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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워킹맘 손엠마 Mar 23. 2020

쌩얼을 적극 권장하는 바입니다만,

대기업 10년 차 직장인의 쌩얼 설득 논리

1년에 한 번, 다래끼가 크게 나곤 하는데 올해도 역시 갑자기 올라온 다래끼에 눈이 부어 병원에 갔다. 항생제를 먹는 나를 보며 엄마가 물어보셨다.


|엄| "다래끼가 왜 그렇게 잘 나는 거야?"

|나|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피곤한 것도 있긴 하지만, 하도 쌩얼로 다녀서 가끔 세수하는 걸 잊어버리고 자서 그럴까?"

|엄| "너 쌩얼로 회사 다녀?? 직장인이 화장을 안 하고 다니는 게 정상이야?"


예전 같았으면 그냥 지나갔겠지만, 묵혀둔 말은 이내 다른 곳, 특히 이 집에서 가장 권력이 작은 아이들에게로 돌아간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용기 내어 말해본다.


|나| "엄마, 비정상이라는 표현은 조금 불편하네"

|엄| "직장인이 화장을 안 하고 다니는 건 이상하지"

|나| "엄마, 이상하다는 표현도 조금 불편하네"


엄마의 마음을 표현할 더 적합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으셨는지 이내 물을 마시곤 방으로 들어가신다.



대기업 10년 차에 접어들며, 문득 '쌩얼'에 대한 인식이 극과 극으로 나뉘고 있음을 실감한다. 20대 싱싱하고 풋풋했던 시절의 나는 온갖 해외 명품 화장품 브랜드들의 신상품을 모조리 꿰고 이 핑크색과 저 핑크색은 어떻게 오묘하게 다른지를 설명하며 구매해야만 하는 이유를 찾는데 많은 시간을 소비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렇듯 '그냥 다 빨간색 아니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드라마틱한 나의 쌩얼 역사를 공개해본다.


# '타인을 위한' 쌩얼의 시작점 - 첫 임신


첫째를 임신하며 아이에게 좋지 않을 것 같은 각종 화학품과의 접촉을 최대한으로 줄였었다. 가뜩이나 아토피가 흔해진 요즘에 미리 방지할 수 있다면 처음부터 그런 환경에 노출되지 않게 하는 것이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때만 해도 쌩얼은 '아이'를 위한 것이었지, 나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약속이 있거나 중요한 모임이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화장을 했고, 가끔 여유가 있거나 기분이 울적한 날에도 화장을 하며 나 자신을 포장하고는 했었다.


# '누구를 위한 행위인가' 쌩얼의 반기 구간 - 복직


둘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임신했기 때문에 쌩얼에 대해 용서(?) 받을 수 있을 거야'라며 스스로 쌩얼을 하고 다니는 것에 대한 당위성을 찾았다. 사실 나의 쌩얼에 대해 '도대체 왜, 무슨 이유로, 어째서 쌩얼로 회사를 출근하시는 겁니까?'라고 물었던 사람은 하나도 없었는데 말이다.


 물론 첫째 아이 때와 달리, 무조건적으로 100% 아이만을 위해 화학품에 노출되지 않으려고 화장을 안 한 것은 아니었다. 임신과 육아 휴직기간을 합쳐 약 2년간을 화장을 끊고 나니 화장하는 것이 조금 번거로웠고, 이 행위가 과연 '나'를 위한 것인지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한 때는 드라마틱하게 변신하는 내 얼굴을 보며 '자존감'을 올리는 화장품에 열광하고, 그 기세를 몰아 화장품 회사에 취직하기 위해 이력서도 딱 1곳만 준비했던 나였다.


두 아이 임신하며 끊었던 화장을 회사 복직과 동시에 '화장' 복직도 시작했고, 그제야 화장의 '복직'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첫째, 화장을 하는 것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
둘째, 화장과 업무 능력의 상관관계가 있는가?
셋째, 화장을 함으로써 얻게 되는 개인적인 이득이 무엇인가?


결론적으로 3가지 모두를 고려했을 때, 내가 화장을 함으로써 얻게 되는 것은 크지 않았다. 커리어우먼으로서의 자신감은 업무 능력으로 키우면 될 일이지, 화장으로 커버가 되는 것은 아니었고, 개인적인 이득은 오히려 나의 소중한 시간과 돈을 소비하게 되는 것이기에 마이너스였다. 깨끗한 결론이 도출되었다. 쌩얼로 가자!



# 타인으로부터, 나로부터 자유로워지기 - 본격 쌩얼 유지기


둘째를 낳고 복직한 지, 3개월 후부터 본격적으로 쌩얼로 다니기 시작했다. 이 지점에서 굳이 밝혀두자면 나의 쌩얼은 'BB크림'조차 바르지 않은 스킨과 로션만 바르는 상태를 의미한다. 평소엔 캐주얼 복장으로 회사를 출근하지만 면접 같은 대외적인 이벤트가 있는 날을 제외하고 가끔 기분을 내기 위해 치마를 입을 때에도 똑같이 쌩얼은 유지했다. 처음엔 그 모습이 굉장히 기이(?)하고 언발란스했지만, 5개월을 유지하고 있는 요즘의 나는 굉장히 행복하다. 쌩얼이 주는 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첫째,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둘째, 화장품을 사지 않기 때문에 돈도 절약할 수 있다.

셋째, 타인의 시선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게 된다.

넷째, 나 자신의 내면의 깊이를 들여다보게 된다.  

다섯째, 타인에 대해서도 외관이 아닌 내공으로 평가하게 된다.


쌩얼이 주는 가장 큰 이점은 의외로 '절약' 키워드와 잘 맞았다. 두 아이 엄마인지라 시간이 곧 돈인 나에게 화장을 하지 않음으로써 최소 30분의 시간이 확보되었고, 이 시간을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생산적인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각종 화장품을 구매하기 위해 정보를 검색하고, 비교하고, 여러 마케팅 업체에 '호갱'임을 인증하며 낭비했던 시간들도 물론 없어졌다. 화장을 하지 않으니 옷차림에도 전보다 덜 신경 쓰게 되고, 외관은 그야말로 '사회인'임을 인증할 수 있을 정도로만 다니니 여러모로 많은 부분을 내려놓게 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아줌마'이기 때문에 쌩얼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의 쌩얼은 진정한 나 자신을 위한 삶을 살고,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독립된 삶을 살 수 있는 시작점이었다.      
이제, 당신의 쌩얼 레벨은 몇인가? 생각해볼 타이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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