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면 빼놓을 수 없는 음식 중 하나가 열무국수다. 만드는 법도 간단해 더운 여름이면 자주 해 먹게 되는 메뉴이기도 하다. 소면이나 중면을 삶아 잘 익은 열무김치와 김치 국물을 적당히 얹고, 시판하는 냉면육수만 부어도 먹을만한 열무국수를 쉽게 만들 수 있다. 거기에 삶은 계란과 오이를 올려주고 참깨를 솔솔 뿌리면 다홍치마가 따로 없다. 하지만 그래도 뭔지 모르게 파는 것과 다른 게 조금 심심하다. 2프로 부족한 마음에 열무국수 레시피를 검색해보니 사람마다 각자의 방식대로 양념을 다진 양념으로 만들어 곁들여 비빈 후에 열무를 얹어 맛깔나게 먹는 게 아닌가. 마침 집에 모두 있는 재료라 블로그에서 본 대로 양념을 만들었더니 심심함이 없어지고 더욱 그럴싸해졌다. 역시 사람은 배워야 돼.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순간 오래전에 삼복더위에 지인에게 해주었던 열무국수가 생각났다. 오이와 삶은 계란을 얹었는지조차 잘 기억이 안 난다. 정확히 기억하는 건 처음에 언급했던 것처럼 국수를 삶아 시판 육수와 열무김치만 얹어주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인은 이렇게 만들어먹으면 쉽고 괜찮겠다며 맛있게 한 그릇을 싹 비워주었다. 8월 15일 광복절 연휴 즈음이었고 마침 회사에서 복지 차원에서 저렴히 운영하던 교외의 단독주택을 2박 3일 빌려 묵고 있을 때였다. 어딜 가나 차가 막히는 연휴에 놀러 오라고 한 것도 조금 미안했는데 흔쾌히 먼길을 달려와 주었다. 어느 해 인가는 내가 한강 여름 캠프장에 심하게 꽂혀 삼복더위에 자리를 두 개 잡아놓고 초대한 적도 있다. 덥고 습한 데다가 모기까지 합세한 한강변의 열악한 환경에서도 피자와 치킨을 사 와 흔쾌히 맥주 한잔을 같이 해주었다. 급기야 어느 해 늦가을에는 양주의 캠핑장을 예약해놓고 오라고 했더니 없는 텐트도 빌려서 와주었다. 그때는 또 사이트와 주차장이 떨어져 있어 리어카에 짐을 싣고 나르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모른다. 가성비를 따질 수밖에 없었던 나 때문에 덩달아 참 고생도 많이 했다.
언니네는 언제든 내가 부르면 기쁘게, 그리고 흔쾌히 와주었다. 그런데 2년째 코로나19로 만나지 못하고 있다. 한번 안부를 물어야지 하면서도 차일피일 미루게 된다. 처음에는 인사차 다음에 보자고 몇 번 카톡도 주고받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코로나19의 상황이 잦아들 기미가 없자 약속을 잡고 취소하는 것을 반복하는 것도 머쓱해서 연락을 안 한 지 꽤 오래되었다. 올해도 광복절 즈음에 만나긴 어려울 것 같다. 1~2년 정도를 못 만난다고 해서 멀어질 사이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더워도 땀을 뻘뻘 흘리면서 만나왔기에 더욱 아쉬운 여름이 될 것 같다.
그때 그 심심한 열무국수 대신 새로 검색한 맛있는 레시피로 만들어주고 싶은데 그날이 또 언제 올까 싶다. 그때 언니가 먹어준 열무국수에 양념은 없었지만 언니를 좋아하는 내 마음 한 스푼이 들어갔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그래서 맛있게 먹어준 게 아닐까? 새로 알게 된 레시피로 열무국수를 해 먹을 때 마다 맛없는 걸 대접했다는 미안함에 자꾸 언니 생각이 난다. 잘 지내고 있지요? 승언 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