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초. 모든 감각이 내가 이 사람보다 아랫사람이라는 것이 본능적으로 느껴졌고, 나는 고개를 숙여 인사하며 이 사실을 표현해버렸다. 의례적으로 하는 그런 목례가 아니었다. 나는 처음부터 내가 상대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사람에게 배운다는 것은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려는 격이었을까. 나는 이 사람의 기에서부터 압도되어버렸다.
악수를 한 후 자리에 앉았다. 다리를 벌리고 당당하게 앉은 포즈가 마치 워싱턴 링컨상의 모습처럼 위풍당당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심 회장님은 물어보고 싶은 것을 물어보라고 하였다. 영업적인 마인드, 사람을 잘 설득하는 노하우를 배우고 내가 할 수 있는 사업이 있는지 찾고 싶었다. 그러나 압도되어 머리가 텅 비어버린 나는 쉽게 말 문을 열지 못했다. '이 질문을 해도 될까?' 하는 고민으로 잠깐 정적이 흘렀다. 심 회장님의 표정이 조금 일그러졌다. 내가 자신을 만나러 올 준비가 안되었다는 것을 눈치챈 것이었을까?
그러나 무려 300만원을 지불하고 서울로 올라온 나였다. 용기를 내서 첫 질문을 던졌다.
"전공의를 시작하는 것과 당장 제 사업을 시작해보는 것 중 어떤 것이 좋을지 너무나도 고민이 됩니다."
또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오히려 그는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김민규씨는 하고 싶은 것이 뭐에요? 한 분야의 장인이 되고 싶나요? 아니면 돈을 많이 벌어서 성공하고 싶나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가 우스워졌다. 준비해서 간 내용물들은 이제 말할 필요도 없어졌다. 내가 너무 이 사람에게
빨리 왔다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말을 하지 못하자 그는 말을 이어갔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장인이 되는 것을 성공하는 것이라고 많이들 여겨요. 공부를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그런 것 같아요. 사실 그 2개는 너무나도 별개인데 말이죠"
"김민규씨가 고민하는 것은 너무 영양가가 없어요. 제가 김민규씨의 입장이라면 둘 중에 한 노선을 정할 것 같아요. 그리고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사업도 무궁무진해요. 그런데 지금 어떤 사업을 당장 할 것인지가 아니라 스스로 어떤 비전을 갖고 살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는 내가 할 수 있는 사업들의 예시를 쭉 나열해보고 그것을 어떻게 하면 키워갈 수 있을지까지 쭉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나는 한 마디 하지 못하고 멍하니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야기를 시작한 지 40분쯤 지났을까? 결국 1시간을 채우지 못하고 나는 방을 나와야 했다. 그러나 그 문을 닫으며 다짐했다. 다음에 이 문 앞에 내가 왔을 때는 나도 성공을 한 상태로 돌아오기로.
다시 서울역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생각이 많아져 고개를 푹 숙인 채 몸을 맡겼다. 창 사이로 지나가는 한강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구나.' '성공으로 가기 위해서는 의사가 되는 것이 끝이 아니구나.' 300 만원으로 알 수 있던 것은 확실히 나는 아직 애송이라는 것이었다. 겸손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직 공부밖에 안 한 사회초년생일 뿐이닌깐. 그러나 부딪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세상은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크고 배울게 많았다!
먼저 인턴으로 일하고 있는 지금도, 나를 계속 알아가는 시간들이기에 생생하게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책과강연과의 인연의 시작이었고, 내가 정한 내 꿈을 시작하는 첫 번째 발자국인, 책 '의사가 되려고요'가 시작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