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
야간근무 퇴근이 한 시간도 남지 않은, 그러니까 도시가 이제 막 아침을 시작하려는 시간에 “사람이 목을 매고 죽었다”라는 신고가 들어왔다. 그런데 장소가 특이하게 한적한 공용주차장에 세워둔 크레인이라고 했다. 순간 임금 체납 관련 크레인 노동자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 좀 시끄럽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현장에 도착해 보니 망자는 노동자가 아니고 인근에 사는 노인으로 보였다. 꽤 높은 곳에 그리 굵지 않은 나일론 로프를 맸지만, 몸무게 때문인지 무릎이 약간 구부러진 채 낡은 운동화 끝이 바닥에 닿고 있었다. 다행히 모자를 쓰고 있어 노인의 눈과 마주치지는 않았다.
대략의 사망 시간 경과를 확인하기 위해 노인의 팔뚝을 붙잡아 보았는데 거의 사후강직이 오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얼른 떼었다. 그런데 그 순간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노인의 몸에서 내 손으로 전해진 느낌이 빠져나가지 않고 여전히 손에 남아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뭔가 강렬한 것이 전해졌는데 그건 아무래도 노인의 것 같지는 않았다. 망자의 앞주머니에서 꺼낸 지갑은 80대 중반의 나이를 말하고 있었지만, 그의 죽은 몸은 너무 탄탄해 마치 젊은 사지처럼 느껴져 이상했다.
망자의 주소는 인근이었다. 형사팀과 감식반에 현장을 인계하고 주소지로 향했다. 이른 아침에 유족에게 망자의 죽음을 알리러 가는 길은 어떤 표현으로 최대한 정중하게 알려야 할까 하는 망설임이다. 처음 겪는 일도 아니건만 여러 가지 중 결국 적당한 표현을 골라내지 못한 채 ‘○○길 66-1’주소지에 도착했다.
그런데 노인의 주거가 의외로 문간방 세입자였다. 집주인 노인은 어제저녁까지 함께 무언가를 나누어 먹었다는 망자의 소식에 별로 놀라는 기색도 없이 얼마 전 홀로 이사 왔는데, 외국에서 사업하던 아들이 코로나 때문에 최근에 귀국해 와 있다는 말을 전했다. 시내에 살던 노인이 귀국한 아들에게 집을 내어주고 홀로 문간방으로 이사를 왔던 모양이다. 단편적인 사실 몇 가지로 노인의 자살 동기가 상상됐다. 시내에 살던 노인은 아들의 귀국으로 약간의 갈등을 겪었을 것이고 실향의 처지, 고향 사람들이 거주하는 동네로 홀로 이사했던 것으로 보였다.
10대에 전쟁을 겪고 잠깐 월남해 피하자던 것이 휴전선으로 가로막히는 바람에 평생을 그곳에 살며 그 나이에 이르렀다. 자식도 환갑의 나이가 됐건만 어찌 된 영문인지 노인의 몸은 아직도 아픈 곳 없이 탄탄했다. 필요 이상으로 너무 건강했다. 노인이 어릴 때 그 나이의 노인은 드물었다. 가끔 없지는 않았지만, 혹시 계시면 장수 중에서도 으뜸 장수로 꼽혔었다. 하지만 노인은 자신의 장수가 기쁘지도, 더 이상 으뜸으로 손에 꼽힐 만한 일도 아니란 것을 알았다.
빈 몸으로 월남해 배운 것도 없기에 평생을 몸을 쓰며 살았다. 큰돈을 번 건 아니지만 그저 자식들 키우며 현재를 살기엔 괜찮았다고 생각했다. 하루 벌어 오늘을 사는 것이 최선이었기 때문에 그것 말고는 달리할 줄 아는 일도,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노동의 고단함을 소주로 달래던 것이 그나마 즐거움이었지만 나이가 들자 그것마저 시들했다. 어쩌면 하루하루 사는 게 고역이었을지 모를 일이다. 자식들이 장성하고 더는 자신이 그들과 한 가족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자식도 노인이란 소리를 들을 나이가 됐는데 어쩐지 그게 민망하게 느껴졌다.
그러던 중 외국에서 살던 아들이 귀국했다. 아들 역시 갈 곳이 마땅치 않기에 고향을 찾았을 것이고 노인은 살던 집을 내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과정에서 서로 상처가 되는 말도 주고받았다. 하지만 나쁜 뜻은 없었다. 그저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보니 말이 독하게 나갔을 뿐이다. 공허했다. 삶이.
예전엔 자기 정도 나이가 되기 전에 다들 죽었다. 그래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모두 그러려니 받아들였다. 노인은 아직도 탄탄한 자신의 팔뚝이 혐오스러웠을지 모를 일이다. 대개 환갑을 넘기지 못하고 죽던 고향의 노인들이 부러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로프를 준비했을 것이다. 남은 삶에 대한 미련도 없었을 것이다. 그저 때가 됐는데도 죽을 준비가 안 된 자신의 몸이 원망스러웠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