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나는 오늘도 조금 더 용감해진다

by 이지미

2021년 봄의 어느 날


서른다섯 살이었던 나는 세 살 아이처럼 엄마를 붙잡고 울었다.

마치 모든 게 엄마 탓이라는 듯이

내가 이 모양인 것은 엄마가 잘못 키웠기 때문이라는 듯이.



그때의 나는 위태로웠다.

숨을 쉴 수 없었다.

누군가 내 가슴 위로 절대 치울 수 없는 커다란 바위를 올려둔 것 같았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숨을 한꺼번에 몰아 쉬었고

손으로 가슴 언저리를 쓸어내리기를 반복했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엄마 말을 거스른 적 없었고, 선생님 말에 순종하며, 세상의 요구에 착실히 응했다.

그곳에 도착하면 좋을 거라고, 그곳이 정답이라고 세상은 나에게 끊임없이 속살거렸다.


서른다섯 해 동안 고분고분하게 그 소리를 따라 걸어왔다.


착한 아이였고 모범생이었다.

스물넷에 교사, 스물아홉에 결혼, 서른에 출산.


세상이 정한 표준에서 단 한 번도 벗어난 적 없는 삶이었다.





세상의 질서에 순종하는 것은 매일 조금씩 나를 지워가는 일이었다.


규격에 맞는 인간이 되기 위해 나를 찌그러트리고 깎아냈다.

공들여 만든 무색무취의 껍데기만 그럴 듯 해 보이는 곳에 놓여있었다.

껍데기만 있는 삶은 매 순간 위태롭다.


내 생각은 무엇인지 보다 주류 의견은 어떤지 궁금했고

내 감정은 어떤지 보다 지금 이런 감정을 가져도 되는지 알고 싶었다.

이런 삶은 내 것이 아니었다.


서른다섯 해 동안 아무 소리 않고 따라오던 내 몸은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다고 세차게 신호를 보내왔다.

견딜 수 없는 답답함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답답함에 숨이 막혀 질식할 것 같았다.






숨을 쉬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 안에 가득 찬 답답함을 어딘가로 쏟아내야만 했다.

제멋대로 날뛰는 감정을 글로 적고, 적고, 또 적었다.


모난 감정이었다.

원망, 분노, 자책, 자기 연민.


글은 편지가 되어 엄마를 향했고, 나는 편지 안에서 엄마를 끝없이 원망했다.

누군가를 탓하고 싶은 마음이 애꿎은 엄마를 찾아가 문을 두드린 것이었다.

엄마는 글 속에서 쉬지 않고 주먹질을 해대는 나의 샌드백이 되었다.

부치지 않을 편지에서 내 마음은 경계를 모른 채 흘러넘쳤다.






편지와 함께 살던 나는

어느 출근길에 그만

편지의 말들을 엄마에게 쏟아내고 말았다.

엄마는 묵묵히 나의 이야기를 들었다.

버둥거리며 몸부림치는 딸의 목소리를 가만히 끌어안았다.


그때는 미안했다고

엄마도 모르는 게 많았다고

천천히 엄마의 이야기를 오래도록 들려주었다.




사실은 다 알고 있었다.

엄마 탓이 아니라는 것. 엄마는 엄마의 모습으로 가장 많이 나를 사랑해왔다는 것.




쨍한 햇살이 내리쬐는 보통의 출근길

아무런 설명도 없이 아무렇게나 쏟아낸 진흙투성이 마음을 동요 없이 따뜻하게 들어준 엄마.

착하지 않아도, 앞뒤가 하나도 맞지 않아도, 제멋대로 굴어도

나를 끌어안아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을 생생히 느낀다는 것.

그 하루의 경험은 강력했다.


캄캄한 동굴에 한 줄기 빛이 들어온 날이었다.

그날 밤 엄마에게 다시 편지를 썼다.

그 편지의 끝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엄마. 한 번도 빛이 들지 않아 천년의 어둠이 쌓인 동굴에 빛이 드는 건 한순간이라고 하더라. 천년의 어둠을 걷어내는데 필요한 건 천년의 시간이 아니라는 게, 한순간이라는 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몰라.


그날부터였다.

순종과 해방. 그 자장 안에서의 작은 움직임이 시작된 것은.

세상의 질서에 순종하지 않고 내 모습대로 살아가 보겠노라고 타박타박 길을 나섰다.

내게는 울퉁불퉁한 내 모습도 사랑해주는 엄마가 있고

해방을 향한 걸음을 함께 걸어가는 이들의 목소리가 담긴 책이 있다.


책의 조각을 붙잡고 나의 이야기를 다시 쓰려한다.


오래 기다렸을 진짜 나를 만나러 가는 길.

나는 오늘도 조금 더 용감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