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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ielC Jul 31. 2019

틈_03

단편소설집

아침까지도 행복했네

어제도 물론 행복했었지

소파에 앉아 줄맞춰

쓰리어클럭피엠 전쟁 뉴스를 본다

무릎 위에 마지막 식사가 기다린다

닥치고 봐

줄맞춰 봐

야간폭격미쳐버린대공포사이렌

치솟는연기귀에서피가나

비탈진폐허상설씨엔엔전쟁터

줄맞춰 있어도 시체는 어색해

리모콘으로 마지막 식사를 비벼...

닥치고 비벼

줄맞춰 비벼

-버디1집, 3o'clock



한 달 동안 비워둔 내 방으로 돌아와 청소를 했어요. 새벽이 올 때까지 퀴퀴한 곰팡내가 나는 방안을 쓸고 닦았어요. 그리고 문득 한 달 전에 그녀에게서 받아 넣었던 카세트테이프가 생각났어요. <버디1>. 그래요, 그걸 그때서야 들어보려고 생각했어요. 새벽 공기는 축축했어요. 곧 비가 오려는 거 같았죠. 나는 낡은 카세트 라디오에 테이프를 넣고 전원을 연결했어요. 이어폰을 귀에 꽂자 그때까지 멍했던 의식의 한가운데쯤에 예리하고 환한 빛이 빠르게 흘러갔어요.


구역질이 날 것만 같았어요. 카세트 속지에 이들의 노랫말이 적혀 있었기에 망정이지 시종 악을 써대는 통에 무슨 말인지 거의 알아듣지도 못했어요. 뭐 그런 걸 하드코어라고 한대요. 나는 머릿속이 멍멍해지고 파도가 일어날 지경으로 고개를 흔들어댔어요. 방광이 열렸어요. 팬티가 주먹만큼 젖었어요. 오줌을 싼 건 아니었지만 몸을 조절할 최소한의 기력조차 남아 있지 않았던 거예요. 카세트가 저절로 멈출 때까지 그렇게 미친 듯이 몸을 흔들어대다가 바닥에 쓰러져 울음을 터뜨렸어요. 입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어요. 맹물 같은 눈물이 울컥울컥 솟구쳤어요. 창 밖에서 요란하게 빗소리가 들렸어요.


미국으로 돌아갔다구? 그래, 그건 정말이지 잘한 일이다. 암, 너희들은 쓰레기니까. 하지만 쓰레기 아닌 척하지는 않는 거 같아. 그거 하나만은 마음에 들어.


나중에 보니 며칠 뒤쯤의 일기에 그렇게 써놓았더군요. 차라리 당신은 이런 노래를 듣지 않는 게 나아요. 잘된 일이죠. 아마 내가 알기로는 당신은 몹시 화를 내면서 테이프를 뽑아내 마구 구겨버리고 잡아 뜯었을 거예요. 사소한 일로 거칠어지는 편이잖아요, 당신은. 몰라요, 어쩌면 나 때문에 늘 신경이 곤두서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죠.


졸업을 해야 할지, 이대로 학교 주변을 얼찐거리는 걸 집어치우고 뭔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것인지, 일단 먹고살아야 하니까 일거리를 찾아야 할지 그 무엇 하나도 결정하지 않고 나는 벌레처럼 보름쯤 지하실 방에서 꿈지럭대면서 기어 다녔어요. 장마가 끝나갈 무렵, 집안을 뒤져서 동전을 모아 목욕탕에 다녀왔어요. 체중이 5킬로그램이 빠져 있었고 치골에 심한 가려움증을 느꼈고 털이 듬성듬성 빠져서 조금 챙피했지만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거 같았어요.


학교 식당에 갔어요. 개강 초여서 식당은 살갗이 가무잡잡하게 타고 아직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아이들로 북적거렸어요. 비틀즈의 음악이 성가실 정도로 계속 되풀이되고 있었죠. 나는 쟁반에 우동과 단무지를 올려놓고 가만히 식당 안을 둘러봤어요. 오후 한 시, 바보처럼 이 시간에 식당에 올 생각을 하다니 정말 한심했어요. 그녀와의 기이한 동거가, 그리고 자취방에서의 보름이 시간을 착각하게 했는지도 몰라요. 빈자리는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우두커니 서 있자니 그건 더 못할 짓이었어요. 주의 깊지 않은 몇몇 아이들이 몸을 부딪혔고 우동 국물이 티셔츠에 튀었어요. 이대로 서 있다간 또 울음을 터뜨릴지 모른단 생각도 들었어요. 같은 과의 아는 얼굴도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가장 가까운 테이블의 빈자리에 앉았어요. 앞자리에는 가정과 학생들로 보이는 여자 아이 둘이 깔깔대면서 백반을 께작대고 있었어요. 그 아이들은 먹는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듯 보였어요. 오가는 사람들과 다른 테이블을 산만하게 힐끔대면서 수시로 요란하게 깔깔댔어요. 그 아이들 앞자리에는 흰색 셔츠의 남자가 어깨를 구부정하게 숙이고 앉아 있었어요. 바로 내 옆자리였죠. 앞자리의 아이들이 영 신경에 거슬렸지만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어요. 우동 가락이 더 불어 터지기 전에 어서 먹어치우고 그 번잡하고 짜증스러운 식당을 빠져나가야 했으니까요.


옆 자리의 남자는 신문을 반듯하게 접어 테이블에 놓고 들여다보면서 육개장을 떠먹고 있었어요. 그때까지도 나는 그 남자가 당신인 줄 전혀 몰랐어요. 옆모습을 알 리가 없죠. 알죠? 사람들은 옆모습이 정면에서 본 얼굴과 아주 많이 다르다는 걸 말이에요. 옆모습은 절대로 꾸밀 수가 없으니까요. 당신은 신문에 거의 몰두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당신이 들고 있는 수저는 허공에 떠서 가늘게 갈팡질팡하다가 벌린 입을 찾지 못하고 주춤거리기 일쑤였죠. 앞자리의 계집아이들은 그런 당신을 보고 뭐라고 귀엣말을 주고받고는 키득거렸어요. 당신은 수저로 뺨을 슬쩍 찌른 뒤에야 신문에서 눈을 떼고 얼굴을 훔쳤어요. 그리곤 시계를 들여다보고 식당 안을 휘둘러보았죠.  그제야 나는 당신을 알아볼 수 있었어요. 우동가락을 우물대면서 그만 당신과 나는 눈이 딱 마주쳤죠.


“오랜만이군요.”


놀랍게도 당신은 태연하게 말했어요. 여전히 눈두덩이 깊이 패인 쓸쓸한 표정이었어요. 나는 다시 한번 가슴 저 밑바닥이 저려오는 걸 느꼈어요. 꼬박 한 달 보름만이었죠.


“아, 안녕하세요, 선생님.”


교직원 식당을 놔두고 학생 식당을 이용하는 당신이 이상하다는 생각조차 못했어요. 나는 적잖게 당황했고 몇 가닥 삼키지 않은 우동을 포기하고 말았어요. 목덜미까지 벌겋게 달아올랐죠. 앞자리의 학생들이 또다시 깔깔댔어요. 그 아이들은 이 새로운 사건을 지켜보려고 작정한 듯 자세들을 고쳐 앉았어요.


“학생, 그렇게 무책임하면 어떡합니까?”


당신은 식어빠진 음식을 바라보며 얼굴을 찌푸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어요. 음악과 소음 때문에 나는 당신 쪽으로 몸을 기울여야 했어요.


“지난번, 음반 회사 말입니다. 아무런 통보 없이 무단으로 그만두면 우리 학교 이미지가 나빠진다는 걸 생각 못했습니까?”


이번엔 신문을 들여다보고 있었지만 명백히 나를 겨냥한 힐난의 목소리였어요.


“무슨 말씀이신지...?”


나는 당황되기도 하고 앞자리의 계집아이들이 신경 쓰여서 숨을 헐떡거리면서 더듬거릴 밖에요. 당신은 국그릇에 던져 넣듯 숟가락을 놓았어요. 마침 내내 흘러나오던 비틀즈의 음악이 뚝 끊겼고 땡그렁하고 식기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어요. 그리고 당신은 식판을 들고 벌떡 일어나 성큼성큼 걸어가 버렸어요. 당신이 앉아 있던 자리에는 반듯하게 접힌 신문만이 남겨졌지요. 그리고 냉큼 다른 학생이 앉아서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기 시작했어요. 다른 음악이 흘러나왔겠죠.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듣지 못했어요. 앞자리의 계집아이들이 언제 가버렸는지도 몰라요. 나는 우동이 퉁퉁 불어 있다는 생각만 했어요. 그리고 도저히 그걸 먹을 수 없다는 것도 알았어요. 하지만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왜 그곳에 못이 박힌 듯 그토록 오래 앉아 있었는지 알지 못했어요. 문득 주위가 너무 조용하다고 생각했어요. 흐드득, 어깨에 한기를 느꼈어요. 창밖으로 보이는 연못의 연꽃잎 위로 빗방울이 듣기 시작했어요. 늦은 오후였어요. 땡그렁 땡그렁 주방 쪽에서 소음이 들렸고 식당 한 켠 테이블을 차지하고 토론을 하는 대여섯 명의 아이들이 보였어요.


나는 천천히 일어나 불어 터진 우동을 잔반통에 부어 넣고 식판을 반납한 뒤 식당을 나왔어요. 커피 자판기 앞에 서서 주머니를 뒤적거리다가 나는 돌아섰어요. 취업 지도과를 향해 빠르게 걸어갈 때 정확한 대상은 분명치 않았지만 나는 화가 나 있었어요.


“학생, 무슨 일이죠?”


내가 한참을 서 있자, 당신은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대단히 사무적이고 권태롭게 물었어요. 당신 앞에는 서류가 잔뜩 쌓여 있었고 컴퓨터 모니터에는 데이터베이스의 빈칸이 깜빡거리고 있었어요.


“죄송합니다. 미처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요. 이해해주셨으면 해서요. 그렇지 않아도 할 수 없지만 정말 본의는 그게 아니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나오는 대로 말하고 있자니 한없이 종알댈 것만 같은 두려움이 앞섰어요.


“4학년 2학기 맞나요?”


당신은 들고 있던 볼펜을 돌리면서 말했어요.


“휴학했어요.”


“좋아요. 이걸 좀 보도록 해요.”


당신은 서류철 옆에 놓인 사각봉투를 집어 들고 내 쪽으로 내밀었어요. 시선은 여전히 모니터를 향하고 있었어요. 나는 얼른 봉투를 받아 들었어요. 어쩌면 당신이 손을 거둬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거예요. 그리고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밖으로 나왔어요.


빗발이 굵어지고 있었고 우산도 가지고 있지 않았어요. 우산은, 그 음반회사 여직원의 집에 남겨두고 왔던 거예요. 하지만 따가운 오후의 태양 아래 팍팍한 길을 걷는 것보다는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비 오는 교정을 걸어갔어요. 빗발이 후드득후드득 얼굴을 때렸어요. 못난 계집애. 넌 어쩌면 그렇게 못나고, 추레하니? 빗소리는 까르르 웃으며 그렇게 조롱하는 거 같았어요.


-넌 늘 필요 이상으로 비참해하고 너무 깊게 생각하는 게 흠이야.


당신 말이 맞아요. 난 그랬던 거 같아요. 인생의 모습이 모두 천편일률로 똑같다면 얼마나 맛없는 세상이겠어요. 부모와 형제, 단란한 가정, 그리고 부러울 게 없을 정도의 돈만 있다면... 사실, 그런 거 너무 재미없을 거예요. 나는 비에 이미 흠뻑 젖은 상태였고 교문 앞은 한산했어요. 캄캄한 하늘, 도로는 번질거렸고 남학생 하나가 교지로 머리를 가리고 당구장으로 빠르게 달려가고 있었어요. 막 교문을 나서면서 난, 아주 재미있게 살겠다고 생각했어요. 발작적인 생각이었지만 날카롭던 신경줄들이 느슨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신호등 앞에서 나는 그때까지 손에 들고 있던 봉투를 발견했어요. 이미 비에 젖어 거무죽죽하게 변해 있었어요. 그 속에는 건설회사의 회사 소개 책자가 들어 있었죠. 나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이었어요. 당신이 나를 모욕하는 건가, 고 생각이 들자 피식 웃음이 나왔어요.


그 책 뒷면에 메모지 한 장이 달라붙어 있었어요.


-여섯 시 반, 미네르바에서 만나.


빗물에 젖어 잉크가 번지고 있었죠. 나는 한참 동안 메모지를 들여다보며 횡단보도 앞에 서 있었어요. 빗발은 더욱 굵어졌어요. 당신의 메모는 비에 젖어 차츰 푸르스름하게 번져갔고 종이도 맥을 잃고 허물어져갔어요. 그 짧은 전언에 나는 저항할 기력이 없었어요. 당신의 깊은 눈두덩이 떠올랐어요. 하지만 눈빛은 떠올릴 수 없었어요. 전혀 알지 못하는 당신, 나는 당신을 만나기 위해 두 구간을 걸어갔어요.


미네르바에 들어가 수건을 빌려서 젖은 몸을 닦았지만 이내 소파가 흥건하게 젖었고 오한이 났어요. 여섯 시 반, 당신은 접은 우산을 카운터 옆 우산꽂이에 넣고 물방울 하나 튀지 않은 차림으로 내 앞에 앉았어요. 그리고 담배를 피우고 저녁을 주문했죠. 내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차라리 구차스럽지 않아서 좋았어요.

아홉 시에 카페에서 나와 여관에 들어갔죠. 당신은 아주 짧게 섹스했어요. 사정한 뒤에 괴로운 듯 한참 동안 내 위에 엎드려 가늘게 몸을 떨었어요. 그리고 또 몇 대의 담배를 피웠죠.

“비 맞고 다니지 마라. 열 있는 거 아냐?”

당신이 한 말은 고작 그게 다였어요. 당신은 옷을 입은 뒤 발가벗은 내게 이불을 덮어주었어요.

“가시려구요?”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어요. 정말 당신이 가 버리면 미쳐버릴 것만 같았어요. 그렇게 낯선 방, 모든 게 무대 소품 같은 냄새가 나는 방에 홀로 남겨진다는 건 정말 무서운 일이었어요.

“가지. 일어나. 데려다줄게. 약국도 들러야겠어. 감기 기운 있는 거 같다.”

당신은 여전히 내 얼굴을 쳐다보려고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한결 부드러워진 걸 알 수 있었어요.

우리들은 밖으로 나와 당신의 차를 타고 내 방이 있는 골목 어귀까지 갔어요. 당신의 차에서는 방향제 냄새가 났어요. 그리고 내가 앉은 조수석 앞에는 두 아이의 사진이 붙어 있었어요. 와이퍼의 움직임이 두 방망이질 치는 내 심장 고동과 불협화음을 일으켰어요. 저녁으로 먹은 튀긴 돼지고기가 체한 게 틀림없었어요. 구역질이 치밀었지만 당신의 차를 더럽힐 수도, 세워달라고 말할 용기도 내겐 없었어요.

“들어갈까?”

나는 차에서 내려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어요. 당신은 처음으로 눈을 들어 나를 바라보더니 가만히 턱을 당기고 차를 후진시켰어요. 나는 방으로 달려들어와 오랫동안 토했어요. 내 의식의 두터운 쓰레기들이 치워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밤새 비가 왔고 밤새 하혈을 했어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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