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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워킹맘 손엠마 Jul 25. 2019

친정엄마 유럽여행 준비기 (feat. 젊어서 놀자)

 엄마의 환갑 여행에 대하여 ㅡ

작년이 엄마의 환갑이었다. 여행을 보내드리고 싶었는데 둘째 임신과 맞물려 간단히 식사만 하고 여행은 내년을 기약했다. 그리고 올해 봄, 오빠와 엄마는 유럽여행을 떠났다. 그 여정에 대해 남겨보고자 한다. (근데 이런 글은 여행을 다녀온 오빠가 써야하는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보고 있나, 오빠 사람?)




유럽여행의 준비과정은 길고 길었다. 


01. 여행 코스 선택 ( 여유롭게 조금 vs 압축적으로 많이 )


먼저 올케, 오빠가 모인 단톡방에서 어떤 상품, 어떤 나라가 좋을지 얘기하고 어떤 스케줄로 가야 엄마의 컨디션에 무리가 없을지 토론에 토론을 이어갔다. 엄마는 재작년 일본 여행이 첫 해외 여행이셨고, 유럽은 말그대로 '꿈꾸던' 여행지였기 때문에 최대한 엄마가 가고 싶어하시는 여행지로 알아보며 최적의 선택지를 고르고, 또 골랐다. 


유럽은 비행시간이 길고, 자주 갈 수 없는 곳이기에 최대한 많은 곳을 압축적으로 보자는 의견과 도시 몇 개를 둘러보지 않더라도 천천히 느림의 미학으로 '즐길 수 있는' 패키지를 고르자는 의견이 맞섰다. 결국 '다다익선'의 패키지인 여러 나라를 핵심 코스만 보는 것으로 골랐지만, 조금이라도 젊은 나이에 많이 보여드리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둘러보는 것은 나이가 조금 더 드셔서 템포를 늦춰야 할 때 가셔도 되지 않을까



02. 준비물 챙기기 (라고 쓰고 옷쇼핑이라고 읽는다)


'입을 옷이 없다'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있는 크나큰 시름인 것 같다. 역시나 엄마는 옷걱정을 시작하셨고, 유럽여행을 위한 옷쇼핑만 세번을 나갔다. 엄마는 '백화점은 백바퀴를 돌아야 백화점'이라는 쇼핑신념을 가지신 분인데 반해, 나는 평소 좋아하는 브랜드만 집중공략하는 스타일이라 맞춰 드리기가 조금 힘들었다. 게다가 7개월 둘째까지 유모자를 끌고 대동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화점 3번이나 끌려간 나를 칭찬한다. 잘했어 잘했어!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백화점만 백바퀴 돈 것이 아니라, 그 밑에 있던 지하상가도 두 번 훑으셨다는 점.! 역시 나를 칭찬한다. 잘 이겨냈어!!


피자와 스파게티에도 김치를 드시는 식성이셔서 사실 음식이 걱정이 많이 되었다. 해외에 여러 번 나가보니, 아침으로 컵라면 만한 게 없어서 나의 권유로 컵라면을 여러 개 사서 가셨지만, 호텔 조식으로 대부분 해결하셔서 컵라면은 그대로 들고 돌아오셨다. 결국 내가 다 먹었다. 유럽 공기를 쐬고 온 라면이라 그런지 더 맛있더라


03. 육아 스케쥴 계획 (제일 중요)


엄마가 여행가시는동안 비는 육아 스케줄을 계획해야했다. 시댁 찬스, 연차 찬스, 남편 찬스, 있는 찬스, 없는 찬스 다 몰아서 어떻게든 10일을 만들었다. 독박육아 10일은 나에게 너무 가혹했으니까 이건 순전히 나와 가족의 평화를 위한 일이었다. 


누구는 독박육아하면 되지 않냐 하지만, 남편이 지방에 있고, 주말에만 올라오는 상황이라 그러려면 24시간 2명의 아이를 봐야했기에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기에 친정엄마는 여행을 보내드리려고 할 때부터 '그러면 애는 누가 보니?'라고 걱정하셨던 거였고, 난 '어떻게든 여기는 알아서 굴러가. 여행이나 잘 다녀와.'라고 응수했던 터였다. 결국 시댁에 일주일 정도 있다 오고, 며칠은 독박을 했지만 지금 시점에 힘든 기억이 없는 걸 보니 지낼만 했었던 것 같다. 기억의 왜곡이란.... 




그렇게 긴 준비를 마치고 여행 가기 전 날이 되었다. 하지만 엄마는 "다 귀찮고 가기도 싫다."라고 하셨다. 한 두푼 하는 돈도 아닌데 열심히 모아 보내드렸더니 이게 왠 김빠지는 소리인지?


그리고 여행간지 5일째 되던날, 어떠시냐고 문자를 했다. 그 날 엄마의 문자는 정확히 이렇다. 

"더 나이들기 전에 부지런히 모아서 부지런히 쏴돌아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이번 여행에~~"

여행을 보내드릴때 엄마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돌아오셨으면 했는데 정확히 이런 멘트를 날리시니 기쁘고 감사했다. 사실 엄마에게 아이를 맡기면서 내가 해드릴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매월 일정 정도의 금액을 드리는 것과 잠깐의 휴식을 맛보게 해드리는 것들 뿐인데, 이번에 엄마가 '휴식의 기쁨'을 드디어 느끼신 것 같아서 보내드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내년에 엄마가 또 보내달라 그럼 돈은 둘째치고 백화점 또 3번 가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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