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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곰씨 Apr 05. 2021

사소한 외출

일상_01

버스로 일곱 정류장쯤 떨어진 대형 문구점에 아이와 함께 갔다. 통 집 밖에 나가고 싶어 하지 않는 아이를 겨우 설득해서 오랜만에 뗀 발걸음이었다. 넓은 매장을 둘러보면서 아이와 나는 지우개며 펜, 노트 같은 자질구레한 학용품들을 바구니에 넣었다. 아이는 제가 좋아하는 브롤스타즈 캐릭터 지우개를 손에 넣었고 나는 매끄럽게 써지는 펜 하나를 챙겼다. 계산대에서 아이는 브롤스타즈 캐릭터가 담긴 카드도 두 개 바구니에 넣었다. 하나 더 집으려고 했지만 내가 말리는 바람에 더 얻지는 못했다.

집에 오는 길에 아이는 집 앞의 작은 문방구에도 들렀다. 자신의 취향에 맞는 싸구려 장난감들이 열을 맞춰 진열되어 있는 동네 문방구는 아이에게 그야말로 참새방앗간이다. 아이는 나더러 먼저 집에 들어가라고 하더니 문방구 안으로 쏘옥 들어갔다. 얼마나 걸릴지 몰라 나는 혼자 집으로 돌아왔다. 한참을 지나 들어온 아이의 손에는 동전을 넣고 돌리면 나오는 뽑기 공이 네 개나 들려 있었다.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식탁에서 조곤조곤 소리가 들려왔다. 뽑기로 얻은 조악한 열쇠고리를 조립하고 난 아이가, 아까 대형 문구점에서 산 캐릭터 카드를 펼쳐놓고 상황극을 펼치고 있었다. 혹여 방해가 될까 봐 뒤를 돌아보지 못했지만 상황극이 꽤 오래 지속되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캐릭터들이 각자 자신이 가진 특성과 능력을 최고로 발휘하며 열심히 싸우고 있는 듯했다. 한참 뒤 상황극을 만족스럽게 끝낸 아이는 카드를 모두 챙겨 제 방으로 들어가 오늘 획득한 카드를 서랍에 정리해 넣어둔다. 잠시나마 콧노래도 흥얼거린다.

잠깐의 외출이 아니었다면 방 안에서 유튜브를 들여다보며 물에 젖은 솜 마냥 축 늘어져 있을 텐데 한 시간도 채 안 걸린 외출이 아이의 일상에 조금이나마 활기를 불어넣어준 것 같았다. 자주 나가면 좋겠지만 아이의 발을 떼어놓기란, 뭐랄까. 아스팔트에 딱 붙어 있는 껌을 떼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엄마가 호들갑을 떨면 더 하기 싫어할까 봐 ‘거봐 엄마랑 나갔다 오길 잘했지?’라는 일상적인 말을 나는 꺼내지 않았다. 사춘기를 앞둔 5학년 아이에게 엄마의 행동을 인정하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 “브런치 글쓰기”가 꼭 아이와 함께한 사소한 외출과 같다. '일단 잘 해내기나 하자. 중간에 그만두지나 말자’라는 생각이다. 오늘의 아이와 나처럼 일단 집 밖으로 나가 한 발을 떼어 놓아야 일상에 새로움이 생길 테니까.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오늘'은 우리가 어제 만든 내일이다. 그러니 나도 내 안에서 밖으로 나가야 한다. 물에 젖은 솜 마냥 축 늘어져 있지만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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