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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어 Aug 23. 2021

굳어진 생각

사고방식

“기래니께 내 말을 좀 들어보라! 야!”

“온니! 그만하시요!”     


 점심도 먹지 않은 이른 시간에 주거침입 신고가 접수된 주공아파트 현장에는 중년의 여자 둘이 복도에서 다투고 있었다. 여자들끼리 채권·채무 문제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출동했는데 여자들의 억양이 좀 알아듣기 힘들어 애를 먹었다. 진정하고 천천히 좀 말해보라고 달래 간신히 알아먹은 사정은 좀 의외였다.


 객지에서 우연히 알게 돼 자매처럼 지내던 중 언니로 불리는 여자는 동생에게 생일선물을 하겠다며 30만 원을 이체했다고 했다. 동생인 여자는 생각보다 큰돈이라 부담스럽긴 하지만 선물이라 생각하고 고맙게 생각했다고 했다.


 하지만 관계는 현금을 선물할 때만큼 계속 좋진 못했던지, 이제는 서로 틀어져 언니는 동생에게 그 돈을 돌려주라고 요구했다는 것인데, 선물로 주었던 돈을 되돌려 달라고 요구하는 사람도 그렇지만 그걸 또 순순히 수긍하고 되돌려 주긴 하겠지만, 지금은 형편이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마치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 같았다. 그런데 이 여자들…. 다른 나라, 아니 다른 세상에서 온 사람들이 맞았다. 어쩐지 억양이 이상하다 했다. 둘은 탈북자 출신 정착민들이었다.      


 “아주머니! 그런 돈은 채권으로 인정할 수 없어요. 그런 주장은 억지밖에 되지 않아요”

 “무슨 소립네까? 그런 법이 어데 있습니까?”     


 채권으로 인정할 수도 없는 돈을 받겠다며 소란을 피우면 오히려 형사처벌을 받을 우려가 있다며 설득했지만, 여자는 좀처럼 이해하지 못하고 답답해했다. 급기야 그것이 대한민국의 법이라며 은근히 겁을 주고 계속 소란을 피우면 억지로 끌어내겠다고 반협박을 한 후에 겨우 여자는 1층으로 내려왔다. 아직 분이 풀리지 않았다며 금방이라도 다시 엘리베이터를 탈 것 같은 여자를 붙잡고 한참을 더 설명한 끝에야 겨우 여자가 지금 사는 세상은 예전과는 다른 세상이고 본인도 그걸 받아들여야 함을 수긍할 수 있었다. 


 진정하고 허탈해하는 여자에게 진짜 북한에서는 그런 돈도 되돌려 받느냐고 물으니 관계가 좋을 때 호의를 갖고 선물한 것이지만 관계가 나빠졌다면 당연히 되돌려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오히려 그걸 묻는 남한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동생이라는 여자도 자신이 돈을 돌려줘야 함은 부정하지 못했던 태도가 떠올랐다.      


“여기에서 그런 건 욕은 할 수 있어도 되돌려 달라고 요구할 순 없어요.”

“이제 알았습니다. 다신 올라가지 않을 테니 걱정 마시라요”     


 흥분을 조금 가라앉힌 여자는 어느새 억양이 이곳 세상과 비슷해져 있었다. 연배도 비슷한 터라 편하게 북쪽의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니 마침 인근 실향민들이 많이 사는 동네 주민들의 북녘 고향과 가까운 곳이었다. 냉면으로 성공한 식당 두 곳의 상호가 북녘의 읍과 면의 지명이므로 말해주자 여자는 금방 얼굴이 환해지며 자기 고향과 가깝다며 반가워했다.      


 여자를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이젠 개도 물어가지 않을 그깟 이데올로기 때문에 갈라져 지내 온 70여 년의 세월 동안 사고방식의 차이가 많이 생겼구나 싶은 생각을 하며 같은 말과 글자를 쓰고 생김새도 같지만 떨어져 오래 살다 보니 생각에는 많은 차이가 생겼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 쓸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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