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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Nov 28. 2024

그곳에


단풍에 서리가 물들고

겨울 분위기가 물씬 풍기면

내 어린 시절 

추억이 가득 서린 그 길에 선다


어릴 때

그때는 얼마나 추웠는지

 X자로 동여맨 책보자기 

그래도 좀 산다는 집 아이들은

가방을 몇이 들고 다녔지

난 국민학교 졸업할 때까지


책보자기에

검정고무신



우린 책보자기에 책을 가득 쌓고 그 위에 

도시락을

김치가 가득 들었던

엄마의 정성과 염려와 기대 그리고 소원이 

함께 

모여 들었던

책보자기를 단단히 매고

겨울 찬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집을 나와 동구밖으로

다시 비포장 신작로를 고개를 숙이며 달리다

혹시나 저 앞에서 차가 올까 봐

어쩌다 고개를 들었다가

잠깐 그렇게 들다 

속히 

고개를 다시 깊이 숙이고

바람을 맞지 않으려 애쓰면서 

뛰고 또 뛰고 그렇게 산고갤 올라 서면



저멀리 면소재지가 아득하게 보이고

산고개가 딱 절반 코스인데

우리 마을은 유난히 학교에서 멀었다. 

여기 고개에 올라서니

우리 국민학교가 보이는데

보이긴 하는데


고개 위의 겨울바람은 

엄청나게 드세고

차라리 여기에서 집으로 돌아갈까

아니면 햇볕 따뜻한 저쯤에 숨었다가 아이들 돌아올 때

시간 맞춰 나와 집에 가면

부모님 모를 거라고

마을 아이들이 몇이서 작당하고

나를 그 무리에 넣으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난 도저히 그것은 못하겠다.

오직 나 하나만 보고 

사시는 우리 엄마 얼굴 생각하니

학교 가서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친구들하고 잘 지내다 오라는 엄마의 그 말이

가슴에 뱅뱅 머릿속에도 뱅뱅

난 엄마에게 학교 잘 다녀오겠노라고 

큰소리로 약속했고


안방에서 한번 차가운 마루에서 또 한번 그래도 못 미더운지 마당에서 대문 근처 그렇게

세 번이나 엄마가 안아 주셨다. 

헤진 광목 앞치마에 둘둘 말린 채 엄마의 품이 

지금도 아련하게 떠오르는데

엄마는 정말 많이 안아주셨지. 

아마도 우리 마을 아이들 즈그 엄마가 안아준 것 다 합쳐도

우리 엄마 안아준 것보다 적었을 거야


날 깊이 안으셨다가 내 볼을 두 손을 가득 잡고

한참이나 날 쳐다보시고

난 학교 시간 급하다고 재촉하고

그렇게 엄마와 난 눈이 정말 많이 마주쳤다






지금 간 세월 아득한 그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내 인생 특별히 고생도 없었던 것은

어머니께서 살아 생전 그때 

나에게

사정없이 폭포수처럼

쏟아 부었던

그 사랑 덕분일러니




엄마의 손은 고생으로 소나무기둥껍질과 같았고

한번도 '공부하라'는 말씀 없으셨지만

내 의무는

세상에서 내게 주어진 가장 큰 의무는

우리 엄마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게

학교 가서 선생님께 잘 배우고

월례고사 우등상 받아오는 것이었다. 


흰 광목 너른 색깔이 온갖 흔적이 촘촘하게 그림그리고

앞치마에 온갖 물자국, 김칫국 자국, 땟자국 등등이 떠오르고

그 어쩌면 냄새 가득한 광목 앞치마가 

엄마의 인생 그 자체였다. 

엄마의 두 손은 색이 바래고 다시 여러 색이 혼합된

광목 앞치마에서 머물렀다. 

그날도 우리 마을에서 몇 명은 산고개길에 머무르고 

우리가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길가에서 함께 어울려 집에 오면

그집 아지매들이 우리집에 몰려와서 자기 아들 학교 갔는지 안 갔는지 물으면

나도 마음에 없는 거짓말을 하였더라.


마을에 들어서니 낯익은 얼굴은 몇 안 남았고

인제는 고향이 타향이 되어가고

어린 시절 놀았던 뒷동산에

민둥산에 모여 닭싸움, 기마전, 비사치기, 씨름 놀이하던 민둥산 무덤들이

울창한 숲이 되어

사람의 숨결 거부한 지 한참 세월이 되었다. 


민둥산에 다같이 놀다 

남의 묏등에 한꺼번에 누워 흘러가는 흰구름 보던 날

그 무덤 주인은 아무 죄도 없이 우리가 깔고 누웠지. 

어떤 날은 독수리 세이코 녹음기를 묏등 위에 얹어놓고

Keep on running 막춤을 정신없이 흔들어 대었던 날

그 무덤 속 그 어른은 얼마나 정신이 상그러웠을까. 



그래도 내 얼굴 기억하는 마을 형님들 형수님들과 마을회관에 둘러 앉아

추억 이야기 한참 나누는 흥겨운 분위기였다가

먼저 가신 어른들 이야기에 분위기도 숙연해지고

다시 즐거운 이야기하면 금새 잊고 같이 웃고


자기들 살아 있을 때 한번이라도 자주 오라고 

앞으로 살 날이 얼마나 남았겠느냐며 

내가 그들의 손마다 잡고 

작별 인사를 하고 돌아오는데

나도 울컥, 마을 사람들도 내 얼굴 아는 겨우 몇 사람이 

옛날 추억에서 나오는 일이 너무나 힘들었다. 



젊은 시절 그렇게 장대하던 아재 한 사람은


나를 보자마자 손을 콱 잡더니


잘 있었는교? 우째 인자 왔는교? 집에 식구들은 다 핀한교? 내가 한번은 가본다 카는 기 이래 됐뿐네. 아지매도 잘 있지요?




이 아재는 나보다 나이가 한참 위다. 예전에는 나를 보고 "자네 잘 지냈나. 집에 아~들 하고 아~들 어마이는 잘 지내고 있제. 아파트도 하나 장만했제."라고 인사하셨지.


지금은

나를 앉혀 놓고 갑자기 말을 높이고

내가 할 말을 잃었지.

함께 걸었던

마을 형님 한 분이 

그 아재 뒤에서 나만 보이게

무슨 손짓을 한다. 



아재가 다시 내게 묻는다. 


잘 있었는교? 우째 인자 왔는교? 집에 식구들은 다 핀한교



같은 말을 세 번이나 하는 것을 보고 마을 형님의 손짓 의미를 알았다.

어디 아재는 세월만 잃었겠나. 

추운 날에도 

신발은 짝이 맞지 않았고

내 바지 주머니에 손을 죽 넣더니

돈을 달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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