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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환 Jul 10. 2024

화양연화(華樣年華)

습작

강을 거슬러 올라간다.

초가을의 볕이 만져지는 날씨에 한강 변을 따라 밀리는 차들을 저 멀리 두고 동쪽으로 계속 달리고 있었다.

인환은 한동안 아무런 대화도 없이 1시간을 넘게 달려온 인내가 바닥이 났는지 입안이 말라간다.

차창을 때리는 바람 소리에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모자를 눌러쓴 아버지가 창문을 닫았다 열었다 할 때마다 외마디 비명 같은 바람 소리가 쏟아져 들어왔다.

"차 안에서는 모잘 벗으시죠. 답답하시지 않으세요?"

"냅 둬"

혁수의 늙고 마른 얼굴에 모자마저 헐거워 보였다가 그나마 남은 머리카락이 몇 가닥 모자 밑으로 삐죽 내려와 있다. 회갈색의 마른 머리칼이 시든 샤프란의 줄기를 닮아 뽑아내야 할 듯 늘어졌다. 그 위로 검은색 캡 위에 쓰인 “HID“라는 문구들도 눈에 거슬렸다.

4년 전 다시 시청 앞의 거리에서 아버지를 만났을 때도 검정 모자는 아버지의 신체가 된 듯 꾹 눌러서 머리를 덮고 있었다.

그때 나는 외면을 하였지만 아버지가 나를 보았을지 어떠했는지 알 수가 없다.

시끄러운 확성기의 소음을 따라가는 노인들 틈에서 머리 하나 더 큰 아버지의 뒷모습이 행렬에 밀려 사라져 갈 때까지 뒤에서 조용히 지켜보았다.

어차피 서로를 다시 찾고 보고 싶은 마음이 있을 리 만무했으니 어쩌면 그 모습이 생전에 마지막 모습이라 생각을 했다

명치 끝이 싸늘해 왔다그래도 피붙이라 목 속 어딘가 멍울이 자꾸만 커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날 저녁은 꽤 과음했고 걱정되어 물어보는 아내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시간이라는 것이 치유도 망각도 또 살아가야 한다는 당장 현실이라는 자각도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다시 아버지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은 늦은 여름이었다.

어린 시절 행복했던 추억을 물어본다면 갑자기 당황해질 것이다.

기억나는 아니 기억하고픈 시절이 있기야 있었을까?

여전히 뻣뻣이 당당할 만큼 당신의 가족들을 그저 가끔이라도 이 양반은 생각하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끔찍이도 싫었다고 생각된 얼굴이 룸미러에 자꾸만 보이기 시작했다.

차는 막힘없이 곧은 길을 달리는 데 인환의 마음은 두 겹 세 겹 구겨져 콩 자갈이 껴있듯 이물감으로 입안이 껄끄러워진다.     

차는 6번 국도 양평을 지나 홍천으로 들어가자, 도로변으로 삐죽이며 아파트 머리들이 들이밀고서 있다.

"창문 좀 여시 져"

도대체 무슨 담배를 피우시는 건지 어린 시절 소독차를 연상시키는 푸른 연기가 찐득한 냄새를 품고 차 안을 휘몰아 감는다.

혁수는 마지못해 창문을 열고 여윈 손가락을 툭 하고 떨어질 듯 말 듯 위태로운 담뱃재를 창밖으로 집어 던진다.

인환은 뽑은지 얼마 안 된 차에 담배 똥이 튈지 싶어 짜증이 올라왔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감추고 덤덤히 나름 상냥히 말을 건넸다.

"요즘 담배 다들 끊는데 여태 못 끊으신 거예요. 그리고 안에 커피캔이 비었는데 거기다 버리시지요"

"바람이 차다 몸이 이젠 예전 같지는 않구나!"

각자가 혼잣말하듯 하고픈 이야기만 하고 서로가 굳이 대답을 신경 쓰지 않는다.

힐긋 옆을 돌아보다 덥수룩한 아래턱을 매만지는 아버지의 마른 손가락을 보고 폐암으로 입원한 큰아버지를 찾아갔을 때 기억이 났다.

마른기침을 연신 하며 천연덕스럽게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이는 큰아버지에게 남방 주머니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 불을 붙여 꼽아주던 아버지의 손가락이 떠올랐다.

나중에 찾은 형이라서 애틋함이 없는 것은 아닐지 아버지의 비정함인지 상식적이지 않아 보여 어린 나는 걱정을 했다.

아버지는 고아인 줄 알고 자라왔다고 했다. 전쟁통이니 그 험한 시절이 끝나도 세상은 북새통이었고 당신이 버려진 것인지 어버린 것인지 그것으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그렇게 엉뚱하게 흘러갔다고 술을 먹으면 옛날이야기 중 빠지지 않는 레퍼토리였다.

나이를 먹고 어른이라는 것, 같은 남자라는 것이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 통한다는 것을 알았다. 더욱이 삶의 어는 시점을 지나서 세상의 걱정과 염려는 없었다.

인환은 오른팔을 뻗어 뻐져대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다 유에스비를 찾아 꼽았다.

"고요한 내 가슴에 나비처럼 날아와서

사랑을 심어놓고 나비처럼 날아간 사람

내 가슴에 지울 수 없는 그리움 주고 간 사람

그리운 내 사연을 뜬 구름아 전해다오.

사랑은 얄미운 나비인가 봐"

노래가 흘러나오자 혁수는 반쯤 감은 눈이 살짝 떠지고 들릴 듯 말 듯 옹알이하듯 입도 열지 않고 흥얼거렸다.

인환은 아버지가 부르는 노래를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그냥 낮은 읊조림이나 흥얼거림이 최대치였다.

내비게이션의 여자 목소리가 들린다.

끝에 내리는 어조의 말투는 티브이에서 본 북한의 아나운서 목소리인 듯 또박또박 정확한 발음이 오히려 어색하게 들린다.

11시였다.

점심시간에 맞춰 뭐라도 먹으려면 조금이라도 일찍 도착 같다.

아버지와의 나들이나 가족들과의 여행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집안 형편은 꾸준하지 못해 널뛰는 편이었다그나마 좋았던 시절에도 고급스럽거나 맛집인 적은 별로 아니거의 없었다.

5분을 빨리 출발하면 한 시간을 벌 수 있다는 아버지 신념이 확고해서 어중간한 시간의 끼니를 건너뛰기가 예사였다.

시간이 충분하여도 아버지는 허름하고 사람이 없는 식당만을 고집했다.

어머니의 불평을 치켜뜬 고리눈으로 잠재우고 나와 동생은 그저 숨죽이고 가만히 뒷좌석에서 앉아 있었다.

혹가다 음식이 조금 늦게 나오면 성질을 내고 "여긴 틀렸다틀렸어가자." 한마디하고 자리를 박차기 일쑤였다

처음 장만한 중고 소나타를 끌고 드라이브를 간 날 우린 외관이 그럴싸하고 예쁜 식당을 지나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짜장면을 배달시키고 첫 드라이브의 여운을 짜장면에 같이 비볐다.

말없이 각자의 그릇을 들고 짜장은 순식간에 입 속으로 들어갔다.

그 시절 무언가 아쉽고 헛헛한 감정의 정체는 더 알려 하지 않았다.     

"아버지국도로 천천히 구경하시는 것도 좋은 데 시간이 너무 걸릴 거 같아요곧 밥때도 되는데 고속도로를 탈게요."

"어 그래 니가 알아서 해"

좋지 않은 몸을 걱정해서 다 말리는 걸 우기고 나온 사람치곤 남 일인 듯 무심하기만 하다.

말라버린 어깨 위에 더 여윈 얼굴의 옆모습이 괜히 찡했다.

애증이라는 단어에 사랑은 이미 지워지고 남은 한 글자만 남은 존재아버지는 그런 존재였었다.

돌아가신 어머니는 원망만 남은 채 짦은 생을 보내셨고 옆에서 나는 어머니의 증언들을 가슴에 새기고 지켜본 증인으로 살길 강요받았다.

어머니의 그런 모습도 싫었지만 내게 혼자 버거운 짐짝들을 다 짊어지라 얹어 놓고 떠나버린이기적인 아버지는 원망과 증오심의 대상이었다.

그런데도 일말의 연민이 남아있다는 것을 스스로 받아들이기 두렵고 무서웠다.

어쩜 나는 아버지를 미워한 적이 한 번도 없었는지도 모른다.

차는 고속도로를 진입해서 달리고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길고도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을 들어간다.

요란한 응급사이렌이 귓가를 때리고 알로기는 무지개들이 빛을 내고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길 몇 번 반복이 된다.

모든 것이 허상일 것이다.

깨어있으라,우리는 흔들리지 말고 이렇게 곧게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자각시키는 터널 속 요란한 경고들이 지나가고 아버지와 나는 시간을 거스르고 아주 먼 그 옛날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터널이 끝나는 곳그곳을 빠져나온다면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 있을 것만 같았다.

양양IC를 빠져나와 속초 시내를 향했다

생선구이 골목의 어귀부터 차들이 밀렸다예전같이 잣다른 식당들이 옹기종기 붙어있던 기억만 있다가 다 달라진 풍경에 조금 당황스러웠다.

차를 길가에 대자마자 억지로 몸을 일으켜 휘적휘적 걸어가는 아버지들 부축하고 바로 앞의 식당을 들어갔다.

예전의 주인 할머니는 보이지 않는다아마도 돌아가시고도 남을 나이인지라 안 보이시는 게 당연한 일이지만 아버지의 추억을 끄집어내 줄 사람이 없는 게 아쉬웠다.

아직도 가게의 절반이 평상처럼 높게 공구리 되어 장판이 깔려 있었다불편할듯 한데 혁수는 그 위 테이블이 있는 곳으로 올라가려 한다.

메뉴판 위의 가격은 고친 지 얼마 안 되었는지 스티커로 덧붙여 놓았다.

인환은 벽면에 메뉴판을 한참 바라보았다예전과 별반 다르지 않은 메뉴의 가격이 많이 달랐다.

"곰치국 드실 거지여?"

"그래 너는 너 먹고 싶은 거 시켜라."

곰치 매운탕과 생선구이를 시켰다.

돌아가신 예전 주인 할머니만큼 나이를 먹은 할머니분이 주인이셨다.

써빙을 도와주는 젊은 여자는 말이 없이 물컵과 생수통을 가져오기 바쁘게 반찬과 수저를 테이블에 조용히 내려놓았다.

자세히 보니 한국 사람이 아닌듯 했다.

"어디에서 왔어태국베트남인가."

아버지는 평소와 달리 써빙하는 아줌마에게 살갑게 말을 건다.

"베트남 사람입니다"

제법 똑똑히 한국 사람처럼 답을 하고 주방으로 들어가는 종업원의 뒷모습을 아버지는 한참 쳐다 보았다.

"베트남 사람이구나 베트남

인환은 젊은 여자의 뒷모습에 눈을 못 떼는 아버지가 당황스럽고 창피해져 아버지에게 슬쩍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요즘은 외국인들이 식당에서도 일을 많이 해요지방일수록 사람이 귀하니 외국인들이 없음큰 식당들이 장살 못할 정도라고 하네요아니면 키오스크를 써서 주문하고 셀프 서비스하고  종업원 대신 써빙로봇으로 바뀌고 있어요,"

아버지는 나의 말을 듣는 듯 마는 듯 곰치매운탕에 당신 숟가락을 넣어 헤집고 있다.

"제가 떠드릴게요잠시만요

오랜 시간이 지나서 일지 모르겠다 인환은 아버지의 숟가락이 냄비에 섞이는 것이 많이 불편했다.

몸통을 한 국자 떠서 그릇에 퍼 담았다한 국자 더 떠서 맑은 지리 국물을 부었다.

집안에서 꼼짝을 안 하시던 아버지가 놀러 가서 라면을 퍼 주셨던 기억이 났다.

"예전에 가족들끼리 생선구이집 왔던 기억 나세요?"

"응 기억 나지 인석이가 생선구일 잘 먹었지."

"동생은 많이 바쁜가같이 왔음 좋을 텐데 아니다 뭐 좋은 일이라고.”

"인석이랑도 잘 지내지?"

"네 그럼요 인석이는 일이 생겨서 같이 못 왔지만 서울 가서 보면 되져걱정마세요"

아버지는 같이 못 온 동생 녀석이 미련이 남았나 보다.

다 커버린 중년의 동생을 이제는 형이라고 이래라저래라하기가 쉽지 않은 것을 아버지도 모르시지는 않을 거다.

그때는 나보다도 많이 어렸기에 아버지의 부재에 대한 원망이 나보다 그만큼 더 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소주!”

천천히 두어 숟가락을 떠 먹더니 아버지는 태연하게 술을 찾으신다.

지금 아버지 술이 가당키나 해요아버지 환자예요.”

괜찮아 나도 다 알아어차피 얼마 안 남았어지금 죽으나 몇 달 후에 죽으나 뭔 차이가 있어

아버지의 말에 달리 반박할 말이 없었다.

이번 여행의 의미도 그저 아버지가 원하는 추억과 정리의 시간을 도와드리고 싶었을 뿐이다.     

아버지와 재회는 병원에서 온 한 통의 전화 때문이었다.

오혁수씨 아드님 되시지요?”

네 누구신가요?”

네 저는 동심병원 원무과장 김치열이라고 합니다다름이 아니라 아버님이 지금 많이 위중하셔서 수술이 급한데 보호자분이 필요해서요

네 제가 아들이 맞긴한데 재가하셔서 부인이 있으실 텐데요?”

아 그런가요서류상으론 지금 혼자 사시고 다른 가족이 없습니다그래서 아드님께 연락드리게 된 거고요

옆에서 듣고 있던 아내의 눈이 똥그래졌다이내 아내는 두 손을 각개 표시를 하며 연신 싸인을 주고 있다.

혹시 병원비 떄문에 그런가요?”

아 그건 아니구요 아버님이 국가유공자분이셔서 병원비는 별로 안 나왔습니다지불도 다 하셨구요자세한 건 오셔서 들으시고 지금 암이 발견되셔서 말기이신데 누군가 가족분들이 좀 도와주셔야 할 거 같네요

아 네 네 네 알겠습니다

인환은 전화를 끊고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아버님이 돌아가신거래? ”

아니야 수술을 해야 하나봐 재혼을 하신 줄 알았는데 혼자밖에 없다시네 보호자가 없어서

아버님도 너무 하시네 돈있을 때 처자식 다 버리고 집 나가시더니 결국 늙고 아프니 자식 찾으시네 그래도 아버지니까 가보긴 가봐야지 아주버님한테도 연락해 당신 혼자 갈거야?”

어 그래야지 다녀 올께 늦음 그냥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

아냐 가서 보고 전화줘요.”

차에 시동을 키고 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나보고도 가지 말라며 펄쩍 뛰는 동생을 진정시키고 내가 일단 가본다고 하고 병원으로 차를 몰았다.     

술 소주 달라고..”

암이 아무리 무서워도 아버지를 이기지는 못하는 듯 술을 빨리 주지 않는다고 성질을 부리시는 아버지 모습이 반가웠다하지만 이내 그런 감정보다는 애잔함이 스쳐 갔다.

잔에 소주를 반 잔 부어드렸다.

조금씩 반주로 드세요욕심부리지 마시고 이제 술은 못 이기세요 
 에이 더 부어 누가 술잔을 따르다 마냐

인환의 손에 쥔 병을 붙들어 끝끝내 한 잔을 마저 따랐다.

입안에 홀랑 부어놓고 인상을 찌푸리신다.

알싸한 알콜들이 목울대를 쉽게 넘어가지 않는지 자라처럼 아버지의 목이 위로 쑥 댕겨졌다가 내려왔다.

구워진 임연수와 가재미들을 집어 들었다가 내려놓고 이내 곰치지리 국물을 두어 숟갈 떠먹고 수저를 내려놓았다.

고맙다...”

그냥 딱 한마디 말이었다.

굳이 대답을 해야할까 아무말 없이 인환은 식어가는 생선을 발라서 한쪽에 모았다.

혁수는 어느새 술병을 들어 두 번째 잔을 따르고 혼자서 마신다.

술은 고정도만 하세여 생선도 좀 드시구여

어설프게 쥔 쇠젓가락을 들며 생선을 집어 들었다혁수는 얼굴이 불콰해지고 눈가가 촉촉해졌다.

내가 아빠가 젊었을 때지 술집을 가면 양은 젓가락을 모두 감춰놓았어내가 이걸 건너편에 있는 놈에게 탁 던지면 이마가 숭숭 뚫리는 거야 나무젓가락이 지금은 싸지 그땐 비쌌거든 그래도 내가 오면 나무젓가락을 꺼내줬어.’

이걸 반갑다고 해야 할까 40년이 다 되어가는 똑같은 레퍼토리를 이 자리에서 인환은 또 듣는다

아버지가 특수공작원으로 군대를 다녀왔다는 것은 나중에 다 커서 알았다.

자신이 고아로 버려지지 않았다면 그렇게 그런 군대에 갈 일도 없었을 것이고 당신은 머리가 좋아서 좋은 대학에 갔었을 텐데 억울하고 기구한 팔자라고 한탄하였다.

팔뚝과 등판에 흉터를 보이며 군대에서 훈련과 죽음을 넘나들며 간신히 살아남았다고 이야기했다물론 취중에서만이고 술이 깨면 다른 사람이 되었다.

어린 시절 인환은 아버지가 강하고 멋있는 남자라는 자부심이 있었지만그것이 별로 큰 자랑거리가 아니라는 것을 나이를 먹어가며 알게 되었다.

평범한 그럭저럭 행복하다고 할 가정을 깨뜨린 것도 아버지의 군대였다.

좀 더 일찍 그런 혜택을 주고 인정을 해 주었음좋았을 것을 한 참 후에나 아버지는 국가유공자로 인정을 받았다.

어머니나 우리로서도 아쉽기는 마찬가지였다.

국가유공자의 혜택도 필요할 땐 못 받고 위로금과 연금이 나왔지만아버지는 가정에 있지 않았다.

자식들을 다 키웠으니자신은 자신대로 행복을 찾아 살겠다는 말을 남기고 어머니에게도 사는 집이 있고 아들 둘이 있으니 나를 붙잡지 말라 하고.

화를 내시고 붙잡을 만도 한데 어머니는 그러지 않으셨다이런 날이 올 것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처럼 너무 덤덤하셨다.

그렇게 멀어진 아버지를 우리 형제나 어머니는 찾지 않았다.

일찍 따로 나와 독립한 나는 아버지를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었다어머니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아버지를 그냥 보내는 것인지 꼬치 캐물어도 묵묵부답이었다.

어느새 현실을 받아들이고 남은 가족들에게서 아버지는 금기된 단어가 되었다.

부러 들려오는 소식도 귀를 막았고 우리 소식도 아버지에게 가게 될지 조용히 살아왔다     

동해바다가 좋긴 좋네요

속초를 지나 고성의 해안가에 차를 세우고 바다를 보고 있다.

저 어릴 때 동해로 피서간다고 해서 동네 아이들이 부러워했어요

식구끼리 다 같이 여행을 며칠씩 같던 기억이 동해였던 거 같네요매년 아마도 3년을 연달아 갔었죠?”

그래 차를 첨 사고 많이 다녔지
 혁수는 바다에 이는 파도의 분말을 바라보며 옛 생각들을 조금씩 끄집어내려는지 이마를 찌푸리고 있었다.

혁수와 바다를 번갈아 보던 인환은 긴 세월이 지나서 다시 지난 추억을 찾는 혁수의 마음이 궁금했다.

행복하셨어요?”

혁수는 말이 없이 그냥 담배를 입에 물고 가만히 바다만 바라보았다.

저희한테는 다 키워 주셨으니그것만으로 감사하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아버지가 그래도 그 시절을 기억하고 추억하시는 것만으로도 저는 괜찮습니다.”

무엇인가 지나갔어도 아름다운 것을 같이 나눌 수 있는 사람이서 아버지를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차라리 그냥 지나간 일이고 시간일 뿐이다,

어른이 되고 아이를 낳고 시간이 흐른 후에 누가 누구를 용서하고 용서를 구하고 할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런데 어머니에게는 아버지는 평생 마음에 빚을 못 갚고 가실 거예요저는 여기 동해의 바닷가가 아니라 어머니께 한번 가자고 하실 줄 알았어요.”

음 너희 엄마에게 미안하지 내가 곧 따라갈 거니 거기서 사괄해야지.”

인환은 시간이 어정쩡해져서 마냥 바닷가에 있기도 갑갑해지기 시작했다.

속초를 가봐야 한다고 하신 게 그냥 옛 생각이 나셔서 인가요?”

혁수는 인환을 한참 바라보다가 마른 기침을 했다얼굴을 돌리지 않고 바다를 응시하다 뜸을 드리고 있다 말을 꺼냈다.

네게 부탁을 할일이 아닌데 들어주어서 고맙다 그리고 미안하다내가 누구에게 부탁을 할 사람이 없구나 나를 어디좀 데려다 다오.”

속초까지 왔는데 어디 또 가시고 싶은 곳이 계신건가요멀리 가기엔 이미 시간이 늦습니다아버지도 다시 요양병원으로 들어가셔야 하구요 오늘중으로...”

멀지 않아 여기다

혁수는 주머니에서 접어진 종이쪽지를 인환에게 건넸다.

직접 옮겨 적은 듯 한 종이 위로 삐뚤하게 주소가 적혀있었다.
 죽왕면 가진리 산 15-26, 여긴 어디지요?”

내 집이 거기 있다.”

인환은 핸드폰을 열어 검색을 해보니 공원묘지 근방이었다.

산소를 미리 사두셨어요아버지 지금 누구 같이 사시는 분도 없으신데 저희가 어머니 옆으로 모실게요뭐 하러 이렇게까지 하세요왜 그러세요?”

인환은 은혁이 그렇게 까지 어머니를 죽어서도 피하는 건지 참아왔던 화가 나서 더 견디기 힘들었다.

가봐 네게 너무 미안한데 부탁하마

이유라도 좀 알려주세요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뭔 큰 잘못이라도 하신 건가요아버지는 그동안 십 여년 동안 자식들까지 연 끊고 안 보고 싶으셨어요저는 제 상식으로 아버지를 이해할 수가 없어요왜 그러신 건지 말 나온 김에 좀 들어 보져여자가 생겨 이혼해 달라고 하셨다면서요새장가 가셔서 그렇게 좋으셨던 거예요그럼 그 젊은 여자는 어디 갔어요왜 이렇게 혼자 이 꼴로 사셨던 거냐구요?”

고만해 일단 가봐 날 데려다 줘라 가서 이야기 해줄게

인환은 화가 풀어지지 않았는지 혁수가 차에 오르는 것을 그저 지켜만 보다 운전석에 올라 차를 몰았다

신경질적인 엔진소리가 나자마자 차는 사라져 갔다.     

고성으로 올라가는 국도에서 바닷가를 등지고 안쪽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묘지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땅은 거칠고 황량하여 꾸며진 묘역의 공원이 더 생경스러워 보인다.

차는 묘지 공원을 지나 길가에 작은 집앞에 섰다.

벽돌로 지은 낡았지만 아담하고 정성이 들여보이는 집을 혁수는 가리킨다.

여기다 여기 맞아

허리춤 까지 올라온 쑦대와 개망초를 헤집고 혁수는 기운이 돌아온 것 처럼 뚜벅뚜벅 걸어간다녹슬어 열릴가 싶은 자물쇠를 돌리자 문이 열렸다.

마른 곰팡이 내가 열린 문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작은 거실과 방 두 칸한동안 사람이 살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주려 거미들이 여기저기 집을 지어 놓았다.

혁수는 허옇게 먼지가 싸인 의자를 딱지도 않고 털썩 앉았다.

옆에 의자를 가르키며 인환에게 앉으라는 듯 손을 끄덕렸지만 인환은 못 본척 서서 혁수의 입을 노려본다.

저 여자인가요아버지의 새 부인이?”

혁수의 등 뒤로 벽에 걸린 액자 속에서 혁수와 이국적인 여성이 같이 앉아 있었다 가운데 아이는 채 걸음마를 시작할 듯한 꼬마가 하얀 셔츠를 걸치고 서있었다.

“ 네게 이런 부탁을 하는게 아닌데 그래도 어쩔 수 없구나

맞다 내 아내고 아니 아내였고 아들이다 네가 인정할지 않할지 모르지만 네 동생이다또 하나의 동생..”

인환은 배신감이 차올라 당장 이집에서 박차고 나가고 싶어졌다반면에 알 수 없는 수수께끼를 끝까지 알아보고픈 마음도 점점 커졌다지금 이상황이 도대체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네 그래서여

내 새부인은 내게서 떠나 버렸다 도망간건지 무슨 이유인지 알 수가 없어그 어린아이까지 데리고 사라졌어.”

나는 차라리 홀가분하다고 느꼈지 어차피 내가 가정을 가지고 애비노릇 남편노릇을 잘 할거라 생각치 않았으니까 그런데 죽음을 목도하고 삼도천에 발을 담그고 나오니 마음이 약해져 

혁수는 인환의 안색을 살피며 천천히 말을 이거갔다.

이 집은 사진 속에 그 아이에게 주었음 한다얼마 돈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가 태어나고 살았던 집이니까 지 애비가 누구라는 것도 알아야지

고개를 돌려 여자를 가르킨다, “ 저여자는 수자이야 이름이 수자이 태국여자다 옛날 여권이 저 방안에 있을거야 저이를 찾아야돼 아이는 인철이라고 불렀는데 채 세살이 되기 전에 사라졌어 지금 아마도 한국에 있으면 중학교 아니 고등학생이 되었겠지

하 흐흐흐 정말 욕심이 많으시고 참 염치가 없으시네요그래 저희 형제는 자식이 아닌가요 이제 돌아가시게 되니 이복동생을 찾아서 유산을 남겨주라 그걸 부탁이라고...”

너흴 아들이 아니라고 여긴적은 한번도 없다 나도 사람인데 길은정 같이 한 시간이 어찌 안 그립고 안 기뻤겠냐?”

난 너희를 내 호적에서 뺸적이 없다 내가 죽음서울에 있는 작은 빌라는 니들에게 줄 생각이다.” 

만약 니 동생을 찾지 못하면 이 집도 모두 알아서 처리해라

난 내가 알아 6개월씩 살지 못해 시간이 없다 인환이 네게 이런 부탁을 해서 미안하다 

이야기를 마친 혁수는 안색이 급속도로 창백해졌다퀭한 눈가에 눈물이 그렁거리는 것을 보고 인환은 더 이상 혁수를 바라보기 힘들어 졌다.     

요양병원의 호스피스 병동은 늘 만원이었다

혁수는 운이 좋은지 국가유공자라 혜택이었는지 다행히도 3인실에 자리를 잡았다.

3인실 4인실 6인실이라고 해도 큰 의미가 있는 일은 아니다 대부분 1인실로 결국 얼마 안가 이동을 하고 그리고 그것은 마지막 거처가 되었다.

꼬장꼬장하고 막무가내인 혁수가 혹시 다른 환자들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을까 인환은 걱정을 했지만 그러기에 혁수는 점점 사그라들고 있었다.     

”오늘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사랑의 하나님,

암으로 고통받는 형제를 위해 기도합니다.

전지 전능하신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픔과 고통을 물리치시고 우리 형제님에게 굳건한 믿음과 용기를 주소서 그로하여 사랑의 주님의 뜻대로 끝내 이겨내어 치료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질것을 믿사옵니다.

그 가족과 친구들이 그들의 곁에서 함께해 주도록 인도하시고, 또 그들이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며, 힘든 시간을 함께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사랑의 하나님, 고통받는 모든 환자들이 건강을 되찾고, 새로운 삶을 누리게 하소서.

하나님의 부름이 있을지라도 우리 모두 천국에서 다시 만날 날을 간절히 기약하오니 

이 모든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인석은 마지못해 인환때문에 입원실찾아왔다 방안을 가득 채운 사람들의 모습에 눈살을 찌푸렸다.

”내주먹이 하나님“이라던 혁수가 입을 꾹 다물고 집사인지 권사인지 모를 아주머니가 잡아주는 손을 꼭 붙들고 아멘 아멘 하면서 누워있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정신없는 기도 시간을 피해 복도로 나오자 인환이 보인다.

”형 꼭 이렇게 까지 해야 돼? 난 모르겠어 형이 너무 오버하는 거 같아“

”미우나 고우나 우릴 낳아 주신 아버지야 너도 당연 봐야지 얼마 사실지 모르는데“

”낳아 주신 건 아니지 아 물론 키워주신 거 감사 하지 그래도 진짜 자식 찾아 연락하고 보내드리면 되는 거 아냐 싫다고 떠나가신 분 우리가 무슨 재산이나 노리는 사람도 아니고 고만 해“

”너 무슨 소리야? 낳아주신분이 아니라니?“

”아니 몰랐어? 아 그랬구나 어머니가 아무말 말라셔서 그래도 난 형도 알고 있는줄 알았는데 .....“

”뭐? 똑바로 얘기해봐 아버지가 우리 친아버지가 아니라는 거야?“

” 어 정말 몰랐던 거야? 어머니가 우리 데리고 아버지랑 재혼 하신거야 아니 어머니는 그래도 큰아들인데 형한테도 이야길 안 했어?“

인환은 어질어질해지는 머리를 부여잡고 아버지의 모습들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교회에서 기도를 해주러 온 일행들이 나오고 있다.

기다렸디는 듯이 스님과 자원봉사하러 나온 보살아주머니들이 우루르 입원실 안으로 들어간다.

인환은 자신의 머리가 아픈것이 기도소리때문인지 아니면 염불목탁소리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나무사만다 못다남 옴 도로도로 지미 사바하 나무관세음보살마하살, 나무대세지보살마하살, 나무천수보살마하살‘ 나무여의륜보살마하살’ 신묘장구대다라니
 나모라다나다라야야나막알약바로기제새바라야모지사다바야마하사다바야마하가로니가야, 옴살바바예수 다라나 가라야 다사명 나막 까리다바 이맘알야 바로기제 새바라‘ 다바 니라라 간타 나막 하리나야 마발다 이사미 살발타 사다남 수반 아예염 살바 보다남
 바바마라미수다감다냐타다냐타옴아로계아로가마지로가지가란제혜혜하례마하모지사다바사마라사마라하리나야
 구로구로 갈마 사다야사다야 도로 도로 미연제 마하 미연제
 다라 다라 다린 나례 새바라 자라 자라 마라 미마라 아마라 몰제 예혜혜“     

인환은 혁수의 마음을 조금 이해가 될 것 같으면서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혁수는 점점 눈에 띄게 야위어 가고 예상했던 6개월까지 가기도 힘들어 보였다.

혁수는 인환이 올때마다 수자이와 인철을 억지로 밭은 목소리를 내어 물어 보았다.

인환은 매번 아직 연락이 없다는 좀 더 찾아보겠노라고 혁수의 귀에 대고 조용히 이야길 하였다.

그 대답을 기다렸다는 듯이 혁수는 눈을 감았다 

가끔씩 뜬 눈이 핏붙이를 그리워 하는 것인지 흰자위가 보이며 하늘 끝까지 따라가는 혁수의 눈길이 점점 부담스러워졌다.     

인환은 혁수의 마지막을 혼자 지키며 눈물을 흘렸다.

더 이상의 죄책감도 두려움도 이제 끝이 었다. 또 더 이상 누구도  의심하거나 캐묻을 이도 없을 것이다.

혁수의 죽음이 가져다 준 슬픔보다는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 가족을 빼앗길것 만 같은 분노와 배신감이 컸다.

그래도 아버지로 상주로 가시는 길을 모셨다.

어떻게 알고 왔는지 성당과 교회에서 또 절에서 기도하고 염불을 해 주러 왔다.

혁수는 어린양이 되었고 아구스투였고 성정이 되었다.

검은 모자를 쓴 노인들이 우루루 몰려왔다. 화환을 앞으로 뺴며 잘보이는 곳으로 옮겼다 장군님이 보내주신 거라는 말도 잊지 않고 인환에게 여러번 이야기를 하였다.

그렇게 정신없는 장례를 치르는 마지막 날이었다.

다음날 장지로 출발하기전에 이런저런 정리를 하려면 상주와 가족들은 조금 눈이라도 붙이라는 장례지도사의 말을 듣고 내실로 향하였다.

조문이 왔다는 말에 몸을 돌려 낯선 남녀를 바라보았다.

아직 앳된 그러나 이국적인 노랑머리와 코가 높다란 젊은 남자와 50이 조금 넘어 보이는 이국적인 여성이었다.

헌화를 하고 기도를 맞춘 남녀에게 맞절을 하려 숙이는 순간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죄송합니다. 그땐 제가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버님이 잘해주셨는데 너무 미안합니다.”

남자 아이의 얼굴을 다시 올려다 보았다.

인환의 얼굴은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르게 일그러져 있었다.

아이의 등을 어루만져 주었다. 인환은 아이의 얼굴이 자신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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