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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Park Jan 27. 2023

5. 선생님? 내가?

 나는 커다란 여객기를 조종하는 조종사가 아닌, 경비행기를 조종하는 비행교관이다. 자기소개에서도 비슷한 맥락의 말을 했지만, 내가 이곳에 풀고 싶은 이야기들은 비행기가 어떻게 움직이고, 여객기는 어떤 절차로 비행을 하고, 승무원은 어떠한 일을 하는 등의 이야기가 아니라 비행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과 부딪히며 소통하며 느낀 감정들이다. 여객기를 조종하는 일명 '라인 조종사'분들은 쉽게 말해 프로페셔널 파일럿이다. 그들은 커다란 최첨단 항공기를 안전하게 조작하여 목적지까지 승객이나 화물을 운송하는 것이 주된 임무이지만 나는 칵핏에 앉아 옆에 있는 학생에게 비행을 가르친다. 비행뿐만 아니라 비행에 대해 아무런 지식이 없는 사람들과 조종간을 같이 잡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재미있지만 때로는 굉장히 힘들다. 오죽하면 교관들은 농담 삼아 '학생들의 목표는 매 비행마다 우리를 죽이려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비행을 시작하기 전인 5년 전에도 그랬고 요즘에는 더욱더 라인조종사분들의 이야기를 흔하게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브런치고 그렇고 유튜브도 그렇고. 하지만 비행교관의 이야기는 그저 선배나 지인들에게 들은 이야기가 전부였기에 내가 쓰는 이 이야기들이 소위 말하는 항덕분들에게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할 수 있기를 바란다.


 비행교관은 영어로 CFI, Certified Flight Instructor라고 한다. 다른 조종 면장과 마찬가지로 구술시험과 비행시험을 합격하면 취득할 수 있고 이제 이 면장을 가지고 취업전선에 뛰어들면 되지만 보통은 CFII 그러니까 계기비행 교관자격증까지 따야 취업의 최소조건이 된다고 보면 된다. 물론 대상은 비행학교이고. 하지만 이 CFI 자격증은 그 취득난이도가 굉장히 높기로 유명한데 뭐 간단하게 생각해 봐도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게 맞다. 잘못된 지식과 비행술을 가르치면 말 그대로 죽으니까. 


 이전까지의 비행자격증; 자가용, 상업용, 계기한정, 다발한정 등의 시험은 말 그대로 비행과 연관된 항목들을 보는 것이었다면 CFI의 시험은 그 모든 지식을 아주 세세하게 알고 있어야 함과 동시에 효율적으로 학생에게 설명하는 능력을 요구한다. 예를 들어 자가용 면장의 구술시험이 "A는 뭐야?", "B가 뭔지 설명해 봐", "C와 관련 있는 관계법령은 뭐가 있지?" 등의 형식으로 출제된다면 CFI의 구술시험은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할머니 학생이라고 생각하고 이 항목을 나한테 설명해 줘" 이런 식의 유형도 나온다는 것이다. 그때까지 내가 알고 있었던 비행지식들을 얼마나 효율적이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정확한지를 파악해 높은 점수를 받아야 합격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CFI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난관은 바로 FOI라는 항목이다. Fundamentals of Instructing 즉 교육개론, 교육원칙 비슷하게 해석할 수 있는데 쉽게 말하면 선생님이 되기 위해 공부해야 하는 교육학 개론이다. CFI를 딴 사람들에게 농을 곁들여 '군대 다시 갈래 FOI 다시 공부할래?'라고 물어보는 건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급으로 결정하기 힘든 그런 질문이다. 실제 미국에서 고등학교 이상의 선생님 자격증을 가지고 있으면 이 FOI 항목은 면제된다. 그리고 다른 주는 모르겠지만 내가 있는 오리건 주에서는 비행교관 자격증으로 취업을 하면 오리건주 선생님으로 정식 등록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나는 내 꿈인 조종사와 선생님을 동시에 이루게 된 것인 셈. 

 

 CFI가 되기 위한 교육과정은 주로 구술시험에 집중되어 있다. 실제로 내 CFI 과정은 구술시험을 위한 준비기간은 4달 정도가 걸렸지만 실비행 총시간은 15시간도 채 되질 않았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보통은 CFI note라는 커다란 바인더를 '집필'하게 되는데 시험에 필요한 모든 내용을 정리해 놓은 것이다. 나는 총 4개 분량, 합 약 800페이지 정도의 바인더를 만들었고 이것은 시험에서도, 지금 학생을 가르치면서도 내 커다란 유산으로 남아 큰 도움을 주고 있다. 후에 CFI를 공부하던 친한 동생들에게 빌려주어 그들을 합격하게 만든 일등공신이 되었으니 나름 자부심이라면 자부심일지도. 


 그렇게 큰 산을 넘어 나는 취업이 되었고, 비행교관이 된 후 처음 배정받은 학생은 이탈리아에서 온 소녀였다. 서류를 보니 나이는 2003년생. 맙소사 2002 월드컵도 못 보고 2006 월드컵도 기억이 없을 거 아닌가? 요새는 2002 월드컵 얘기하면 이미 나이 많이 잡수신 으르신으로 취급된다고 하는데 뭐 어쩔 수 있나 내가 겪은 게 그건데 뭐. 이렇게 어린애가 비행을 시작한다고 하니 참 기특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고. 으레 첫 학생에게는 모든 교관이 그렇듯이 내 모든 걸 쏟아부어 열정의 불씨는 최대 크기가 된다. 하지만 내가 처음으로 받은 충격은 그녀의 영어실력도, 비행실력도 아닌 가치관의 차이였다. 


 이 가치관에 대해 말하려면 일단 내가 어떤 환경에서 비행을 시작했는지 설명할 필요가 있다. 나는 우리나라 K 항공사의 조종사 양성 프로그램에 합격해 그 훈련의 과정으로 동기들과 함께 미국 플로리다로 건너가 비행을 시작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주변에는 아시아인들이 많았고 교관들도 대부분이 같은 프로그램의 선배들이었다. 자연스럽게 소위 말하는 기강은 잘 잡혀 있었고 다들 어린 사람들도 아니다 보니 기본적인 마인드 자체가 군기 딱 잡힌 그런 철저한 모습의 훈련생들이었다. 매 비행 전 철저한 준비와 함께 모든 것이 완벽하게 세팅이 되어 있어야 했고 교관, 아니 교관님이 오시면 준비 완료됐습니다. 브리핑 시작하겠습니다 하고 척척 진행되는 게 일상이었다. 비행 중에도 실수를 하거나 준비를 안 해온 모습이 보이면 가차 없이 그날의 훈련은 취소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들리는 얘기는 그렇다고 했다나 뭐라나. 아무튼 우리는 항공사의 부기장이 되기 위해 그 일환으로 훈련을 시작했다는 점이 이 설명의 요지다.


 나는 그 학생에게 왜 조종사가 되고 싶냐고 첫 만남에 물었다. 지금 당장은 항공사 부기장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고 그냥 일단 시작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우리처럼 자국에서 몇 달 동안 지상수업을 받아 기본적인 지식을 가지고 미국으로 넘어와 훈련을 시작하는 것이 아닌, 말 그대로 하얀 도화지 위에 모든 것을 새로 그려야 하는 상황의 학생이 상당히 많다. 여태까지의 경험으로 아시아인 학생보다 비아시아권 학생들, 특히 미국인 학생이 이 경우의 대다수를 차지했다. General Aviation이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나라이다 보니 그냥 나이 든 분들이 퇴근 후 와서 비행을 배워 자가용 조종사 자격증을 따는 경우도 아주 흔하다. 내 학생 중에도 있고. 우리나라로 치면 아버지 또래분들이 퇴근 후에 시간 내서 뽀-트 자격증 따는 것과 비슷한 이미지다. 그렇다 보니 해당되는 학생들을 가르칠 때에는 신경 쓸 것이 확실히 많아진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내 도전욕구를 자극한다. 그래 내가 0부터 100까지 (영어로 하면 zero to hero, 내가 좋아하는 말이다.) 널 완벽하게 만들어주겠어라고 생각하며 수업에 임한다. 


 학생을 가르치기 전까지 내가 알던 조종사의 모습은 커다란 보잉기나 에어버스를 조종하며 승객 수백 명을 실어 나르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뿐이었다. 하지만 이곳에 와서 비행을 새로 시작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오히려 그 외의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미국 내 한정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보통 아시아권 학생들에게 나중에 돌아가면 뭘 비행하고 싶어라고 물으면 저는 787을 타고 싶어요, 저는 330이 좋아요 라는 말을 한다. 어느 날 내가 정말 아끼는 미국인 소년 학생에게 같은 질문을 했더니 옆에는 여자친구를 태우고 뒤에는 부모님을 태워 시애틀에 가서 근사한 레스토랑에 가고 싶다는 대답을 들었다. 가치관의 차이를 본 순간이었다.


 물론 아시아권 학생들도 저런 꿈을 가지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조종석에 가족을 태우고 내가 비행기를 몰아 여행을 다닐 수 있다니. 하지만 나를 포함한 그들 모두는 고국으로 돌아가 라인에 들어가서 멋진 조종사가 된다는 꿈을 결코 포기할 수는 없기에 그 누구의 꿈의 무게도 저울질은 하지 않겠다. 아무튼 이러한 가치관의 차이, 나아가 문화의 차이는 학생에 따라 지도방식을 바꿔야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지만 나는 그것이 좋다. 지상수업 스케줄을 잡아놓고 학생이 기다리는 브리핑 룸으로 들어가면 다리를 꼬고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며 "Hey JJ, wassup"이라고 인사를 건네는 내 미국인 학생이 나는 싫지가 않다. 비행 중에 자꾸만 실수가 나와 익살스럽게 미안하다고 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그가 첫 솔로비행을 했을 때가 떠오르면서 너도 어느새 이렇게 여유롭게 비행을 즐기는구나 하며 나도 모르게 피식 웃고 'one more time'으로 또 기회를 주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학생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더 자세하게 쓸 예정이다. 그들과 비행하며 겪은 일들이야말로 내가 글로 남기고 싶은 가장 소중한 추억이니까. 


 어찌 됐든, 비행하는 선생님. 나는 내 직업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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