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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Park Feb 04. 2023

6. B의 무서움

 이번 여섯 번째 이야기는 사람이야기보다 학술이야기가 조금 더 많이 들어가 있다. 최대한 쉽게 풀어서 설명하려 노력했지만 아무래도 일반분들에게는 생소한 이야기가 많이 나올 테니 아무 생각 없이 읽어주시길 바란다. 만약 이해가 안 된다면 설명을 못하는 내 자질이 부족한 것이라고 생각해 주길 바란다.


 



 세상에는 참 많은 나라가 있다. 각 나라마다의 특성은 매우 다른 듯하면서 또 같기도 하다. 같은 지역임에도 확연히 다른 문화를 가진 곳도 있고 전혀 다른 곳에 위치해 있지만 비슷한 문화를 공유하는 곳도 있다. 지리적으로 봤을 때 어떤 나라는 아주 커다란 땅덩이를 가지고 있어서 작은 나라의 몇십, 몇 백 배의 크기를 자랑하기도 한다.  예전 어떤 코미디 범죄영화에서 범죄자가 미국-멕시코 국경을 딱 한 발자국 넘어가 미국경찰이 체포를 포기한 장면이 나왔다. 물론 영화의 재미를 위해서 각색한 장면이 지겠만 이는 나라마다 다른 법이 존재하고 다른 나라의 법에 끼어들지 못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했다.


 예전 글에서도 말했지만 하늘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길, 도로가 있다. 마찬가지로 하늘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국경'이 있다. 한국말로 하면 공역이라는 뜻의 Airspace가 바로 그것이다. 나는 미국에서 비행을 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을 기준으로 설명할 테지만 우리나라의 공역도 미국의 그것과 아주 비슷한 개요를 가지고 있다. 애초에 한국 항공법은 항공강국 미국에서 가져온 것이 대부분이기도 하고. 


 미국의 공역은 크게 A, B, C, D, E 그리고 G로 나눠진다. F는 어디 갔냐고? 글쎄다, 나도 확실한 자료는 찾지 못했지만 E공역과 G공역의 특징 그 사이 어디쯤 있는 것이기 때문에 미국에선 쓰지 않지만 ICAO(국제민간항공기구)나 다른 여러 나라에서는 쓰이고 있다. 아무튼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은 미국에서 조종사가 되고 싶지 않은 이상 저런 지식에 굳이 연연해할 필요가 없다. 반대로 말하자면, 미국에서 조종사 교육을 받는 사람들은 모두가 필수적으로 알아야 할 사항이 바로 이 공역시스템이다. 그리고 많은 학생들이 이 공역에 관련한 부분을 외우느라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을 위해 쉽게 설명하자면 각각의 공역은 각각의 나라이고 알파뱃 순서가 뒤로 갈수록 소위 말하는 '빡세지' 않은 나라이다. 뒤에서부터 보자면 G는 Uncontrolled area, 즉 관제의 영역을 받지 않는 영역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G = Ground라고 설명하면서 땅으로부터 위로 어느 정도의 낮은 높이 (보통 700 혹은 1200피트까지)라고 설명한다. Uncontrolled, 무법지대라고 번역하면 뭔가 이상하긴 하지만 너무 낮아서 관제 등의 관리를 하지 않는 곳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그다음 E는 G의 바로 위부터 18,000피트까지의 모든 영역 즉 E = Everywhere이다. 물론 뒤에 서술할 D, C, B 그리고 A를  제외한 모든 곳을 말한다. 이곳에서부터는 이제 Controlled area, 즉 관제의 영역에 들어간다. D는 쉽게 이해하기 위해 중소기업, 국내선 위주(D= Domestic) 규모의 공항 주변부를 말하고 C는 그보다 약간 더 크고 혼잡한(C =Congested) 대규모 공항 주변, 그리고 B는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초거대(B =Big) 공항, 예를 들면 뉴욕 JFK 공항이나 시애틀 공항 등이 있다. 마지막으로 A는 해발고도 18,000피트부터 60,000피트까지의 높은(A =Above) 하늘을 말한다. 그럼 60,000피트 위는 어떤 공역일까? 앞에서 설명한 E는 나머지를 제외한 모든 공역이라고 했으니 E 공역이 된다. 눈치채셨지만 B, C 그리고 D만이 우리가 주로 아는, 관제탑이 있는 공항 주변에 설정된 영역이다. 


 각 공역은 진입하기 위한 조건이 모두 다르다. 기본적으로 크게 '조종사'의 자격, 비행기에 실려있는 '장비'의 자격으로 나눠지고 추가로 시계비행 중이라면 기준치의 날씨를 충족해야 한다. 즉 내가 어떠한 공역에 들어가기 위해서 필요한 조종면허를 가지고 있지만 해당 장비가 설치되지 않은 비행기로는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이고 반대로 그러한 장비가 설치된 비행기를 조종하더라도 내 조종사 자격증이 그곳에 걸맞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다는 뜻이다. D나 C 공역은 학생조종사도 들어갈 수 있으며 조금만 공부하고 연습한다면 크게 어렵지 않다. 그래서 대다수의 비행학교는 E나 D, 가끔 C 공항에 있다. 



위에 보이는 파란색 점선으로 그려진 원이 D 공역의 공항을 말한다. 왼쪽 아래에 있는 네모칸 안의 숫자 29는 지상으로부터 2,900피트까지가 그 공역이라는 뜻이다. 즉 공항 중심부로 파란색 원 (보통 반지름 4마일), 그리고 위로는 2,900피트가 해당 공역이 된다. 원통모양으로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이곳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진입 전에 해당 공항 관제탑과 교신하여 허가를 받고 들어가면 된다. 필요한 장비도 웬만한 훈련기에는 모두 장착되어 있는 간단한 기계만 있으면 된다. 여기까진 어렵지 않다. 




 C 공역을 나타낸 그림이다. 여기서부턴 조금씩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한 개의 원통이 아니라 모양과 크기가 다른 여러 개의 원통을 쌓아 올린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왼쪽 아래에 뾰족한 두 개의 첨탑모양 옆에 23/40이라고 쓰여 있는 것이 해당 지역의 공역 높이이다. 즉 저 안쪽의 2,300피트부터 4,000까지가 C 공역이 된다. 거기서 오른쪽으로 쭉 가다 보면 17/40 이 나온다. 이제 주변은 1,700피트부터 4,000피트까지가 C 공역이다. 정 가운데에 있는 SFC/40은 Surface, 지면부터 4,000피트까지가 C 공역이라는 소리다. 이곳에 들어가려면 위에 말한 기본적인 장비와 함께, 공항의 관제탑이 아닌 해당 영공을 관제하는 관제소와 연락을 해야 한다. 뭐, 그래 여기까진 괜찮으니까 크게 무섭진 않다.




하지만 B 공역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자, 드디어 B 얘기가 나왔다. 학생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공역이기도 하고, 애초에 학생조종사는 교관의 허가증이 없으면 진입할 수 없다. 또한 교관들에게도 그다지 유쾌한 곳은 아니다. 위의 사진을 보면 기본개념은 C 공역과 비슷하다. 그러니까 해당 칸 안의 NN/NN 이 높이를 말하는 것이니까 그것만 조심하면 되기는 한다. 예를 들어 4천 피트로 계속 날다 보면 어느 지점부터는 갑자기 B 공역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보니 한시도 긴장을 놓쳐선 안된다. 게다가 큰 공항 주변이다 보니 커다란 여객기가 아주 빠른 속도로 날아다니고 있고 3초간의 공백도 없는 교신이 계속해서 이루어지는 곳이기에 큰 주의를 요한다. 


 하지만 그만큼 도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우리 비행학교의 규칙상 학생을 혼자 B 공역으로 보낼 수는 없지만 학생과 같이 비행할 때 내 도움을 최소화하고 혼자서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지켜보면 학생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나는 학생과 먼 공항까지 가는 비행교육이 필요할 때면 일부러 조금 바쁜 곳이나 커다란 공항 근처로 목적지를 설정하게 한다. 비행 내내 관제소와 교신을 하다 보면 큰 공항 주변부에서는 우리가 익히 아는 큰 항공사들의 교신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잘 맞으면 한국이나 일본 항공사의 교신도 들을 수 있는데 특히 아시아 학생들은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비행을 하다가 자국의 항공기 교신을, 그것도 자신과 같은 주파수에서 들었을 때 매우 큰 감동을 받는다. 그 감동은 자극이 되어 학생들이 비행공부를 더 열심히 하는 촉진제가 된다. 


 나는 내 교육방식을 내 첫 교관에게 많이 배웠다. 학생들을 가르칠 때에는 항상 내가 어떤 방식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때 가장 효율적이었고 재밌었는지 생각하며 그대로 하려고 노력한다. 아시아에서 오는 학생들은 기수제로 오기도 하는데, 앞서 졸업해서 떠나간 선배들이 그다음에 오는 후배들에게 교관에 관해서도 여러 얘기를 한다. 이 교관은 이렇고 저 교관은 저러니까 이 교관은 피해라, 이 교관은 이게 좋지만 저게 나쁘다 등 여러 가지 가십이 오간다는 것은 우리 교관들도 다 알고 있다. 내 성격상 화를 잘 내지 못하고 언제나 긍정적으로 괜찮다고 웃으면서 말하기에 먼저 떠난 학생들에게 나는 소위 천사 교관으로 통하는 모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지금까지 만난 학생들은 대부분 내 가르침을 잘 따르며 무사히 시험에 통과했기에 아직까지는 그 평가를 바꾸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언젠가 나를 이용하려 하는 학생이 보일 때면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는 마음가짐은 가지고 있다. 


글을 마치기 전에 다시 B 얘기로 돌아가자면, 위에 있는 사진은 시애틀 공항의 주변이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곳인데 그 이유는 바로 항공기 제작회사인 보잉의 조립공장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된 얘기는 다음 글에서 풀겠다. 꽤 길어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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