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다면 길었던 또 하나의 단계가 끝이 났다.
2019년 4월, 나는 학생으로서의 조종사를 졸업했다.
프리솔로, 자가용, 계기면장, 상업면장, 그리고 다발면장까지
이제 어느 정도는 쭈뼛거리며 요크 좀 잡아봤다고 조심스럽게 말할 수 있는 단계를 지났다.
누군가가 나에게 제로베이스에서 저 자격증들을 손에 얻기까지 가장 인상에 남는 일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 스스로의 성장이라고 말한다.
비행기를 하늘에 날리고 땅에 내리는 일은 공부와 연습을 통해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무인기를 조종하는 것이 아닌, 사람과 함께 날아다니는 일을 한다.
내 모든 비행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Safety를 외치는데 그것은 단지 비행기만 안전하게 다뤄달라는 뜻도 아니고
연료설정을 잘해서 기름값을 아끼라는 말도 아니고 시간계산 잘해서 빨리 다녀오라는 말도 아니다.
나 자신과 더불어 같은 비행기에 탄 사람들이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돌아오라는 뜻이다.
비행의 안전에 직결되는 요소는 셀 수 없이 많은데, 그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멘털 즉 정신상 태이다.
뭐 군인정신 이런 것은 아니고 내가 온전히 이 비행에 집중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것이 중요하다.
매 비행에 나가기 전 우리는 많은 요소를 체크하고 그것에 점수를 매겨 일정 점수를 초과하면 비행을 할 수 없다.
각 요소는 Experience, Aircraf Loading & Performance, Weather, Environmental Factors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첫 번째 항목은 바로 Personal Facts이다.
전날 몇 시간을 잤는지, 오늘 몇 시간을 비행했는지, 이 비행이 급한 것인지, 술은 마셨는지, 아픈 곳이 있는지, 물은 얼마나 마셨는지 등의 항목을 말한다. 그런데 이 중에 가족 혹은 주변사람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를 묻는 항목도 있다. 조금 뜬금없는 질문일 수도 있겠으나, 그만큼 정신상태에 영향을 크게 끼치는 요소이기 때문에 비행을 안전하게 완수할 수 있는지에 직결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모든 것에 점수를 매겨 위험점수를 초과하지 않았다고 해도 하나의 개별항목에서 위험도가 높게 나온다면 비행은 허가되지 않는다.
결국 비행은 사람이 시작하고 사람이 마무리한다는 것이다.
나는 비행교육을 받으면서 내 교관들과 동료들 그리고 학교 관계자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그들이 내가 한 번의 실패도 없이 여기까지 달려올 수 있게 해 준 원동력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비행 조금 더 하고 싶다고, 조금 더 빨리 진도를 나가고 싶다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비행학교의 특성상 자신에게 뭔가 떡이 떨어진다면 그건 다른 사람이 미쳐 먹지 못한 싱싱한 떡일 확률이 굉장히 높다. 성장하지 못한 예전의 나였으면 나도 그 떡을 받아먹었겠지만 비행을 거듭하면서 배운 것은, 그렇게까지 해서 조금 더 빨리 나아간다고 해도 그게 과연 좋은 조종사인지 스스로를 납득시킬 수 없다는 사실이다.
내가 학생을 졸업했다고 해서 학생조종사가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교관과정에 들어가 나는 다시 가르침을 받는 학생이 되었고, 교관과정을 하며 학생을 가르치고 있어도 나 스스로가 끊임없이 공부하는 학생이 되었다. 그리고 내 목숨뿐만이 아닌, 학생의 목숨까지 책임지는 비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수 백명의 승객을 책임지는 성장한 조종사가 되기 위하여 나는 또 한걸음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