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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민 Jan 08. 2024

나나 잘 챙기자


 표면적 문제는 돈이다.

그리고 그 아래엔 감정적 뒤엉킴이 존재한다.


결혼생활과 육아를 한 지 1년 반 즈음이 지나고 이제 일을 해야만 생활의 유지가 가능하다는 계산이 서고 구직활동을 시작하려 할 때였다.


두둥.

분명 12시간 이내는 95%의 성공률을 보장한다는 사후피임약이 나를 배신했다는 소식을 산부인과에서 아기집을 보며 듣게 되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가끔 알 수 없는 이유로 이런 일이 생긴다고는 합니다만....”이라고 의사는 말했다. 나는 속으로 ‘왜요? 왜 나한테요?’ 그렇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현실은 임신이었다. 일주일 동안의 우여곡절 끝에 받아들이자고 마음을 내었고 통장잔액 0원은 그렇다 쳐도 앞으로의 생활비는 어떡하나 싶었다. 신랑은 코로나 때 식당을 폐업하고 자격증을 취득한 지 얼마 안 돼서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는 중이었고 나도 대구에서 요가원을 인계하고 서울로 온 터라 수입이 없었다. 즉, 우리 둘 다 백수였다.


임신소동이 있기 일주일 전쯤 시댁에 가서 말하기 쉽지 않은 경제사정을 이야기하고 보험비를 조정할 수 있는지 시어머님께 여쭤보았다. 내 보험료가 30만 원을 훌쩍 넘겼는데 상대적이겠지만 지금의 나에겐 부담스러웠고 마침 조절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는 신랑말을 듣고 한숨 돌리던 차였다. 그 보험은 보험설계사인 시어머님께 든 거라 시댁으로 간 것이었다. 그. 런. 데 조정이 안된다는 거였다. 이런 맙소사. 어쩔 수 없지 싶어서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자고 집으로 왔다.


 그리고 둘째 임신을 확인하고 구직활동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조바심에 극도에 달했다. 이런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서럽기 시작했다.


당장 나는 몸을 통해 노동을 할 수가 없는데,

일 년 반 동안 모아둔 돈도 다 써버렸는데,

당장 들어가는 돈들이 있는데,

누구나가 하는 돈의 고민이겠지만 몸만 움직이면 내 한 몸 정도는 충분히 먹여 살릴 수 있던 미혼일 때와는 너무 달랐다. 한 살 쟁이는 24시간 나랑 붙어있고 뱃속엔 8주 된 둘째가 있었다. 하늘에다가 욕을 한가득 퍼붓고 싶었다.


 그리고 그 화는 고스란히 신랑과 시어머니를 향했다. 실제로는 그런 마음이 아닐지라도 분명 힘들다고 했는데 아무런 피드백이 없다는 게 서운함을 넘어 세상 외로운 캔디가 된 심정이었다. 비슷한 상황이 동생네에게도 있었는데 고생한다며 친정어머니가 준 돈은 올케에게 마음의 힘이 되었을 것이다. 그 생각이 나자 불난 마음에 화력이 더 해갔다.


 그래서 일 차전의 부부싸움이 발발했다. 신랑은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 본인도 여유가 없다 보니 세심히 못 챙긴 거라며 신용카드와 현금을 주었다. 그리고 시어머님은 본인이 보태준다고도 하셨었는데 내가 편파적으로 생각을 몰고 간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화가 났다. 어떻게 십여 일 동안이나 모른 체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 이차전이 시작되었고 잘 알다시피 이런 유의 싸움은 가해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방식의 차이가 크기에 결국 지지부진해지기 마련이었다.


 그러다 문득 인생영화였던 ‘어바웃타임’의 이미지를 보게 되었고 무엇 때문에 나는 이토록 상냥함과는 거리가 먼 상태가 되었는가 순간 되묻게 되었다. 그건 부부싸움 중에 일어난 찰나의 순간이었다.


 부부가 둘 다 백수였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경제적인 부분은 해결하려고 했다. 그건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기도 했다. 피해 주지 않는 삶. 그러다 보니 양보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까지 양보를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무의식은 차곡차곡 화를 쌓고 있었다. ‘왜 고마워하지 않는 거야?’라며 말이다. 그러다가 사소하지만 막다른 곳이라 여겨지는 감정의 취약골에서 펑하고 터져버린 것이다. ’네가 힘들다고 할 땐 마음을 쓰고 머리를 써서 최선을 다했는데 왜 내가 힘들다고 할 땐 모른척하는 거야!’


 부부싸움이 극렬하던 찰나

이러한 나의 관계의 패턴이 한순간 리와인드 되었다. 결국 나는 상대가 바라지도 않던 배려를 선입금하고 내가 필요하니 출력값을 강요하는 감정의 패턴을 가지고 있구나. 그러자 한 가지 귀결점에 닿았다.


나나 잘 챙기자

이 무슨 코미디냐 싶었다.
원한에 기인한 비아냥이 아니었다.
관계를 살뜰히 챙긴다는 명분으로 모두를 불편하게 해 놓고 고마움을 강요하는 꼴이라니.
정말 꼴불견이었다. 어느 순간 균형을 잃어버린 것인지 모르겠으나 바로 잡아야 할 순간이구나 싶었다.


당분간 꽤 긴 관찰과 조율의 기간을 가질 것 같다.

바로 잡을 인자가 때에 맞춰 나타난 사건이었고 지금 바로 잡지 못한다면 또다시 패턴은 반복될 테니까.


나나 잘 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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