인주의 문화에서는 명시적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미국의 사업계약서가 일본의 사업계약서보다 훨씬 더 긴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세계문화사전, 강준만>
심리학에서는 서구 사회를 저맥락 사회라고 한다. 저맥락 사회에서는 의사소통의 본질이 정확성에 있고, 메시지 자체의 내용이 명확하며 사실에 근거한다. 그래서 저맥락 사회에서는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직접적으로 확실하게 표현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런 사회에서는 드러나는 행동이나 명시적인 말, 계약서, 공식적인 시스템이 훨씬 중요하다.
한국에서는 괜찮다고 얘기해도 그건 진짜 괜찮은 게 아니다. 아니, 실제로 뭘 원하는지 알 수 없을 때도 있다. 행동의 바탕에 항상 어떤 의도가 깔려있는지 생각해봐야 하고, 보이는 행동과는 다른 진의가 있는지를 고민하고 읽어야 한다. 그래서 사양해도 몇 번이고 계속 권한다. 우리는 이걸 '배려'라 부르고,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 '눈치'라는 심리적 기제를 발달시켰다.
<어쩌다 한국인, 허태균>
처음 고맥락사회와 저맥락사회 개념을 접했을 때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문화적 특수성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러나 1인칭 시점에서는 보이지 않던 부분이 제3자의 눈으로 보면 보입니다. 우리끼리는 당연히 여겼던 것이 어떤 곳에서는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문화적 코드가 우리 마음 안에 얼마나 깊이 뿌리내리고 있고 삶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치는지 알면 놀라울 정도입니다.
문제나 갈등 상황을 해석할 때, 개인의 성격 차원에서 설명하려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행동을 이해하려면 그가 태어나 자란 문화권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단일 민족, 단일 언어로 구성된 사회는 그 안에서 형성된 문화적 색채가 타 문화권에 비해 짙습니다. 문화라고 하면 너무 광범위하니 여기서는 인간관계 문화에 국한해서 이야기합니다.
인간관계 문화란 곧 소통방식의 문화입니다.
우리 사회의 소통 방식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은 눈치입니다. 눈치가 쉴새 없이 작동하는 환경에서 자란 우리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살피고 그에 맞추어 나의 언행을 조절하는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능력은 소통에서 상당한 부분을 담당하고, 그 사실을 모두 알고 있습니다. ‘눈치껏 알아서 잘 하기로’ 합의된 마당에,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표현하는 사람은 ‘눈치 없다’는 평을 듣기 십상입니다.
눈치는 인간관계에서 커다란 장점으로 나타납니다. 삐그덕거릴라치면 나타나 기름칠을 해 줍니다.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아름다운 덕목인 눈치를 기본으로 갖춘 우리는 소통의 달인이 될 자질이 충분합니다.
하지만 가정에서, 직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소통이 잘 안되는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눈치있는 사람들로 가득한 사회에서 불통이 발생하는 건 소수의 눈치 없는 사람들 때문일까요?
갈등 상황이 있을 때 개인에게서 원인을 찾는 것보다는, 그 동안 당연시해왔던 우리의 소통 방식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보는 것이 조금 더 부드러운 접근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의 소통 방식에서 아쉬운 점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과도한 에너지 소모입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살피는 레이더를 바짝 세우고 지내기에 금방 피곤해집니다. 정신적 피로는 사람을 예민하고 날카롭게 만듭니다. 마음이 넉넉하고 편안해야 다른 사람을 받아들일 공간이 생기는데, 이것저것 신경쓰느라 지쳐서 기분 좋게 소통할 에너지가 부족해집니다.
타인의 마음만 살피고 내 마음은 돌보지 않는 생활이 오래 되어 생기는 병이 화병(火病)입니다. 미국 정신과협회에서는 화병(Hwabyung)이 한국인에게만 나타나는 특이한 현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오해가 생길 수 있다는 점입니다. 눈치가 빨라도 상대의 마음을 항상 맞힐 수는 없습니다. 말로 하면 간단히 끝날 것을, 미루어 짐작해 소통하려니 오해가 생깁니다.
결혼식을 예로 들면, 결혼식에 초대받은 A는 자신이 초대받은 것에 의아해합니다. 축의금이 부담스럽습니다. ‘우리가 그 정도 사이였어?’
반면 당연히 초대받을 줄 알았지만 초대받지 못한 B는 서운해합니다. ‘우리가 그 정도 사이였단 말이야..?’
‘그 정도 사이’를 각자 다르게 생각했기에 일어나는 해프닝입니다. 말을 아끼는 소통방식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상처를 줄 수도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소통은 어떤 것일까요?
정답이라고 할 순 없지만 나름의 방편을 제시해보려 합니다.
첫 번째는 비폭력대화 라는 대화법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마셜 로젠버그 박사가 쓴 책 <비폭력대화>를 참고하고, 여기서는 간단히 방법만 소개하겠습니다.
비폭력대화 대화법은 ‘내 생각과 감정을 건강한 방식으로 전달하는 기술’이라고 이해해도 됩니다. 비폭력대화 모델은 관찰-느낌-욕구-부탁의 네 단계로 구성됩니다.
관찰 - 사실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여 이야기합니다. 해석이나 판단을 섞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항상’, ‘맨날’ 등의 단어는 관찰이 아니라 판단에 해당합니다.
“오늘 아침에 너가 먹은 과자 봉지를 책상 위에 그대로 두고 나갔더구나.”
느낌 - 관찰한 사실로부터 내가 느낀 감정을 이야기합니다. 이때 ‘느낌을 가장한 생각’을 말하지 않도록 주의합니다. ‘~같이 느껴져’, ‘~처럼 느껴져’ 등의 말은 느낌이 아니고 느낌을 가장한 생각에 해당합니다.
“너가 과자 봉지를 그대로 두고 나간 것을 봤을 때 엄마는 속상하고 섭섭해.”
욕구 - 내가 충족하길 원했던 욕구 또는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이야기합니다. 그것을 나의 느낌과 연결해서 이야기합니다.
“엄마는 너가 깨끗한 방에서 생활하길 바라는 마음이 있어서, 책상 위에 그대로 둔 과자 봉지를 보면 속상하단다.”
부탁 - 구체적인 언어로 행동을 부탁합니다. 이 때, 상대방의 욕구를 확인하는 질문을 가볍게 얹어도 좋습니다.
“너도 깨끗한 방에서 생활하는게 중요하니? 그럼 방에서 나온 쓰레기는 휴지통에 버려줄 수 있을까?”
네 단계를 연결해서 말하면 이렇게 됩니다.
“오늘 아침에 너가 과자 봉지를 책상 위에 그대로 두었더구나. 엄마는 너가 깨끗한 방에서 지냈으면 좋겠어. 그래서 책상 위에 과자 봉지를 보면 속상해. 방에서 과자를 먹으면 봉지를 휴지통에 버려 줄래?”
위의 예시처럼 대화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체득하기까지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비폭력대화의 장점은 네 단계를 완벽히 이행하지 않아도, '비폭력대화 정신'을 가지는 것만으로 관계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비폭력대화 정신을 마음에 새긴다면 말하는 방식이 많이 바뀔 것입니다.
저는 부정적인 감정을 더 건강한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기대로 비폭력대화 수업을 들었는데, 수업에서 특히 제게 도움이 많이 되었던 관점 몇 가지를 공유합니다. 모두 비폭력대화 정신을 담고 있는 문장들입니다.
- 대화의 목적은 질적인 연결을 하기 위해서다. 문제를 100% 해결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상대를 이해하는 게 목적이다.
- 공격하고 상처를 주는 말들을 잘 들여다보면, 실은 “~를 해주세요.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요” 라는 부탁의 말이다.
- 느낌(감정)은 신호다. 무언가가 충족되지 않았을 때의 반응이다. 갈등이 생겼을 때, ‘어떤 욕구가 충족되지 않았을까’에 초점을 맞추면 대안이 보이기 시작한다.
- 분노, 짜증 같은 강렬한 느낌이 올라왔을 때, 느낌에 파묻히기 전에 내 욕구를 들여다보자. 그리고 알아차리자. '아~ 나는 이러이러한 걸 중요하게 여겨서 지금 이런 감정이 드는 거구나.'
- 우리가 하려는 공감은 “입장 바꿔서 생각해 봐”가 아니라 “너는 그렇구나” 다.
관심 있는 분들은 비폭력대화 책을 읽어 보시거나 수업에 참여해 보시길 권합니다. 테크닉을 습득한다기보다는 마음의 평화를 찾는 노력의 일환으로 생각한다면, 내 안에서 뭔가 정돈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소통의 질을 높이는 또 하나의 방법은 ‘시덥잖은 수다’입니다.
굳이 '시덥잖은'을 붙인 이유는 가벼운 수다라 할지라도 결코 가볍게만 볼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관계에 생명력이라는 게 있다면, 생명력이 충만한지 시들한지는 수다를 얼마나 많이 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함께 있을때 대화가 줄어들고 각자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늘어나고, 용건만 이야기하는 사이는 활기가 없습니다.
‘그만큼 편한 사이라는 것 아닐까?’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편한 것과 관계의 생명력은 별개입니다. 단지 편하기만 한 관계는 편안한 느낌은 주지만, 즐거움과 행복은 수다에서 나옵니다. 수다는 관계에 계속 물을 주는 것과 같습니다.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때, 친구에게 걸려온 가벼운 전화 한 통에 기분이 한결 나아진 경험이 있습니다. 별로 대단한 얘기도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지내냐. 안 만난지 오래 됐는데 한 번 봐야 하지 않겠냐’ 는 시시콜콜한 대화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몇 분 정도의 짧은 통화였지만 마음이 가벼워졌고, 이 때 수다의 힘을 실감했습니다.
가벼운 수다는 사람도 살립니다.
미국 컬럼비아 의대 마리앤 레가토 교수는 저서 <왜 남자가 먼저 죽는가>에서, 우울증이 자살로 이어지는 비율이 남자가 훨씬 더 높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그 원인으로 ‘자신의 고민을 남과 나누지 않는 성향’을 꼽았습니다.
여성들은 수다로 자신의 이야기를 남과 나누며 푸는 반면, 남성들은 속으로 삭이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병이 났을 때 누군가 내 얘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고 반응해 주면 치유가 됩니다.
‘외로움이 흡연·음주보다 위험하다’는 주장 아래 2018년 세계 최초로 외로움부 장관을 임명한 영국은 국가 차원에서 외로움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을 타고 영국의 프랜차이즈 카페 코스타는 영국 전역 350여개 매장에 대화와 수다(chatter and natter)라는 좌석을 마련했는데, 이 좌석은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도 누구나 앉아서 수다를 떨 수 있는 공간입니다.
이 아이디어는 갓난아이를 키우는 엄마인 알렉산드라 호스킨(Alexandra Hoskyn)씨로부터 출발했는데, 그녀는 "꼭 우정을 쌓으라는 말이 아니다"라면서 "외로울 때 다른 사람과의 짧은 소통이 하루를 밝힐 수 있다"고 설명했다고 합니다.
영국 뿐 아니라 아일랜드, 독일 등 유럽의 여러 나라들도 외로움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책적인 노력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담아두는 경향이 강한 우리의 소통 방식에 수다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히 다가옵니다.
다큐멘터리로도 제작된 도서 <명견만리 : 공존의 시대>의 '병리' 편에는 다음 내용이 나옵니다.
경쟁적인 환경에서 높은 스트레스를 견디며 살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신의 정신적인 고통을 밖으로 드러내 이야기하는 것에 서툴다. 고통을 잘 감내할 줄 알아야 성숙한 인격이라고 인정해주는 문화가 사회적 편견으로 자리 잡고 있어서 우울하고 답답해도 밖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지금까지 다양한 형태로 드러나는 마음의 고통을 개인이 스스로 극복해야 할 문제로만 여겨왔다.
대개 나이가 들수록 불필요한 수다는 덜 하고 필요한 일 위주로 대화를 하게 됩니다. 먹고사니즘에 충실한 삶은 소통이 끼어들 틈을 주지 않습니다. 일없이 만나던 친구들도 각자 삶이 바빠지면서 얼굴 보는 횟수가 줄어 갑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소통의 욕구는 먹고 자고 싸는 것만큼 기본적으로 충족되어야 할 욕구입니다. 나이에 상관없이 똑같습니다.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없다'는 옛말이 있는데, 쓸 말만 취급하고 쓰지 않는 말은 걸러내는 세태는 결국 소통의 가뭄을 불러옵니다.
우리를 숨차게 만드는 빡빡한 일상 속에서, 수다로 하는 가벼운 소통은 숨통을 트여 줄 것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건강한 관계를 맺기 위해 소통이 중요한 이유와 소통을 가로막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소통을 잘 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지 살펴보았습니다.
우리가 관계에서 바라는 것은 연결입니다.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은 우리가 어려움을 견디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줍니다.
존재를 바라보는 눈과 공감으로 활짝 열린 귀는 연결의 토대를 마련하고, 건강한 소통은 연결을 완성합니다.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우리에게는 소통잠재력이 충분합니다. 능력을 발휘하느냐 마느냐는 나의 선택입니다.
내가 먼저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는 더욱 풍성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