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는 지금 광안리 바닷가 앞 카페에 앉아있어. 여긴 언제 와도 좋네. 정말로 여름이 가을에게 한 자락 자리를 양보했는지 한낮에도 선선한 바람이 불어. 바닷바람 맞고 나니 없던 여유도 마음에 몽글몽글 솟아나고 무표정하던 얼굴도 조금은 풀어지는 것 같아. 왠지 오늘은 엄마에게 많은 얘기를 털어놓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야.
긴 추석 연휴가 끝나고 다시 일상의 자리로 돌아와서 엄마에게 편지를 쓰고 있어. 복작복작한 며칠을 보내다 이렇게 혼자되니 슬며시 미소가 나오는 걸 보면 나는 어쩔 수 없는 내향인인가 봐.
복 받은 며느리인 나는 올해도 전의 전쟁인 추석에서 홀연히 벗어나 시어른들을 모시고 남해로 여행을 다녀왔어. 올해는 지난 몇 년간의 명절 여행과는 다르게 정말로 편안하고 여유롭더라. 내가 많이 변하긴 했나 봐.
결혼 후 명절 때마다 통영으로, 제주도로, 거제도로, 시어른들과 함께 여행을 다녔잖아. 전 부치러 가는 친구들의 한 맺힌 ‘부럽다...’ 소리를 뒤로하고 여행을 떠나는 발걸음은 생각만큼 가볍지는 않았어. 명절마다 가는 여행 속에서 나는 ‘복 받은 며느리’였기 때문이야. 그냥 보통의 나로 존재할 수가 없었어.
난 명절이면 기름 냄새를 몸에 한가득 묻히고 부엌에서 나올 줄 모르던 엄마를 지켜보며 컸잖아. 임신해서 배가 산더미처럼 부른 와중에도 전을 구웠다는 친구 얘기를 들으며 화르르 폭발하기도 했고.
그래서 나는 그런 기름 냄새에서 벗어난 명절을 보낼 수 있는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했어. 남들 다 하는 노동에서 면제된 것이, 대한민국 여자들의 절규 같은 술렁임에서 한발 빗겨 난 것이 말이야.
그런데 그 행운은 이상했어. 명절마다 며느리들을 착취하는 이상한 문화가 사라져야 하는 것은 당연한데, 당연한 행운을 누리고 있자니 마음이 부대껴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어.
‘복 받은 며느리로 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머리를 숙이고 감사드려야 할 것 같은 기분. 복 받은 며느리에게 마땅히 기대하는 일들을 해나갔어. 함께 여행을 가고, 밤늦도록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누고. 엄마에게도 끼지 않는 팔짱을 끼며 살갑게 굴고, 분위기가 무거워지면 눈치를 살펴 필요한 것을 채워드리고, 명절이 아닌 주말에도 자주 만나 손주를 보여드리고.
대단한 결심이나 고민 없이 본능적으로 착한 며느리를 자처했어. 마치 전 부치기에 상응하는 노력을 해야만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듯이 말이야. 시어른들은 다정하고 사려 깊은 분들이었지만 미션을 수행하 듯 맺은 관계는 싱그러울 수가 없었어.
조남주 작가의 <그녀 이름은>이라는 책은 여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단편 소설집이야. 성추행을 당해도 부당한 대접을 받는 여자, 결혼하자마자 거대한 가부장제 속에 휘말려 허덕이는 여자, 할머니가 되도록 한 번도 자기 인생을 살아보지 못한 여자.
모두 각자에게 어울리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라고 강요받았지. 고분고분한 여자의 역할이었어. 소설집에 등장하는 이야기 중 <진명 아빠에게>라는 이야기는 너무 마음이 아파서 읽다가 몇 번이나 멈추었어. 할머니는 사별한 남편에게 이렇게 말해.
언젠가 딸이 회식했다고 술을 잔뜩 마시고 들어와서는 엄마 미안해, 하면서 펑펑 우는데 마음이 참 안 좋았어. 그게 왜 걔가 미안할 일이야. 걔는 내가 가르친 대로 열심히 산 것 밖에 없는데. 근데 진명 아빠, 나 사실 좀 억울하고 답답하고 힘들고 그래. 울 아버지 딸, 당신 아내, 애들 엄마, 그리고 다시 수빈이 할머니가 됐어. 내 인생은 어디에 있을까.
<그녀 이름은 / 진명 아빠에게> 조남주
딸로, 아내로, 엄마로, 할머니로 사는 동안 사라져 버린 인생이었어. 할머니는 내내 누군가의 무엇으로만 존재했던 거야. 고유한 나로 존재해야만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놓쳐버린 할머니의 인생이 너무 아파서 한참을 울었어. 배운 대로 착실히 살았지만 겨우 착한 사람일 뿐 자기 인생은 없다는 사실에 가슴이 미어졌어. 그 이야기들은 내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엄마의 이야기였고, 친구들의 이야기이기도 했으니까.
엄마에게 여러 번 선언했던 것처럼 나는 이제 더 이상 그렇게 살지 않기로 했잖아. 내 안에는 수많은 책의 이야기들이 차곡차곡 쌓여있었고, 세상이 바라는 대로 행동하지 않아도 별 일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는 알아. 덕분에 엄마 역할, 며느리 역할, 아내 역할 등등 수많은 역할에 묻은 먼지를 훌훌 털어내고 진짜 내 모습으로 관계 맺기로 마음먹을 수 있었던 거야.
애쓰지 않고 내 모습 그대로 시어른들을 대해 보기로 했어. 내 안의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좋은 나’를 믿고, 내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해보기로 했지. 착한 며느리에게 주어진 수많은 '~해야 한다.'들을 내려놓고 말이야.
그래서 이번 추석에는 가고 싶었던 남해 숙소를 예약했어. 전에 없던 기대가 차오르더라.
그리고 추석날 남해 여행에서 신기한 일이 일어났어. 우리 시어머니의 얘기가 너무 재미있는 거야. ‘우리의 대화가 원래 이렇게 즐거웠나?’ 생각했어. 어머니는 요즘 욕을 배우는 유튜브를 보고 계신대. 너무 웃기지? 그 얘기를 듣자마자 그 모습이 너무 내 모습 같은 거야. 착하게 사느라 화 한번 시원하게 못 내보고 욕 한번 내지르지 못했던 여자. 와하하 웃으며 욕은 꼭 배워야 하는 거라고 어머니에게 강력 지지를 보냈어. 쓸데없는 거 본다며 핀잔 주는 아버님을 꼭 이겨내시라고, 응원도 했지.
사는 이야기, 하준이 키우는 이야기, 요즘 하는 운동 이야기들 주고받으며 바다를 낀 산책길을 걸었어. 어쩌면 어머니랑은 남편을 통하지 않더라도 친한 친구처럼 지낼 수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더라. 좋은 며느리가 되겠다는 마음만 버렸을 뿐인데, 역할에서 내려와 고유한 나로 어머니와 관계를 맺으니 마음이 스르르 풀어졌어.
하늘은 분홍색인 듯 보라색인 듯 물들고, 시원한 바닷바람이 옷자락을 흔들던 그날, 하준이는 귀뚜라미를 잡느라 폴짝댔고, 나는 조금의 거짓도 없는 미소를 머금고 내 눈앞에 펼쳐진 행복을 응시했어. 나로 사는 법을 아주 조금은 터득한 날이야.
그리고 호텔로 돌아가 여느 여행과는 다르게 침대에 몸을 파고들어 잠들어버렸지. 내 마음 가는 대로 말이야. 함께 와인 한잔 하기를 기다리셨을지도 모르는 시부모님들과는 다음이 또 있으니까.
엄마!
나는 누군가의 무엇으로 살지 않고 나로 살 거야. 엄마도 그랬으면 좋겠어.
추석날 상다리 부러질 듯 상을 차려놓고는 앉지도 못하고 분주히 부엌을 왔다 갔다 하는 장모님 역할은 이제 그만. 속상해. 엄마의 종종걸음이 묻은 음식들을 먹는 것보다 함께 숟가락을 드는 게 난 더 좋은데 말이야.
늘 자신 없이 ‘별로 맛이 없는데 우짜노.’ 중얼거리지만 끝내주는 음식 솜씨를 가진 우리 엄마. 겨우 같이 식탁에 둘러앉으면 자꾸 부족한 게 보이는지 다시 벌떡 일어나서 김치를 두 그릇에 나누어 담아 사위 가까운 쪽으로 스윽 밀어 넣고는 하는 우리 엄마.
희생하는 엄마 역할에서, 인자하고 사려 깊은 장모 역할에서, 살림 잘 사는 아내 역할에서 훌쩍 뛰어 내려왔으면 좋겠어. 내가 그런 역할들로부터 살짝 내려와 봤더니 너무 좋아. 엄마도 이 좋음을 맛볼 수 있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