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 눈물이 많아진다고 하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은 적이 있다. 예전의 나는 왜 어른들이 노래를 들으면서 눈물을 흘리고, 결혼식에 가서 눈물을 흘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맙소사 어느새 나도 눈물이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얼마 전에 깨닫게 되었다. 나는 언제나 냉철하고 근엄한 조종사여야 하는데! 눈물이 흐르는 걸 느낄 때에는 괜히 내 사명감이 감성에 진 기분이라서 뭔지 모를 패배감이 들기도 한다. 나이가 들수록 눈물이 많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공감할 수 있는 경험이 많이 쌓였기 때문이 아닐까?
얼마 전 우연히 유튜브 알고리즘에 한 TV프로그램이 떴다. 한국과 일본의 유명하지 않은 가수들을 초청하여 경쟁을 시키는 프로그램이었는데 그 중 출연자 한명의 노래가 바로 그것이었다. 처음엔 어라? 박미선씨가 노래도 불렀나 하고 봤더니 일본의 한 50세 무명가수였다. 아마 그게 눈의 꽃이었던것 같은데 목소리도 정말 아름답고 그 감정도 참 부드러워서 정말 듣기 좋은 곡이었다. 그렇게 한두번 듣고 말았는데, 이번 일본여행을 가기 전 그녀의 또 다른 경연곡이 알고리즘에 떴다. 제목은 어릿광대의 소네트. 노래를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에 눈물이 고였다. 나는 일본어를 할줄 알기 때문의 그녀의 감정과 노랫말과 멜로디가 어우러져 진한 감동을 받았는데, 댓글에서는 가사를 이해 할 수 없는데도 가슴이 뭉클해졌다는 이야기가 참 많았다.
“우리는 작은 배에 슬픔이라는 짐을 싣고 시간의 흐름을 따라 내려가는 뱃사람들같네
우리는 각각 다른 산을 각자의 높이를 향해 숨도 쉬지 않고 오르고 있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슬픔을, 적어도 웃음이 구원할 수 있다면 나는 광대가 될게
웃어줘, 너를 위해서
웃어줘, 나를 위해서“
사실 원곡의 배경은 어릿광대가 서커스 도중에 큰 사고를 당하고 아이들에게 충격을 주지 말라고 당부하며 세상을 떠나며 부르는 노래다. 가장 힘든건 자신인데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끝까지 웃으며 슬픔을 잊게 해주는 내용이다. 누군가가 힘이 들때 위로하는 노랫말인데 무대 위에서의 이 가수도 웃으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관객과 출연진들은 펑펑 울고 있지만 정작 가수는 웃으며 위로하는 노래를 부르는 그 모습은 내가 봐왔던 그 어떤 무대보다 아름다웠다.
이 노래뿐만 아니라 참 많은 노래를 공연해 주셨다. 하나같이 마음을 울리는 무대이니 꼭 꼭 봤으면 좋겠다. 특히 ’흐르는 강물처럼‘은 정말이지 꼭 들어봐야 한다. 이렇게 극찬하는 이 가수의 이름은 ‘우타고코로 리에’. 본명이 아니라 활동명이고 우리말로 해석하자면 노래부르는 마음이다. 본명은 야츠카 리에. 사실 무명가수이긴 하지만 우리에겐 (적어도 내 나이대에는) 익숙한 겨울연가의 일본어판 주제곡을 부른 가수이기도 하다. 올해 50살인데 기나긴 무명생활동안 끊임없는 디스코그래피로 활동을 해 왔었다. 현재는 도쿄 시모기타자와에서 남편과 라이브바를 운영중인데 마침 이번 일본여행에서 한번 들리려고 했으나 높아진 인기와 함께 바쁜 스케줄로 인해 본인의 공연스케줄이 없어서 굳이 가지는 않았다. 혹시 관심있는 분들을 위해 주소를 남긴다.
空飛ぶこぶたや
일본 〒155-0031 Tokyo, Setagaya City, Kitazawa, 2 Chome1917 サワダヤビル B1
홈페이지에는 공연 스케줄도 있으니 참고하면 좋겠다.
이번 일본여행에서 친구의 가족들과 축하파티겸 저녁을 먹으면서 친구 부모님의 지인이 했던 질문이 있다.
“JJ는 왜 조종사가 되고싶었어?”
입사시험 최종단계인 최종면접에서도 들었던 질문이라 열심히 대답했다. 집이 제주도여서 어릴때부터 비행기 어쩌구 참 멋있는 직업이고 책임감이 저쩌구… 근데 왠지 만족을 하지 못하는 그런 느낌? 나는 태어나서 처음 마셔보는 돔페리뇽에 정신을 못차려서 그런 깊은 생각은 할수가 없단 말이에요. 아무튼 며칠이 지나고 한국에 돌아온 뒤에 친구 어머님께 연락이 왔다. 본인들이 생각하는 중요한 대답은 아마도 ’뜻‘이 있기에 조종사가 되고싶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었다고. 남을 돕고싶다는 그런 뜻,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훈련하고 결국에는 조종사가 되었지만 그 뒤에 있는 진정한 뜻은 무엇인지. 우타고코로 리에씨는 화려한 조명을 받는 유명한 가수는 아니었지만 그녀만의 뜻이 있었다. 노래로 남을 감동시키고 치유하겠다는 뜻이. 아마도 내가 비행기를 조종한다는 것은 그 안에 타고 있는 수백명의 승객들의 꿈 하나하나를 이뤄주는 첫걸음, 혹은 마침표를 찍는 길을 안내하는 뜻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축하해줘서 고마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