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것의 생각노트
내가 가지고 있는 콤플렉스 중 하나는, 효율성에 대한 것이다. 나는 남들보다 어떤 과제를 오래 붙들고 있는다. 어떤 때는 과제를 하는 시간에 비해 그 과제로 들어가는 시간이 긴 것일까를 고민했고, 어떤 때는 왜 이렇게 쓸데없는 줄 알면서도 계속 고집을 부리면서 해보는 걸까를 고민했다. 사람들에게서는 왜 그렇게 열심히 하느냐는 핀잔까지 듣는다. 왜. 열심히 하느냐. 보상이 주어지지도 않는데. 스스로 생계도 꾸려가지도 못하면서.
효율적이지 않은 걸 알기 때문에 남들과 일하는 것을 꺼려했다. 굳이 안 해도 될 일을 나는 계속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효율적이지 않은 걸 알기 때문에 같이 일하면 남들이 피곤해할까 봐, 내가 바보라는 평가를 받을까 봐 일도 나누지 못하고 그냥 다 내가 했다.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것이 효율적이지 않기 때문일까를 내내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또다시 조급한 마음에 글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글이야 말로 정말 효율적이지 않은 작업이기 때문이다.
전에 어떤 분(알고 보니 대단했던 분이)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200번 이상의 퇴고.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를 200번 이상 고쳐 썼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해주시면서, 쓴 글을 최소한 몇 십 번씩은 내 입으로 뱉어봐야 이상한 것을 고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그런데, 그 소중한 시간을 내어 피드백을 받으러 가면서도 나는 내 스타일의 글이 아니라며 급하게 쓰고, 다시는 읽어보지도 않았다. 그야말로 날 것의 초고를 예의 없이 들이대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효율적이지 않은 것에 대한 반대급부이기도 했다.
효율적이지 않은 것에 대한 불만으로 지난날을 엑셀로 정리해보고 있었다. 그런데 내 삶이 조금은, 조금씩은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때. "나는 똑똑한 것이 아니라 남들보다 문제를 더 많이 생각할 뿐이라는 아인슈타인의 말이" 떠올랐다. 그간 보지 못하고 있었지만, 오래 생각하며 만들어 온 것들도 분명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오래 , 끈질기게, 묵묵히. 그런 것들에 대한 힌트로 떠올랐던 구절이다.
효율적이어야 하는 것과, 않아야 하는 것을 구분할 필요는 분명 있다. 하지만 내가 판단하기에 더 오래 생각해야 할 일이라면 그에 대해서는 더 이상 타협하지 말자.
미션 중심형 인간, 이것저것 에너지가 분산되고, 두려워서 좀체 글을 쓸 수 없는 나로서는 글감들을 만들어가야 글이 나올 것 같아, 백일백장으로 나를 다시 밀어 넣는다. 날 것의 글감부터 편하게 그러모아 볼 생각이다. 그렇게 하나하나 모은 글감을 이후에도 오래오래 생각해 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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