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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워킹맘 손엠마 Jul 05. 2019

마늘까기에도 '레버리지'가 적용될 수 있는가

친정엄마의 노동력에 대하여 ㅡ 

마늘 장아찌를 담그는 시기가 조금 지났지만 마늘 장아찌를 너무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친정엄마가 재래시장에서 마늘을 한 접 반정도 사셨다. 그간 쭉 해마다 마늘 장아찌를 담그는 시기가 되면 숱하게 마늘을 까왔던 날들을 떠올리며 속으로 '제발 조금만 사.....'를 외쳤지만, 엄마는 이미 마음을 먹으셨다. 


한 접 반, 유모차에 가득 담긴 마늘을 보며 '이걸 다 언제 까....' 싶었는데 옆을 보니 깐 마늘을 팔고 계신 할머니가 보이는게 아닌가. 이 때다 싶어 여쭤봤다. 


"할머님, 마늘 까는거 얼마예요?"

"하루 종일 까야되긴 허는디, 한 접에 만 오천원이여~ 깎을 생각은 말여. 이거 내가 왠종일 앉아서 혀야 되는디 너무 하는 거잖여."


오호, 이거다. 이성적으로 계산을 해 보자. 우리의 아마추어 실력으로 마늘 한 접을 까려면 최소, 정말 최소 5시간은 족히 걸리는데, 만 오천원으로 5시간을 살 수 있다면 핵이득 아닌가? 무려 시간당 3천원만 드리면 된다. 나이쓰. 이걸로 올해 마늘 장아찌는 끝내자 싶어 친정 엄마에게 잽싸게 말을 걸었다. 


"엄마, 할머니가 마늘 까주시는 비용 내가 낼테니까 깐 마늘로 사자."

"아유, 됐어. 그냥 들고 가. 쉬엄쉬엄 앉아서 까면 되."

"아니, 이 많은 걸 언제 다 까고 있어. 내가 돈 준다니까"

"됐어. 이거 가지고 갈께요."


나는 만오천원이라는 비용을 마늘값과 별개로 마늘을 까는데 사용되는 시간 대비 노동력의 값어치로 생각했지만, 엄마에게는 까기 전 마늘값과 마늘을 까기 위해 드는 돈이 합쳐져서 마늘값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면 마늘이 너무 비싸다는 거였다. 이를테면 이렇다. 



[나의 입장] 생마늘값 = 마늘값 / 마늘까는 값은 마늘값과는 별개로 그 시간을 사는데 드는 비용

[엄마의 입장] 생마늘값 + 마늘을 까는 값 = 마늘값


엄마의 계산식이 이렇다보니, 그럼 당연히 생마늘값만 내는게 이득이라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친정엄마는 '쉬엄쉬엄' 자신의 노동력과 체력과 시간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다소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60세가 넘은 엄마의 체력과 신체는 점점 낡아지고 있는데 말이다. 만 오천원을 쓰는 것은 아깝고, 마늘을 까기 위해 사용해야 하는 5시간과 끊어질 것 같은 허리와 아픈 손가락은 괜찮단 말인가?




문제는 엄마의 '쉬엄쉬엄' 마늘을 까는 시간이 나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엄마가 마늘을 까시는 동안, 두 아이들을 온전히 내가 봐야 하고, 이는 둘째가 폭풍 응가를 한다거나 하는 응급 상황에도 엄마의 도움을 받기는 어렵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즘처럼 글을 쓴답시고 아침에 부리나케 나가는 날이면 아이를 보면서 엄마가 마늘을 까야하기 때문에 그 영향이 아이에게도 갈 수 있을 것이다.  


엄마가 마늘을 산처럼 쌓아놓고 까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여기에 나의 노동력까지 투입된다면, 우리의 '5시간'을 만오천원으로 사는 것이 당연히, 정말 당.연.히. 타당한 것 아닌가?


롭 무어의 '레버리지'에는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있는 일은 위임하라'는 내용이 있다. 내 시간을 비용으로 환산했을 때, 다른 사람을 시켜서 하는 비용이 내가 직접 하는 비용보다 싸다면, 그 일은 다른 사람에게 시키는 것이 효율적이며, 그 시간에 당신은 더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일을 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내 심정을 대변하는 말인가 ㅡ 


하지만 친정엄마에게 "엄마, 잘 들어봐. 레버리지 효과라는게 있는데 말이야....."라고 운을 뗐다가는 "시끄러" 핀잔을 들을 터이니, 그냥 조용히 있어야겠다고 마음 먹고 브런치에 올려야겠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집안의 평화를 지키는 것이기 때문에. 엄마에게 과연 노동력의 레버리지 효과가 먹힐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주말 내내 아이들과 남편과 시간을 보내는동안 친정엄마는 혼자 마늘을 다 까셨다. 손가락이 너무 맵다며 손을 호호 불어가면서. 엄마. 엄마의 시간과 노동력과 신체도 소중해요. 

그니까 내년에는 깐 마늘을 사는게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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