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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Jul 09. 2024

그기 바로 꼰대인 기라

모임에서 후배들 테이블에 끼여 앉아 그들의 이야기를 한참 들었습니다. 퇴직하면 가장 먼저 모임을 정리하려 했는데, 막상 어느 모임을 정리할지 고민이 되더군요. 그래서 그냥 이대로 가지 뭐 하는 심정으로 지내게 되었습니다. 대신에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어야겠다는 결심을 하였습니다. 평소에도 남의 말을 잘 들어준다는 평을 듣고 있었지만 말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삶을 이야기할 때 즐거움을 느끼는 법이지요. 그래서 엔돌핀은 기분이 좋을 때, 기적의 호르몬 다이돌핀은 감동적일 때 나온다. 아드레날린은 기분이 나쁠 때 분비된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아드레날린이 나오는 게 싫어 평온만을 추구하면 기적의 홀몬 다이돌핀은 맛볼 수가 없답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이야기를 신나게 할 때 엔돌핀이 분비된다고 하니 남으로 하여금 마음껏 이야기하개 하면 정말 좋은 일하는 것이지요. 하기사 남의 이야기를 끝도 없이 들어준다는 것이 어디 그리 쉽던가요. 본인은 신나게 떠들지만 듣는 이는 별로 재미가 없을 땐 난감하기도 합니다. 


어느 후배가 말합니다. 


"형님 있잖아요. 우리집 딸래미가 공부도 좀 잘 하거든요. 그래서 제가 아이 외삼촌도 교직에 있고, 집안에 교육자가 많이 있으니 딸도 사대나 교대로 가서 선생님 하면 일등 신부감에 세상 사람들 인정 받는 것 아니냐고 아무리 말해도 안 듣네요. 딸은 에니메이션 캐릭터 같은 분야에 관심이 많이 공부를 하면서도 공책이나 컴퓨터에 늘 그림을 그렸거든요. 초등학교 때는 그냥 취미겠거니 하는 생각에 지켜고 보고 있었는데, 이제 중학교 3학년이라 내년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본격적으로 입시를 준비할 낀데 걱정이 많네요. 어디 한의대라도 가주면 저도 평생 잊어뿌고 살 낀데 아~가 도통 제 말을 안 들을라 캐요. 우짜만 좋겠심니꺼."


이럴 때 대답 잘 해야 합니다. 단정적으로 말하면 후배가 상처를 받을 수도 있고, 남의 귀한 딸 진로를 망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 의견을 밝히지 않고 딸의 진짜 의중을 진지하게 들어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후배가 그런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고 합니다. 그냥 집안에서 딸 아이가 있을 때 지나가는 말로 향후 진로를 가볍게 물어보고 딸도 가볍게 답한 것이 전부라고 합니다. 아이 엄마 생각은 또 어떤가 하고 물었습니다. 딸의 인생이나 향후 진로는 어디까지나 당사자인 딸 아이의 판단과 견해가 가장 중요하고, 부모의 생각은 그냥 참고용이라고 답하려다가 잠깐 멈추었습니다. 우리집 아이들 3남매가 클 때 저와 아내는 아이들 학교 생활이나 진로 결정에 진짜 많이 개입했었기에 남의 집 딸 인생이나 진로 이야기를 가볍게, 함부로 지껄여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질문할 때마다 후배의 표정은 오히려 신이 난 듯 말이 많아집니다. 아무래도 자신의 가족 이야기가 나오니 편하게 답하는 것이지요. 아이들 어렸을 때 멀리 가족 여행 간 이야기부터 숱한 에피소드가 나옵니다. 어느 집에서나 있을 수 있는 내용이지만 사람들 앞에서 신나게 내놓을 기회는 생각보다 적겠지요. 더욱이 제가 자꾸 말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이끌어 가니 그 후배가 더욱 신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후배의 사연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제 견해를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마음껏 이야기하다 보면 문제 해결책도 그 안에 있을 듯해서요. 


또 다른 후배도 자신의 아이 이야기를 들려 줍니다. 밝고 명랑한 것은 좋은데 아무리 봐도 예의가 없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이제 와서 예의 같은 것을 언급하려니 아이의 반발을 살 것 같고, 그렇다고 그냥 놔두려니 어디 가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까 봐 걱정이랍니다. 자기는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엄격한 가정 교육을 받았기에 예의, 예절의 중요성을 몸소 체험했다면서 요즘 아이들은 대체로 버릇이 없다고 혼자 중얼중얼 합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지요. 


"그기 바로 꼰대인 기라. 우리가 지난 날 부모로부터 받은 예절 교육 그 자체는 분명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그런 것에 경직되어 내 아이들도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강요하면 그건 진짜 꼰대 사고방식이 되는 거라네. 아이들에게 강요하지 말고 표 안나게 슬쩍 부드럽게 예의를 전하는 방법을 찾으면 좋지 않을까. 그리고 어느 책에서 보니 수 천 년 전 이집트 피라미드에서 출토된 파피루스에도 '요즘 젊은이 버릇없다'가 있다고 하더라. 예절, 예의 너무 강조하면 오히려 역효과 날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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